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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Sep 11. 2024

[스토리’n 클래식] 허미아의 꿈: ‘난, 나야’

<한여름 밤의 꿈> 첫 번째 이야기

‘로아야, 아빠 좋지?’ ‘아빠, 안 좋아.’

얼마 전, 할머니 질문에 로아의 대답이었어. ‘엄마 좋아,’ ‘할머니 좋아,’ ‘할아버지 좋아’ 뒤에 나온 대답이어서 듣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이 의외의 대답에 눈이 동그라졌단다. ‘선생님, 안 좋아.’ ‘우진이, 안 좋아.’ 이 대답까지 듣고 나니 의문은 더 커졌단다. 아빠나 어린이집 선생님과 짝꿍 우진이는 평소 로아가 잘 따르고 좋아했기 때문이지.


‘자기가 좋아하고 잘 따르는 사람도 로아는 자기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싫다고 하는구나.’ 할머니 말을 듣고 보니 로아 대답이 이해가 되었지. 집에서는 엄마보다는 아빠가 로아 훈육에 좀 더 엄격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여러 아이들을 통솔하느라고 때때로 로아의 행동을 제어하시겠지. 우진이는 로아가 좋아서 붙어 다니니 때로는 귀찮아서 밀어내는 것은 아닌지 싶고.



‘난, 나야.’


요즈음 로아의 생각과 행동에서 읽히는 모습이더구나. 가끔씩 만나지만 고맙게도 여전히 로아가 좋아하는 이 할아버지한테도 ‘아니야’란 말을 부쩍 자주 쓰는 것을 보아도 그렇고. 로아만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이 막 커가는 30개월 로아 또래 대부분 아이들의 특성이겠지.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로아는 여전히 ‘난, 나야’란 말과 행동을 이어갈까? 엄마 아빠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할아버지는 로아가 그랬으면 좋겠구나. 요즈음 로아의 ‘아니야’란 대꾸에서 느끼듯, 할아버지는 그런 로아가 대견하거든. 그런데, 로아가 성장하면서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도 ‘난, 나야’란 말과 행동에서 자긍심을 갖고 남들로부터도 인정받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성품도 있단다. 인격이란 것이야. <한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허미아란 아가씨가 인격을 보여주는 좋은 예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어린이를 위한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야.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지. 허미아를 주인공으로 단순한 스토리로 재구성해보면 이러한 이야기야.


‘내 이름은 허미아입니다. 아테네에서 살고 있고 라이샌더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빠는 제가 마음에도 없는 드미트리우스와 결혼하라고 강요하세요. 저는 라이샌더와 결혼하기 위해 아빠 몰래 숲 속에 있는 그의 숙모 집으로 가기로 했어요. 아빠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제 계획은 비밀로 했죠. 어려서부터 단짝으로 지내온 헬레나한테만은 알려주었는데, 글쎄 헬레나가 드미트리우스에게도 말해버렸어요. 그래서 드미트리우스는 나를 쫓아서, 헬레나는 자기가 짝사랑하는 드미트리우스를 쫓아서 숲 속으로 들어왔지 뭐예요. 그런데, 숲 속에서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어요. 짓궂은 숲 속 요정들이 라이샌더에게 사랑의 묘약을 바르는 바람에, 라이샌더가 나를 버리고 헬레나를 쫓아다니게 되었거든요. 다행히도 요정들이 바로 잡아주어서 라이샌더는 내게로, 드미트리우스는 헬레나에게도 돌아갔지요. 숲으로 사냥을 나왔던 공작님이 저와 라이샌더가 서로에 대해 진심인 것을 보게 되었어요. 저희 아빠도 허락해 주셔서 저와 라이샌더는 아테네로 돌아와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이것이 저한테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아빠 말을 듣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숲 속으로 도피한 허미아는 착한 딸일까, 못된 딸일까? 아빠 입장에서는 당연히 못된 딸이겠지. 하지만, ‘난, 나야’란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그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 있는 아가씨인 점은 분명하단다. 이야기 속 허미아가 살던 옛날 아테네의 법을 알고 나면 허미아의 용기에 로아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거야.


허미아의 아버지는 딸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자 공작 앞으로 데려가서는 아테네의 법대로 딸을 처벌해 달라고 요청한다. “아버지는 네게 하느님과 같으시다”라며 공작은 아버지께 순종하라고 허미아를 설득해. 그렇지 않을 경우 허미아가 받을 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해주지.


