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잡러의 명과 암
미국의 고금리에 전 세계 이목이 주목되고 있다. 미국의 금리정책에 따라 전 세계 경제가 휘청이기 때문이다. 결국 팬데믹 이후 급격하게 올라간 물가를 잡기 위해 높은 금리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건데, 그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고 있다고 한다. 뉴스를 보면 미국인들의 소비가 여전히 뜨거워서 식을 줄 모른다는 거다. 팬데믹 때 너무나도 풀려버린 돈들이 많아서 한동안 그렇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그 돈마저 다 떨어졌는데, 여전히 미국인들의 소비는 내려갈 줄 모른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 원인을 기존에 늘어난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투잡, 쓰리잡을 뛰는 'N잡러'들이 많아졌다는 현상에서 찾기도 한다. 돈을 더 많이 쓰려고 일을 더 한다고?
나는 위의 상황과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 'N잡러'로 살기로 했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살아야만 한다'가 맞을 것이다. 영주권도 아직 없고(영주권 대기 중에 워크퍼밋만 받은 상태다.) 미국 현지 학위, 경력도 없는 내가 멀쩡한 미국 회사에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름 대기업에서 장기간 근무경력이 있어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현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IT나, 엔지니어, CPA 등 이른바 숫자, 기술로 승부하는 직업군이었다면 혹시 모르겠다. 하지만 방송, 영업, 마케팅을 주로 했던, 영어가 완벽하지 않은 아시안계 외국인인 나를 뽑아줄 미국 회사는 없었다. 한국 이민자들이 주를 이루는 한인계 기업이나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법인들은 연봉이 상대적으로 작거나, 주로 회계, 물류 등의 포지션만 있어서 나 같은 마케팅류의 사람은 환호받지 못했다. 게다가 나이도 적지 않으니 말이다. LA나 뉴욕, 요즘 뜨는 텍사스에는 그나마 그런 한인 기업들이라도 많다는 데, 내가 사는 일리노이 주변에는 한인 기업마저도 한정적이었다.
Uber Eats 배달
하나의 멀쩡한 직업이 없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바로 작은 일을 여러 개 하는 방식이었다. 아이를 더 많이 챙기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앞으로 계속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가장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UBER EATS 배달을 시작해 보았다. UBER 택시는 미국에서의 운전경력이 짧아서 할 수가 없고, 그나마 배달은 쉽게 허가가 나왔다. 일하는 시간도 자유로운 등 장점이 많았지만, 콜이 많은 다운타운이 아니라 거주지역 주변에서 하다 보니, 한 시간에 벌 수 있는 돈이 매우 한정적이었고, 기름값 등등 빼고 나면 맥도널드 알바 시급도 간단간단해 보였다. 게다가 내 차는 연비도 썩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중에 추가되는 팁이 실질적인 수입이고, 배달비 자체는 매우 적었다. 그래서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1인 법인 설립
일단 정식으로 취업을 할 수 있기 전에 작은 법인을 설립했다. 그나마 내 18년여의 커리어를 통해서 해볼 수 있는 사업을 해보기로 했다. 바로 아마존과 Etsy.com 등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E-commerce 셀러였다. 한국에 그동안 상품 관련 네트워크가 조금은 있으니, 지인을 통해서 작은 물량을 수입해서 테스트해 보기로 했다. 미국에서 법인 설립은 오히려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회계사를 통해서 신청하니 한 달도 안 걸려서 금방 법인 등록이 되었고, 미국 은행에서 법인 계좌를 만들고 아마존과 Etsy에 셀러 등록을 하는 등 순조롭게 프로세스가 진행되었다. 물론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고, 물건값을 흥정하고, 미국으로 수입하는 프로세스 자체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매일 같이 발생하는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이슈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현재 진행 중이다. 막상 론칭하니 생각보다 저조한 반응에 실망하기도 하고, 물류비, 마케팅 비에 돈이 점점 들어가면서 '이거 괜히 시작했나'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한두 번 드는 게 아닌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 사업은 앞으로 평생 가져갈 사업으로 생각하고 지금도 열심히 키워나가고 있다. 주문 알람이 들어오면 갑자기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는 마법(?)을 체험하면서..
시급 받는 사무직 노동
임시 운전면허가 거의 만료되는 간단간단한 시점에 겨우 '워크 퍼밋'이 나왔다. 그래서 집에서 가까운 한인 유통기업에 사무직으로 일을 시작하였다. 내가 가진 능력의 30% 정도를 쓰면 되는 수준의 간단한 업무로서, 시급을 받고 일하는 직책이다. 받는 돈이 적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적다. 6시
땡치면 모두가 썰물처럼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한국에서 직장 다닐 때는 포지션이 올라가면서 그 스트레스도 덩달아 올라가고, 야근 수당 없는 근무시간도 한없이 늘어나곤 했었다. 물론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고, 내가 이 정도 월급에 이런 일을 하러 미국에 왔나 하는 '현타'가 가끔씩 오는 단점도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도 만나고, 사무실에서 일도 하니 뭔가 다시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주기적으로 급여를 받으니 은행 신용도 쌓고, 온 가족 건강보험도 해결할 수 있어 좋다.
온라인 MBA학생
그래도 나중에는 미국회사에서 꼭 일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고자 MBA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온라인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풀타임 코스여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나중에는 논문도 여러 편 써야 하고 두 가지 일(사업, 취업)과 병행하려니 하루 24시간이 모자라고, 주말에도 쉴 수가 없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것 끝을 보려고 한다. 내 개인적인 지적 성취도도 올리고, 학위를 토대로 미국회사에도 떳떳하게 지원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미국회사에 간간히 서류를 제출해도 광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졸업장을 획득하면 꼭 한번 미국 회사 면접에라도 가보고 싶다.
밤 12시, 1시에 잠이 들기 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이것저것 하다 보니 요즘에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도 버거웠다. 머리에 빈 공간이 없다는 게 바른 표현일 것 같다. 이번주에 행인지 불행인지 갑자기 코로나에 걸려 강제 격리하게 되어 오래간만에 이렇게 글을 쓸 여유가 생겼다. N잡러로 산다는 건, 흔히 생각하듯 그리 '쿨'하기만 하지는 않다. 내 여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일을 하는 것 이기 때문에 가끔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게 되기도 한다. 요즘 내가 일하는 회사에 현장직에 있는 대부분의 라틴계 직원들은 하루종일 육체 노동을 하고, 퇴근과 동시에 또 다른 일을 하러 간다. 그들을 보며 N잡러의 삶이란 참 고달프구나 싶었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