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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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다양한 환경에서 쌓은 경험, 현재의 노력과 미래를 위한 도전과 관점까지, 의료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의료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고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대담 형태의 인터뷰 콘텐츠.
‘의사의 시선’ 5화의 주인공은 32년간 위험하고 힘든 출산을 도와주고 계시는 산부인과 분만 의사, 심상덕 원장님입니다. 동료의 의료사고로 상당한 채무를 감당하고 계시는데요. 경영난까지 겹친 어려움 속에도 진솔하고 양심적인 모습이 다큐를 통해 화재가 되어 많은 산모분들께 감동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현재 마포구에 위치한 진오비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 중이시고, 본업을 넘어서 브런치 작가와 유튜브 채널까지 정확한 의료 정보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정신력과 체력 싸움이라는 산부인과. 이 길을 묵묵히 걷고 계신 심상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산부인과 전문의 심상덕의 시선
안녕하세요 선생님! 에이던트 구독자 분들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마포구 동교동에서 개인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심상덕입니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지는 어느덧 32년 정도 됐네요. 군 복무를 대신한 지방 의료원 근무에 3년, 삼성서울병원에서 근무한 1년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간은 개업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주로 진료 분야는 임신과 출산을 다루는 산과 분야이며 기본적인 부인과 검진, 치료도 겸하고 있습니다. 사회 활동으로는 10여 년 전에 애란원이라는 미혼모 입소 시설의 임신부들을 진료하고 출산을 도왔던 기간이 10년 정도 됩니다.
2010년 무렵에는 젊은 산부인과 의사를 중심으로 산부인과 전문의 600여 명으로 구성된 진오비(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라는 모임을 이끌면서 산부인과 의료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몇 가지 활동을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안전하고 건강한 성을 회복하도록 여성들을 돕는 차원에서 낙태 근절 운동을 벌여서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어요. 그 모임의 철학을 이어받아 나가자는 취지로 지금 병원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현재 대외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올바른 의료 정보 전달과 병원 홍보를 위해 ‘진오비 산부인과’라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의 모임(진오비)은 의료 환경의 개선을 위해 창설되었다고 하셨는데, 모임에 대해 더 자세하게 들려주시겠어요?
산부인과 의사 단체는 크게 두 단체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는 대학병원 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산부인과 학회이고 다른 하나는 개원 의사를 중심으로 하는 산부인과 개원 의사회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산부인과 개원 의사회에서 학술이사라는 직함으로 참여했어요. 몇 년간 활동해보니 산부인과 의료계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의사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고 정부가 제도적으로 미비한 점을 고쳐야 할 부분도 있었어요. 그러나 기존의 단체로는 한계가 있고 제약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모임을 만들 필요를 느껴 젊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하는 진오비 모임을 다음 카페에서 열게 된 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바람직한 의료 환경을 만드시기 위해 여러 산부인과 의사분들이 모임을 만들게 된 노력이 인상적이네요. ‘의사 심상덕’으로서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처음 개원하면서 지금까지 제가 가진 의사로서의 좌우명은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지향점을 뜻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삶의 태도를 말해요. 제가 의사로서 기울이는 노력은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병원을 유지하는 것에 제 에너지 거의 전부를 쏟아붓는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유튜브를 통해서든 그 외 여러 경로를 통하여 글을 써서든 왜곡된 의료 환경이 바로잡아지는데도 일조하는 거예요. 의사와 환자 혹은 임신부들 간의 깊은 불신이 줄어들고 오해의 골이 좁혀지는 데에도 힘을 쏟고자 하지만 역량의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산부인과 의사로서 가장 보람되고 뿌듯한 순간이 있으셨다면요?
다른 의사도 그렇겠지만 산모의 순산, 아픈 환자의 쾌유를 보는 것이 보람찹니다. 특히 산모와 아기의 건강이 위태로워서 가슴을 졸였던 난산 임신부가 순산하고 건강하게 아기를 안고 병원을 나가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죠.
저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에 고집도 꽤 있는 편이라서 저의 진료 스타일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무뚝뚝한 인상에다, 불필요한 시술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어 환자 입장에서는 무심하게 느껴진다는 오해를 하시기도 했어요. 하지만 꾸준히 저희 병원을 다니고 순산하신 후에 제가 왜 그렇게 원칙을 지키려 하고 고집스러운 스타일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해하고 공감해 주신다고 할 때 특히 보람찼던 기억이 나네요.
산모분들을 위해 직접 산모수첩과 출산 영상, 퇴원 시 가족사진까지 찍어주신다고… 무뚝뚝한 의사라고 자칭하시지만 이런 모습에서 따듯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은데요!
산모와 가족 분들에게 좀 더 실감 나게 내용을 전달하고 치료 성과를 높이자는 차원에서, 혹은 매번 지나고 마는 순간을 나중에라도 다시 볼 수 있게 하면 병원 홍보 차원에서도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 일들이 제가 싫어하는 일이었다면 그렇게 수십 년씩 오래 하기 어려웠겠지요. 참고로 저는 사진, 영상 촬영을 좋아합니다. 개인적으로 음악보다는 미술 쪽에 관심이 있기도 하죠. 산모 수첩의 제작도 비슷한 차원인데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 수첩을 받는 산모분들도 좋아하시니 서로 윈-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은 산부인과를 포함하여 의사가 가진 직업의 매력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에요. 나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상대에게도 좋은 일이 된다는 점 말이죠.