“네가 네 아버지 뜻을 거역한다면 죽음을 당하거나 어두컴컴한 수녀원에 갇힌 채 영원히 독신녀의 일생을 보내야 한다. 허미아,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 말을 거역했다고 죽음을 당하거나 수녀원에서 갇힌 생활을 해야 한다고? 정말 허무맹랑하지?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옛 그리스의 아테네나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1500년대 영국 사회에서도 실재로는 그런 법은 없었어. 다만, 남성만이 중요하게 여겨졌던 사회로 딸에 대한 아버지의 권한이 컸던 것은 사실이야. 상류층의 경우, 신분과 경제적인 이유로 아버지에 의해 딸의 배우자가 결정되는 경우도 아주 흔했고.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던 당시 여성들의 처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


이런 법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딸이 아버지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주 힘들었겠지. 그런데, 허미아는 달랐단다. 자신의 생각과 믿음이 아주 강했거든. 아버지한테는, “아버지께서는 저의 시선으로 보아주셨으면 좋겠어요”라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아. 법을 집행하는 권한을 가진 공작 앞에서도 당당했지.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게 저의 순결을 내던지고 일생을 매여 있느니 수녀원에서 가시나무처럼 살다가 시들어 죽겠어요.”


허미아에게는 신체적인 구속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믿음이 구속당하는 것이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일 거야. 허미아의 이러한 자기 소신과 자존감, 믿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아름다운 외모와 같은 외부적 요소가 아닌 것은 분명하구나. 서로 사이가 틀어져 자신을 ‘땅꼬마’라고 부르는 헬레나를 향해 허미아가 쏘아 부치는 말을 보면 그래.


“땅꼬마 인형이라고? 어머, 기가 막혀! 그래, 그걸 말하고 싶었구나. 나는 작고 볼품없는데 네 키가 크다는 라이샌더의 칭찬에 더욱 으쓱 해졌겠지! 그래, 내 키가 얼마나 작단 말이냐? 이 분칠 해놓은 장대 같은 계집애야!”


허미아 스스로도 키도 작고 얼굴도 볼품없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열등감은 갖지 않아. 그보다 더 중요한 ‘난 나야’의 자존감이 있으니까. 허미아의 자존감은 어디서 나올까?


인격!


허미아를 생각하면 할아버지에게는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단다. 옳고 그름과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판단하고, 자유롭게 의지를 결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는 것, 이것이 인격의 특성이야. 허미아가 아버지 뜻을 거역한 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숲 속으로 도피한 것도 자신의 자유 의지를 따르는 인격적인 행동이었지. 당시 사회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자유 의지에 의한 행동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은 아니야. 윤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지키는 것도 인격적인 행동이니까. 사회적 관습이 미치지 않는 숲 속에서 결혼할 사람과 둘이서만 있으면서도, 허미아는 미혼 여성으로서 품위를 지킨단다. 가까이 있고 싶어 하는 라이샌더에게 하는 말이야.


“우리의 사랑과 예절을 위해, 인간의 도리인 품위를 위해,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누워주세요. 윤리적으로 정숙한 처녀와 예의 바른 총각에 알맞다고 할 수 있는 만큼의 거리 말입니다.”


인격적인 행동이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나오는 행동이지만,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 믿음 역시 인격적인 행동에서 중요하단다. 그래서 인격으로 맺어진 관계는 쉽게 흔들리지 않지. 상대의 인격에 대한 존중과 믿음은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시적인 혼란을 바로 잡고 상대의 신뢰를 얻기 때문이니까.


숲 속 요정이 바른 사랑의 묘약 때문에 라이샌더가 잠자는 허미아를 숲 속에 내 팽개치고 헬레나를 찾아 나선 적이 있지. 허미아가 이유를 묻자 허미아를 ‘검둥이 같은 계집애,’ ‘독약 같은 계집애’라고 부르며, ‘난 더 이상 너를 사랑하지 않아. 당장 내 앞에서 꺼져버려’라고 내뱉지. 자존감이 강한 허미아는 당연히 화가 나지 않았을까?


이 돌발 상황에서도 허미아는 라이샌더에게 화를 내거나 비난하지 않아. 라이샌더의 인격을 믿었고,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허미아의 인격적인 대응에 감동받은 요정 왕은 미안한 마음에 다시 라이샌더의 마음을 허미아에게 돌려놓게 되지. 다시 본모습으로 돌아온 라이샌더는 허미아의 대응에 고마워하고 허미아를 더욱 존중해 주고.


로아야,

숲 속이란 참 요상한 곳이지? 지난번 로아가 갔던 아름다운 요정이 숨어있을 것 같은 숲 속처럼, 신기한 동식물들이 반겨주고 기분 좋게 해주는 곳인 것 같기도 하고, 요정의 장난으로 허미아와 라이샌더 관계가 뒤죽박죽 되어버리는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하니 말이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도 숲 속에서처럼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단다. 그러니 로아도 허미아 인격과 자존감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겠지?


‘할아버지, 전, 여전히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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