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틴팍 Apr 21. 2024

H마트에서 울다 #1

#한식은 맛일까 추억일까

인디밴드의 보컬이었던 미셸 자우너는 한국인 엄마를 둔 혼혈 미국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문화, 특히 엄마가 해주던 한국음식을 접하면서 자랐던 그녀는 암으로 엄마를 하늘나라로 보낸 후 한국 음식을 접할 때마다 느꼈던 감정들, 엄마와의 추억을 유명 주간지 '뉴요커'에 게재하였다. 후에 이 에세이들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H마트에서 울다'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한국인 엄마는 다소 무뚝뚝하고, 지나치게 엄격했으며, 여느 다른 미국인 엄마와는 사뭇 달랐다. 미셸은 사춘기 이후에 음악을 시작하면서 엄마와 감정적으로 더 멀어졌는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 근처 한인마트로 한식재료를 사러 갈 때마다 엄마가 사실은 본인을 얼마가 아껴주었는지, 그 음식들을 통해서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딸에 대한 온갖 사랑을 담아 전달했음을 깨닫게 된다.


"미국에 가면 제대로 된 한식을 먹을 수나 있을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내 걱정은 기우였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도시마다 편차는 좀 있겠지만(작은 한인 마트 하나 없는 도시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사는 시카고 북쪽 서버브에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큰 한인마트가 여러 개, 작은 것도 여러 개 있고, K컬처의 확산 덕분인지, 웬만한 로컬 마트에 가도 신라면, 김치 등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최근에 트레이더 조스에서 한국 냉동 김밥이 품절이란 뉴스가 화제가 되기도 했고, 코스트코에 가도 한국 김, 햇반을 한인마트보다 더 싸게 판다. 미국에 100여 개에 있다는 H마트에 가면 거의 없는 걸 찾아보는 게 어려울 정도로 웬만한 한식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 심지어 고기, 야채 가격은 요즘 한국에 비하면 훨씬 저렴하니, 한식을 집에서 해 먹기에는 한국보다 더 나은 환경일 수도 있다.  


미국에 왔지만, 우리 가족의 전체적인 식단은 한국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집에서 약 90%에 가까운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식을 많이 해 먹는 편이다. 물론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도 종종 외국 음식을 해 먹거나, 사 먹기도 했기에 나라가 바뀌었다고 크게 바뀐 느낌이 들지 않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외식의 비중이 아주 크게 줄었다는 점. 밖에서 사 먹는 한식은 그 가격이 로컬 음식대비 높기도 하고, 팁 20% 까지 더해지면 웬만해선 만족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집에서 해 먹기 힘든 음식 위주로 외식을 하거나 집에서 요리할 시간이 정말 없을 때, 요리하고 치우는 거 자체도 힘들 만큼 피곤할 때만 골라서 외식을 한다. 요즘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 각종 레시피들이 난무하여 집에서 뭐 해먹기도 참 쉬워진 세상이다. 백종원 씨의 비법 소스도 누구나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순대볶음이 생각나서 이른바 '백종원 레시피'를 따라 해 봤는데,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어디 가서 사 먹으면 팁포함 30불(약 4만 2천 원)은 줘야 하는데 말이다.


이제 두 달 후면 미국에 온 지 벌써 2년이 다되어간다. 한식에 대한 여한이 없을 정도로 한식재료 구하기도 쉽고, 한식당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환경이지만, 가끔씩 '진짜' 한식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얼마 전에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동치미를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집어 들고 말았다. 항상 배추김치만 샀었는데, 그날은 동치미를 보자마자 안 살 수가 없었다. 바로 엄마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결혼 후에도 엄마는 종종 무와 고추, 배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하얀 동치미를 담가서 주시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그 동치미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걸 아셨기 때문이다. 덕분에 여태껏 살면서 동치미를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동치미를 가져와서 며칠 동안 매 끼니마다 꺼내어 먹었다. 남은 무는 잘라서 피클처럼 먹기도 했다. 동치미를 먹으며 엄마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미셀 자우너는 이런 느낌이 들어서 저 글을 시작했나 보다.."


물론 한인마트에서 구매한 그 동치미는 엄마가 해주시던 그 시큼하고 깊은 맛과는 견줄 수는 없었다. 아마 미슐랭 스타 급의 유명한 뉴욕의 한인 레스토랑 셰프가 해줘도 그 맛은 안 날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식을 평가하는 데에는 맛보다는 그 추억이 더 크게 작용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이 동치미를 집어 들며 H마트에서 울었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미국에서 N잡러로 살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