산모분들은 감동받으시고, 치료 성과도 높이면서 병원 홍보까지 된다면 일석삼조네요. 선생님께서 ‘산부인과는 정신력과 체력 싸움이다.’라고 하셨는데, 산부인과만의 고충은 어떤가요? 선생님만의 극복 노하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산부인과 의사 중에서도 특히 출산을 돕는 의사는 상당히 고강도의 육체적 노동이 필요합니다. 또한 출산은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업무를 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체력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요. 저도 일주일에 3일 이상, 하루 30분 이상씩은 꾸준히 운동을 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신적인 것, 특히 위험한 상황에 수시로 마주쳐야 하는 점, 간혹 발생하는 분쟁으로 심적 고생을 해야 한다는 점이 출산 산부인과 의사의 큰 어려움이죠. 멘탈 관리를 따로 하는 것은 없어요. 성품은 타고나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강인한 멘탈을 타고나지 못했어요. 저는 스스로를 약심장이라고 자조적으로 부르곤 합니다.
최근 인구 절벽 현상이 심각하다는 기사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점점 떨어지는 출산율은 산부인과에 있어서 크나큰 어려움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계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출산이 심하여 경영이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언제까지 분만실을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죠. 어떤 직종이든 자신의 역할이 사라진다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닙니다. 저출산 현상이 없던 시절이 그립네요. 그러나 출산 문제를 목표에만 몰두하여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인구 정책이란 에너지 정책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서 지나치게 강압적으로 개입하면 인권 침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따라서 급격한 저출산 현상이 초래할 사회경제적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부작용이 없는 방향, 지속 가능한 방법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일하시는 의료현장에서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도움을 받고 싶으신가요?
의사라는 직업은 상당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대단히 보람찬 일입니다. 또한 수입의 측면에서도 다른 직종에 비하여 평균적으로는 상당히 나은 편이죠. 저처럼 예외적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요.
그러나 의사가 가진 결정적 단점이 하나 있습니다. 의사 스스로 의료 행위를 하지 않고는 수익도 보람도 생기지 않는다는 거예요. 마치 연예인처럼, 몸뚱이가 전 재산이라는 말이죠. 또 나이가 들어 체력이 떨어지면 출산을 돕는 산부인과 업무는 하기 어려운 것도 한계입니다.
어떤 임신부가 자연분만이 될지 아니면 제왕절개를 하게 될지 사실 완벽하게 알 방법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 지표를 고려해서 판단하지만 틀리는 경우도 발생하죠. 여기에 인공지능의 역할이 더해진다면, 좀 더 정확하게 순산 가능성을 예측해 수술이 필수적인 경우들을 잘 걸러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응급 수술도 줄이고 전체적인 제왕절개 수술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제왕절개율이 평균 50%가 넘는다는 것은 심각한 수준이에요.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공 지능을 통한 것이든 다른 방법이든 수술에 대한 좀 더 객관적이고 강력한 잣대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말씀대로 정확한 지표로 수술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AI 솔루션이 꼭 나오면 좋겠네요. 인공지능과 의료. 미래엔 어떨까요? 선생님이 바라보고 계신 의료의 변화상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미래의 의사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에 의사신문에 제가 “닥터 심파티쿠스” 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한 적이 있어요.
과거 인류가 도구를 다루는 호모 하빌리스에서 직립하는 인간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슬기로운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것에 빗대어 의사의 역할의 변화를 가정해 본 글이었죠. 중세 시대의 의사가 도구를 다루는 기술자로서의 의사의 역할이 주였다면 현대의 의사는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치료 성과가 달라지므로 닥터 사피엔스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진단과 치료의 역할을 많은 부분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미래에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아마도 인공 지능이나 로봇이 대신하기 어려운 역할 때문일 것입니다. 즉 고통에 있는 자를 위로하고 그 아픔을 공감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말이죠. 그래서 저는 그 역할을 하는 의사를 닥터 심파티쿠스(Doctor Sympathicus)라고 하는 용어를 붙여 보면 좋겠다는 취지의 글이었어요. 지금 보니 더 정확하게는 공감(Empathy)을 사용하여 앞으로의 의사는 닥터 엠파티쿠스(Doctor Empathicus)가 될 것이라고 예상되네요.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의사의 정의를 “때때로 치료하며 자주 고통을 덜어 주고 항상 위로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죠. 아마 미래의 의사는 히포크라테스가 정의한 의사의 역할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의사의 역할을 호모 사피엔스로 빗대어 표현한 부분이 재밌네요. ‘때때로 치료하며 자주 고통을 덜어주고 항상 위로하는 사람’의 정의를 내린 히포크라테스 의사처럼, 선생님께서 지향하시는 의사의 모습이 있을까요?
실력도 좋으면서 다정다감한 의사로 포근히 환자나 산모의 아픔을 위로하고 공감해 주는 의사가 되면 좋겠지만 저는 천성이 무뚝뚝하여 따스한 의사가 되는 것은 포기하였습니다. 다만 무뚝뚝하되 무성의하지 않고, 친절하지 않되 무례하지 않은 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예요. 더불어 누군가 저라는 의사를 떠올릴 때, 의사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나 산모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하지 않는 의사였다고 평가받고 싶습니다.
진오비 산부인과를 거쳐간 산모분들께서 ‘정직하시고 진정성이 느껴진다’는 후기를 보면 이미 선생님께선 그런 모습이 되고 있는 게 아니신가 싶어요. 앞으로 선생님께서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을까요?
특별한 꿈이나 목표는 없습니다. 의사로서는 여태껏 해오던 대로 초심을 잃지 않고 마무리하는 날까지 매진할 수 있기를 바라고… 개인적으로는 남은 채무를 모두 이행하는 것과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실 때 가족 모두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원칙을 지키며 최선을 다한다.”라는 선생님의 좌우명처럼 인터뷰에서도 심상덕 선생님만의 소신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경영난으로 힘드신 와중에도 안전한 출산을 돕고 불필요한 검사나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의료 원칙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초심을 지키고 싶다는 선생님의 목표를 에이던트가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소중한 시선을 공유해 주신 심상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