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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Apr 22. 2024

H마트에서 울다 #2

#그래 결국 나는 이민 1세대였다.

20년에 가까운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미국에 온 지 어느덧 2년이 다되어가고 있다. 나의 미국행은 일전에 브런치에 글로 썼듯이, 상당히 무모한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결정이었다. 주위에 미국에 가게 되었다고 알렸을 때, 사람들은 대부분 부러움 반, 걱정 어린 시선 반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이민 생활 엄청 고달프다던데, 괜찮겠어?"


친한 친구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러했다. TV를 통해, 주위 사람들을 통해 이민 생활은 힘든 것이라고 익히 알고들 있었을 것이다. 해외 생활이라고 해봤자 어학연수, 출장, 여행, 주재원 생활이 전부였지만, 그래도 나는 친구들에게 해외 경험이 많아서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듯이 말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 멕시코, 필리핀 등 해외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복귀했을 때 많이 답답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코로나 시국이라서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주재원 생활이 주는 무언가 '여행객처럼 사는 일상'이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주재원 생활과 진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되는 해외 생활은 그 시작부터가 달랐다.


어느 나라이건 이민자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성인이 되어 이민을 온 본인들인 1세대, 그런 부모를 따라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민을 오게 된 1.5세대, 그리고 외국에서 나고 자라 거의 그 나라 사람의 언어와 정서를 갖게 되는 2세대로 나뉜다. 실제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도 1세대, 1.5세대를 위한 한국어 예배와 2세를 위한 영어 예배가 따로 운영되며, '구역' 또는 '목장'이라고 하는 소모임 그룹도 아얘 따로 운영이 되고 있다. 그만큼 2세들은 외모는 한국인이지만, 언어화 문화는 철저히 미국사람에 가깝다.

넷플릭스 성난사람들(Beef)

1.5세들도 어느 시점에 미국에 왔느냐에 따라 또 많이 달라지기도 한다. 주로 초등 저학년에 온 경우와 고학년 이후에 온 경우로 나누어지는데, (물론 이러한 구분은 나 혼자만의 기준은 아니고,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교민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그 두 경우의 라이프도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초등 저학년에 온 경우에는 모국어도 어느 정도 익숙한 상태에서 현지 언어와 문화의 흡수도 빨라서 성장 후 미국 사회에 적응하여 미국사람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초등 고학년 이후에 이민을 온 1.5세들은 주로 한국어가 더 편하고, 대학 졸업 후에도 한국 관련 회사나 사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어렸을 때 이민을 오지만, 이미 언어나 문화는 한국의 것에 익숙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결국 부모인 1세대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살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히트한 시리즈 '성난 사람들(영어명 :Beef)'에 등장하는 스티븐연이 초등 고학년에 이민 온  1.5세로 나오는데, 유교사상이 있고, 한국 음식과 정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그의 철부지 동생은 누가 봐도 2세에 가까운 모습이다.    

넷플릭스 성난사람들(Beef)
넷플릭스 성난사람들(Beef)

나름 해외 생활 경험도 많고, 영어가 네이티브 수준은 아니지만,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자부했던 나는 "나는 이민 1세대가 아니다."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 어느 나라를 가던지 외국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즐겼던 나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민 1세대라는 걸 깨닫는데 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민을 온 부모 세대였으며, 영어가 완벽하지 않고, 미국 문화보다는 한국 문화가 편하고 그리운 누가 봐도 '이민 1세대'였다. 한국에서 나름 알려진 기업에서 20년을 근무하고, 이런저런 경력을 갖고 있어도, 미국에서는 그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민 갈 때 다들 배관공, 치기공사 기술을 배우고, 스시 자격증을 따고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음을 미국에 도착해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영주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지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워크 퍼밋'을 받았다. (그것도 여러 우여곡절 끝에 받았지만..) 새롭게 시작한 온라인 사업을 위한 자금도 마련할 겸, 미국 사회에서 나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겸,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 보았다. 미국에서 학위나 경력이 전무한 나는 미국 회사들은 서류 전형에서 광속으로 탈락하였다. 그나마 인터뷰를 볼 수 있던 회사는 한국계 유통 관련 회사들이었다. (참고로 내 한국 경력은 20년 온라인 유통업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그나마 규모가 있는 한 회사의 사무직 엔트리급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막상 입사를 해보니, 한국에서 나보다 훨씬 경력이 많고 큰 회사에서 근무하셨던 분들도 있었고, 은행지점장, 유명 일간지 기자 출신 분들도 있었다. 모두 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이민 1세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약 8개월여의 짧은 근무 기간 후에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지만, 결국은 시간 투여 대비 직업적 만족도가 높지 않아서가 큰 이유일 것이다.


"내가 어디까지 내려놔야 하는 걸까?"


일하면서 몇 번이고 이러한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다.

  

너무 늦게 이민 오면 이미 초등생이었던 자녀가 현지 적응이 어려울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서둘렀던 이민이었고, 나 스스로 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나를 1세대라는 한계 속에 가두고 현실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미뤄두었던 대학원 공부를 빠르게 마치려고 한다. 제대로 학위를 갖추고 다시 도전해보고자 한다. 그래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민 1세대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눈물은 잠시 넣어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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