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찬란한 어린 시절을 함께한 88년생 두 여성, ‘미소’와 ‘하은’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관계의 굴곡에 대해 말한다. 둘의 관계는 10대가 된 ‘하은’이 첫사랑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자유분방한 ‘미소’와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는 ‘하은’은 서로에게 예전처럼 친밀감을 느끼지 못해 점차 멀어지게 된다.
미소와 하은을 지켜보는 동안, 내 삶의 여러 구간에 머물다 사라진 다양한 얼굴과 추억이 떠올랐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같이 고르던 불량식품, 학원 자습실에서 주고받았던 공테이프,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인문대 앞 잔디밭, 첫 번째 직장 친구와 걸었던 인사동 거리 등등 여러 인연의 추억들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상상 속 스크린에 펼쳐지듯 떠올랐다.
며칠 전 아침,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약하게 부는 바람 사이로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가 반가워 조금 걷기로 했다. 영화 <소울메이트>의 배경음악이었던 재주소년의 <눈 오던 날>을 들으며 걸었는데, 시를 낭독하듯 부르는 노래가 차분한 이 계절과 잘 어울려 듣기 좋았다. ‘하늘에서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조그만 테잎을 내밀며’하는 가사가 어쩐지 귀에 콕 박혔다. 아마도 ‘테잎’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단어를 들으면 같이 따라붙는 기억이 있는데 그건 중학생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던 ‘김지원’과 우리가 함께 좋아했던 몇 명의 가수들이다. 이들은 열다섯 살의 나를 소환하는 신호 같은 거다.
쏟아질 듯 커다란 눈으로 힘껏 웃던 얼굴에 커트 머리가 몹시 잘 어울렸던 아이 ‘김지원’을 떠올리면 ‘용아~’하고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고, 끝내 코끝이 시큰해진다. 중학교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가수 이승환, 김동률, 그리고 유희열이 진행하는 라디오나 새 앨범을 공테이프에 녹음해서 주고받으며 서로의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친구는 특목고에 진학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다. 학업 스트레스로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낸 친구는 원하던 대학 진학에 실패하자 방황이 더 길어졌다. 다른 학교, 지독한 사춘기, 자퇴, 교과서 같은 조언의 반복…… 만나지 못한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엔 큰 벽이 자라난 것 같았다. 어느 날, 나의 위로나 조언이 더 이상 그 아이에게 닿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우리는 조금씩 서먹한 사이가 되어 어쩌다 마주 앉게 되어도 예전처럼 진짜로 만나지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은 잠시 멀어졌다가도 원할 땐 다시 서로를 찾지만, 현실의 나와 지원은 그러지 못했다. 뜸해진 연락은 완전히 끊어지게 되었고, 지금은 서로의 안부를 알지 못 한 채 산다. 함께 나누었던 추억만 남아 있을 뿐이다. 가끔씩 직장, 결혼, 출산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순간에 지원이가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그 친구가 미치도록 보고 싶어 지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원이가 자기만의 삶의 궤도를 찾았기를, 커다란 눈과 입으로 맘껏 웃으며 살고 있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얼마 전에 <음악소설집> 속 편혜영 작가님의 ‘초록스웨터’를 곁에 두고 오래 읽었다. 지나간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인데, 무엇보다 부록의 형식으로 담긴 작가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오래전에 관계를 맺었다가 연락이 끊어진 사람과 다시 만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오랫동안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오백만 원이라는 구실을 만들어
찾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나간 시간을 아끼는 마음 같은 것이요.
/음악소설집/
/초록스웨터_편혜영, p271/
‘지나간 시간을 아끼는 마음’. 잠시 멈추어 나의 마음을 살펴보고 싶어졌다. 가끔씩 기웃거리곤 하던 나의 지나간 관계들. 나의 어리석음 때문에 혹은 시간이 지나며 어쩔 수 없이 멀어졌던 그 관계들을 나는 다시 이어가고 싶은 것일까. 박준 시인이 <고독과 외로움>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의 ‘인연을 지닐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외연을 넓히며 사는 삶을 그리 길게 이어나가지 못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며
맺는 관계에도 어떤 정량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정량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나는 한 번에 많은 인연을 지닐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_고독과 외로움/p.49)
한 번에 지닐 인연의 정량이 적은 나는 지나간 인연을 돌아보는 마음을 지금 내 곁을 지켜주는 보물 같은 사람들에게 쏟고 싶다. ‘우정’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소리 내어 말해보았다. 한때는 나의 모든 신경세포가 그쪽으로만 촉을 세우던 때도 있었으리라. 사십 대 주부의 삶으로 들어오기까지 ‘너는 나의 소울메이트야’라고 고백할 수 있는 친구들을 종종 만났다. 하지만 이제는 어쩐지 한 발짝 물러난 느낌이다. 가끔씩 다양한 기회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지만 마주 앉아 있을 뿐, 관계가 깊어지지 못하고 그대로인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예전에는 그럴 때 드는 공허한 마음이 어색하고 속상했지만 이제는 서로의 마음이나 에너지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안다. 예전보다 성숙해진 마음으로 관계를 잘 돌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나를 헤아리려는 마음을 받아본 몇 안 되는 그들과 깊고 잔잔한 중년의 우정을 나누고 싶다. 혹시 또 아는가. 언젠가 ‘당신은 나의 소울메이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