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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Oct 26. 2022

결혼 후에도 그만두지 않을거야

P은행 다니는 직장여성 최민경입니다 07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했고 민경의 어린 시절은 굉장히 풍요로웠다. 어머니는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나 아버지의 월 수입이 어머니 월급의 10배는 되었으니, 힘들게 회사에서 일하는 대신 아이들을 정성 들여 잘 키우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이라는 판단 하에, 어머니는 결혼과 동시에 퇴사를 했다.


그때는 다 그랬다. 여자는 결혼과 동시에 하던 일을 멈추고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했다. 대부분 다 그런 삶을 살았고, 아무도 그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듯이,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휘청거리는 때가 왔다. 영원히 풍족할 것만 같았던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고, 민경이 중학생이 되던 해부터는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아버지에게서 술냄새가 나는 날이 많았고, 얼굴도 까칠해졌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을 자식들이나 배우자에게 내색하려 하지 않았다. 늦은 밤 술에 취해 들어오긴 했어도 일찍 잠든 자식들의 얼굴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자신도 조용히 잠들곤 했다.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식탁에 앉아 다 같이 식사를 했고, 민경의 가족은 그래도 화목했다. 민경도, 동생 민희도 집안 분위기를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갑자기 학생들 과외를 시작하며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했고, 민경과 민희는 부모님의 처절한 노력으로 힘듦을 크게 체감하지 못한 채 그럭저럭 살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망가진 것이 이때부터라고 했다.


아버지는 사업가 체질이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가 닦아 놓으신 길이 있었기에 아버지 혼자서 그나마 10년 정도는 끌고 갈 수 있었던 것이지, 원래 아버지의 꿈은 소설가였다. 어려서부터 조용히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던 아버지는 문예창작과에 재학하던 시절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가로 등단하고자 하였으나 할아버지의 크나큰 반대로 집안 사업을 이어받았다. 세상의 빛을 본 아버지의 글은 당시 신춘문예에 당선된 단편소설 한 편이 전부였다.


아버지는 사람을 좋아했다. 특히 인문학이나 역사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과도 금세 친해졌고, 비즈니스 모임보다는 문학 모임이 훨씬 많았다. 예술인들을 위한 자선사업도 많이 했고, 기부도 많이 하였으며, 가난한 화가의 작품도 많이 사주었다. 본인이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자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돈은 많고, 사람 좋아하고, 사업체를 운영하고는 있으나 치밀함이나 독함은 보이지 않고, 의심 한 점 없이 세상을 아름다운 눈으로만 바라보는, 어딘가 물렁해 보이는 아버지의 주변에는 상어 떼가 많았다.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더 뜯어먹을 수 있을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상어 떼들. 당연히 아버지는 그들이 상어 떼라는 걸 몰랐다.


아버지는 형님이라고 부르며 학창 시절부터 따르던 한 아저씨의 함께 사업을 해보자는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고 자금을 쏟아부었다. 아버지는 본업이 있으니 신 사업에는 자본금을 대고, 운영은 그 아저씨가 도맡아 하는 식이었다. 아저씨를 믿고 맡긴 아버지는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에 공장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자금을 투입했다.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직원들을 자르고 어머니가 직원으로 나갔다. 신 사업이 휘청거리자 본 사업도 같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였던 그 아저씨는 어느 순간 잠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또다시 상어가 나타났다. 심신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아버지를 꼬여내 도움을 주는 척 사기를 치고는 홀연히 사라진 검은 상어. 그는 지금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이미 엎질러질 대로 엎질러진 물,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빚더미에 앉은 아버지는 어리석었던 자신을 탓하며 재기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대미지가 너무 컸다.


이때부터였다. 어머니의 머리가 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시점이. 화려하진 않아도 수수한 듯 깔끔하게 갖춰 입고, 늘 ‘사모님’ 소리를 들으며 우아하게 미소 짓던 민경의 어머니는 미용실 가는 돈이 아까워 집에서 혼자 염색을 하고 저렴한 시장의 옷을 사 입고는 학생들 과외를 해서 생활비를 벌었다.


