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층 한실 한방으로 쪼갠 수많은 방들
지방에 있던 나는 서울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어 부랴부랴 서울에 올라왔다. 집을 알아볼 처지도, 그럴만한 월세 보증금도, 전세금도 없었기에 나의 선택은 고시원에서 당분간 지내기로 했다. 지난 사업으로 손해를 막대하게 보았기에 감내해야 했다. 수중에 돈 백만 원 이 전부다. 엄마는 탈탈 털어 주었다고 강조하려 했는지, 오천 원권이 여섯 장이나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서울 난곡 사거리 근처 2층 고시원을 얻게 된다. 인터넷으로 찾아 들어간 고시원은 보증금이 없고 월세 15만 원만 내면 되는 아주 작은 방이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침대와 그 침대만 한 공간이 그 방의 전부다. 창문이 없어 불을 켜야 하는 그런 좁은 방이다.
고시원의 총무는 종일 청소를 하며 사무를 보느라 항상 바쁘다. 사장을 겸한 총무는 한밤중이 되면 자전거를 끌고 운동을 나간다. 그런 총무와 나는 어떤 계기로 친해졌다.
고시원의 첫날밤은 인상적이었다. 새벽에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다. 무심코 전에 살던 집처럼 착각하고 뒤척이다 추락했다. “쿵” 한밤중에 깜짝 놀라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좁은 침대 위에 허겁지겁 올라탄 적이 있다.
방음이 되지 않은 얇은 벽은 합판으로 만든 칸막이라서 옆방의 숨소리가 선명하고 정확하게 잘 들린다.
옆방의 남자는 코도 크게 골고 하품도 많이 한다. 문을 열고 나갈 때도 ‘탁탁’ 문을 닫는다. 나는 문 여닫는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옆방 사는 남자를 못마땅해했다. 자기 혼자 사는 곳도 아닌데 막 여닫고 다녔다.
삼 일째 되는 날 안 되겠다 싶어 늦은 저녁 나는 참을 만큼 참다, 옆방 문을 노크했다.
“똑똑”
문을 여는 옆방 남자는 나를 빤히 본다.
“문 좀 살살 닫읍시다. 소리가 너무 크잖아요” 나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고 조용히 대답한다.
차분하고 조용히 말하기에 나는 그냥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남자는 또 아무렇지 않게 문을 탁탁 닫았다. 힘줘서 닫는 건 아니었지만 귀에 거슬릴 정도로 싫었다.
다음날 늦은 밤 옆방의 남자는 코를 평소보다 더 크게 골았다. 술이라도 마시고 온 것일까. 온 객실이 다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나는 잠을 설쳤다. 코 곤걸. 뭐라고 할 수 없으니. 또 항의하러 갈 수는 없었다.
유쾌하지 않은 날들이 연속되고 나도 이제 그러려니 하고 지냈다. 몇 달만 더 있다가 나갈 텐데 그때까지 참자며 불타는 속을 진정시켰다.
다음날 청소를 하는 총무에게 잠을 못 잤다고 말했다. 옆방의 사람과 대부분의 사람이 남을 생각하지 않고 문을 닫는 거며 생활소음을 거칠게 내서 심지어 코도 엄청나게 골고 그래서 힘들다고 말했는데 총무는 씩 웃으면서
“다 그렇게 살아요. 원래 그래요.” 했다.
내가 사는 고시원은 나처럼 당분간 왔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직장을 찾아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 일용직을 다니는 사람, 유흥업에 종사하는 사람, 이렇게 다양했다.
총무는 말한다. 고시원을 운영하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고 했다. 옆방과 싸우는 사람도 있었고 남녀가 분리된 층인데도 여자친구를 데려와 좁은 방에서 자기도 했다는 투숙 인도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남자 방만의 일도 여자방 만의 일도 아닌 두 곳 다 발생했다고 했다. 나는 쉬는 날이면 청소를 잘하는 총무 겸 사장과 대화하는 날이 많아졌다. 총무를 찾는 일은 항상 집 주변에 있어, 집 고양이 찾는 것만큼 쉬웠다.
언제부턴가 옆방이 조용하다는 걸 알았을 땐 옆방은 정말 떠나고 없었다. 두 달 가까이 칸막이 하나 사이로 코를 곤 날, 탁탁 문을 닫는 날, 거친 들숨과 날숨 등으로 미운 날이 많았는데 떠났다니 서운함보다 허전함이 밀려왔다. 어디 가서 잘 살겠지. 아니면 나처럼 잠시 왔다가 원하는 바 얻어 나간 사람일 수 있고, 어쩌면 나보다 훨씬 ‘잘난 사람’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허름한 고시원에 산다고 그저 그럴 거라고 믿어버리는 생각. 아니야 이건 틀렸다. 나도 똑같이 고시원에 사는데 나가버린 옆방의 남자도 나를 그렇게 볼 거 아니야. 조금 미안해졌다. 근데 옆방은 있는 그대로 살다가 말없이 가버렸다.