“내가 아직도 그 회사를 다니고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라도 벌이가 괜찮았으면 우리 집 상황이 지금보단 나았을 텐데.”


어머니가 퇴사한 그 회사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굳건한 대기업으로써 매년 성장하고 있었고, 결혼 후에도 퇴사하지 않은 전 직장 동료들은 벌써 차장급이라고 했다. 가끔 그 회사 관련 뉴스가 TV에 나오거나 보너스나 인센티브에 대해 신문에 실릴 때면 유독 유심히 집중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나중에 직장을 다니게 되면, 결혼해서도 절대 그만두지 마. 알았지?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야. 직장이 있고, 경제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데. 물론 돈도 돈이지만, 그냥 주부로써 사는 것 보다도 내 일이 있다는 것이 자긍심도 주고 살아가는 데에 굉장히 큰 힘이 돼.”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가족을 위해 고군분투하였으나 뿌리까지 뽑혀 쓰러진 나무를 일으켜 세우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힘든 환경 속에서 민경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다행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국내의 대형 은행에 취직했다.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월급쟁이’를 내심 부러워하던 아버지는 꼭 은행장의 꿈을 안고 은행에 뼈를 묻으라는 다소 극단적인 이야기도 했다.


민경도 은행원이라는 자신의 직업이 좋았다. 대리가 되니 소위 말하는 ‘짬’이라는 것이 생겨서 인지 업무가 점점 수월해졌고, 가끔은 재미있게 느껴졌다. 고객들의 자산을 관리해준다는 뿌듯함도 있었고, 고객사의 성장에 일조한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법도 터득했으며, 은행 내에서 입지를 다져가며 커리어를 쌓았고, 공부와 자격증 취득도 놓치지 않았다. 어디 가서 P은행 다녀요,라고 말하면 일단 상대방이 ‘들으면 아는 곳’이기 때문인지 약간 대우가 달라지는 듯한 느낌도 받았고, 아무런 타이틀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해가 지날수록 애사심이 점점 커졌다.


재훈과 ‘데이트’를 하던 어느 날, 각자의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난 요즘 세상에 결혼 후에도 맞벌이는 필수라고 생각해. 외벌이로는 쉽지 않은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혹시 결혼을 하더라도 은행 그만두고 싶지 않아. 내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데. 절대 그만두지 않을 거야.”


안정적인 직장, 매년 인상될 매월 꽂히는 월급, 다양한 복지혜택,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회적으로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 아직 10년도 채 못 누려본 이것들을 내 손으로 집어던질 일은 절대 없다.


민경은 재훈의 솔직하고 현실주의적인 모습이 좋았다. 누군가는 남편이 ‘내가 먹여 살릴 테니 집에서 내조만 잘해달라’는 말 (아마 본인이 충분히 많은 수입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이 그렇게 남자답고 멋있어 보인다고 말하지만, 민경은 생각이 달랐다. 돈이 넘쳐나든 아니든, 민경은 살림에 흥미도, 재능도 없었고, 커리어를 쌓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많은 나인데, 나의 일할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는 것은 참으로 무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더군다나 사람 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몸소 겪어봐서 아니까 절대 일을 그만 둘 생각이 없었다.


“나는 나중에 해외지점 주재원으로 나가고 싶어. 우리 은행은 해외에 지점이 많거든. 은행 내에서 그쪽으로 커리어를 쌓으려고 하고 있어.”

“오 멋지다. 어느 국가로 가고 싶은데?”

“글쎄, 영어권이면 어디든 부담 없지만 혹시 영어권이 아니어도 현지 언어는 배우면 되니까 난 사실 어느 곳이든 괜찮을 것 같아. 나 언어 배우는 거 좋아해. 편리함만 따지자면 한국에서 사는 것이 압도적으로 좋지만, 어학연수 다녀와 보니 해외에서 사는 삶도 충분히 매력 있고 멋지더라고. 물론, 가서 일을 하는 것은 다를 수 있겠지만.”

“나도 그래. 우리 회사는 이제 해외로 진출하는 단계라서 아직 많지는 않지만 점차 해외지사가 늘어날 거야. 이미 일본에서 일도 해 봤고, 해외지사 근무 기회가 생기면 꼭 할 생각이야.”