며칠 후 빈 옆방에 누군가 들어왔다. 문을 닫는 소리가 조심스럽다. 나는 관심은 없지만, 들리는 소리와 인기척은 자동으로 감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튿날 저녁 늦은 시간, 잠자리에 누웠는데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엥, 누구지 올 사람이 없는데’ 하며 불을 켜고 문을 열었다.
낯선 남자가 무표정으로 말한다.
“아저씨 문 좀 살살 닫으세요. 공동으로 사는 곳인데 문을 세게 닫으면 어떡합니까?”
“문이요? 문 살살 닫고 있는데요.”
“다 들리는데 무슨 소리예요”
“네, 알았어요. 신경 쓸게요” 하고 문을 닫았다.
뭐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더 이상 얼마나 살살 닫으라고 하며 나는 조금은 기가 막히고 불쾌했다. 그동안 나는 조심히 다니고 내가 피해자였는데 갑자기 이상해졌다.
고시원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퇴근 후 편히 쉬고 있다. 화장실도 밖에 있고 가볍게 차려 먹을 주방도 밖에 있다. 샤워장도 밖에 있다. 빈번하게 문을 열고 나간다. 문은 아무리 살짝 닫는다 해도 소리는 났다.
그렇다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기엔 자유가 억압받는 것 같고 이 정도면 충분히 조용한데 사람마다 느끼는 청력이 다르다.
추위를 잘 타는 나는 차라리 더위가 좋다. 더위를 잘 타는 너는 추위가 나을 수 있겠지. 어느새 익숙해져 버린 생활에 나의 문을 닫는 소리는 비교적 조용했지만 어떤 이에겐 민감할 수도 있다.
새로 들어온 옆방아 나는 너보다 10배는 더 큰 소리를 듣고 살았다. 옆방아. 좀 만 기다려라. 너도 곧 익숙해지고 깨달음이 올 것이다.라고 내 맘을 다독이면서도. 어느새 도둑고양이가 된, 소리 없는 나를 본다.
그런데 사방으로 둘러싸인 방들은 나만 조용히 한다고 통으로 된 객실이 정숙한 것은 아니다. 고시원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장기 투숙객들이 내 옆방과 건넛방 구석방들은 나보다 더 생활 소음이 컸다.
그동안 좌우 바로 옆방의 소리가 너무 잘 들려 생기는 문제였지. 사람들이 일부러 크게 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크게 둘리는 코골이와 잠꼬대는 어쩔 수가 없다. 혹시 모르지,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는지. 친구들이 내가 이를 간다고 했지만, 나는 내가 이를 간지 모른다.
투숙인들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부러 크게 코를 골진 않을 테니.
어느 날 나는 직장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과음을 했다. 고시원에 들어오자마자 그냥 대충 벗고 쓰러져 잤다.
새벽에 반쯤 깬 상태로 뒤척이다. 대장의 끝에서 가스가 차올랐다. 그동안 억눌렀던 나의 감정들과 같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예의도, 질서도, 체면도 이 순간만큼은 귀찮은 상황으로 몰아갔다.
술의 힘으로 나약해진 질서 의식과 건전한 정신을 놓아도 된다고 판단했다. 커졌다. 상상외로 부피와 압력이 높다. 술의 힘을 누르며 버텨 보았지만 이내 술의 힘은 용기로 급 전환 되었다. 참으면 병이 된다는 말도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참을 수 없는 간절한 그리움은 뛰쳐나갈 자세로 몸을 비틀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는 불수의근은 손을 놨다.
성문을 지키는 수의근도 빠르게 기운이 빠지고 있다.
서울 난곡 사거리 근처 2층 남성 전용 고시원 정중앙. 새벽 4시 58분 창문 없는 어느 한 방에서 강렬한 폭발음이 들렸다.
“빠아앙”
적막한 객실에서 들리는 소리는 2층 전체를 흔들고 3층 여성 전용 방까지 감지될 정도로 크게 터진, 대장의 끝에서 직장이분 트럼펫 소리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숙취에 덜 깬, 내 귀에 들려오는 옆방인지, 건넛방인지 모르지만 짧은 탄식이 선명하게 들렸다.
“에잇”
나는 갑자기 미안해졌다. 멈췄다. 딱 한 번으로. 그러나 내 속의 게으름뱅이, 작은 악마는 시원하다고 했다. 내 속에는 사이코가 사는걸까?
몇 달 후 난 신당동으로 이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