민경은 중학생 때부터 외국어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영어를 시작으로 라틴계 언어에 눈을 떠서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웠다. 은행에 취업을 하고 나서는 직장인 스페인어 학원에 등록해서 취미로 스페인어도 배우기 시작했다. 외국어에 관심이 생기니 자연스레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은 꿈이 생겼고, 대학생 때 꼬박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해서 모은 자금으로 떠난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후에는 그것이 단순히 꿈으로 끝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특히 어학연수 시절, 한인 커뮤니티에서 간접적으로 겪은 해외 주재원들의 모습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고, 반드시 나도 저렇게 되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재훈은 대학시절, 교환학생으로 온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끼고는 새벽 5시부터 영어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했고, 취업에 필요한 토익은 물론 회화까지 통달했다. 일본 회사 취업을 목표로 일본어도 따로 배우는 악바리 근성까지 있었다.


비슷한 미래를 꿈꾸는 사람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문득 민경은 과거의 수많은 소개팅 중 유난히 맞지 않았던 한 사람 생각이 났다.


국내 대기업의 철도 파트에서 일하고 있던 그는, 자기는 회사에서 딱 지금 하는 일 정도만 하면서 평생 과장으로 일 하다가 정년퇴직을 하는 것이 꿈이고(과장 이상으로 진급하면 업무와 책임이 커지고 정년퇴직의 꿈에서 멀어져서 절대 안 된다고 했다), 퇴직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프랜차이즈 가게를 하나 작게 차릴 것이라고 했다. 주말이면 외국어 학원도 다니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하는 민경이 조금 부담스럽다고 했었다.


이렇게 매력 없는 사람이 다 있다니? 본인 일에 열정이 전혀 없어 보이잖아? 분명 치열하게 노력해서 들어갔을 텐데 과장으로 정년퇴직이라니. 흥 나도 그쪽 맘에 안 들거든요.


그와는 2개팅으로 끝났었다.


“나는 집안일은 해본 적도 없고, 잘할 자신도 없어. 일 하는 게 훨씬 좋아. 내가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는 게 뭔지 알아? 다림질이야. 몇 번 해봤지만 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여.”


민경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다림질이라고 생각한다. 옷은 늘 단정하게 갖춰 입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요일 저녁이면 일주일간 입을 구겨진 셔츠를 다려보았지만 생각처럼 구김이 잘 펴지지도 않는 데다가 한쪽 팔을 다리고 나서 다른 쪽 팔을 다리고자 하면 이미 다려 놓은 팔에 구김이 간다. 등판을 다린 후 앞판을 다리는 과정에선 등판에 또 잔주름이 간다. 카라를 다리는 과정에선 셔츠의 각도를 조금이라도 잘못 놓으면 카라가 빳빳하지 못해서 다시 조절을 해야 한다. 카라 한쪽을 잡고 편 상태로 다림질을 하다가 잘못해서 손가락을 덴 적도 많다. 구김이 간 곳을 다시 다리고, 또 다리고, 뒤집어서 또 다리고... 셔츠와 함께 뜨거운 스팀을 쐬다 보니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셔츠 하나 다리는 데에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들어가는 건지 팔도 아프다. (그렇다고 결과물이 만족스럽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다) 출근 스트레스보다 다림질 스트레스가 더 심했던 날들이었다. 취업 직후 이러한 고통스러운 다림질의 과정을 몇 번 거친 후, 민경은 모든 옷을 죄다 구김이 가지 않는 폴리에스테르로 바꿔버렸다.


민경이 다림질로부터 받은 스트레스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자 재훈은 웃음이 났다. 재훈도 혼자 자취해본 경험이 있기에 간단한 집안일은 해 온 상태였는데, 다림질에 대해 저렇게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다리미 들고 쓱쓱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구김이 펴지는 모습을 보면 기분도 좋아지지 않나?


“다림질은 내가 잘해. 나중에 민경이 옷은 내가 다려 줄게.”


두 사람은 만나는 날이 길어지며 미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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