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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Mar 17. 2020

새로운 시작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 리 없었다.

런던에서 살아남기#2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데?'


9시가 넘어야 노을이 지고 관광객들로 가득한 푸르른 런던을 보면서 든 첫 생각이었다. 매일 같이 비가 내리는 여름의 한국을 떠나 런던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떠나본 적 없는 내 나라, 내 집을 떠나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새로운 환경 속에서 내가 너무 변해버리면 어쩌나 하는 앞선 걱정들과 출국 일주일 전부터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흘러내리던 내 눈물샘이 무색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매일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오후 세시까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영어로 듣고 말하는 법을 익히고, 아무도 없는 집에 돌아와 매 끼니를 챙기고, 빨래와 청소를 하는 일상이 놀라울 정도로 익숙했다. 순간순간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괜찮았었다.



어떻게 어렵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9월, 가을학기와 함께 찾아온 런던의 가을은 나에게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패기 넘치는 시간표였다.

세 번의 학기 동안 선택과목으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렇게 조금밖에 수업을 안 듣는다고..?'라고 생각했던 나였기에. 열정과 의욕이 넘쳤던, 사실 석사 그것도 해외에서 하는 석사가 어떤 것이다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 했던 과거의 나는 무려 첫 학기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표를 완성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월요일 오전 10시, 첫 수업에 참석한 나는 이런 것이 내가 원한 공부였구나 하는 벅찬 기분을  마음껏 느낄 새도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리딩 리스트를 마주했다. 수업을 향한 나의 질문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이렇게 많은 책을 다 읽을 수 있다고..?'


달랑 하나 고를 수 있는 선택 과목을 골라도 너무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Cultural theory, Performance, Interdisciplinary Perspectives라는, 누가 어떤 수업을 듣냐 물어보면 말하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이 빠른 거창한 이름에 걸맞게 수업은 어마어마했다. 영어로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일은 둘째치고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 없었던 솔직히 말하면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수많은 문화 이론들과 그것들을 만들어낸 학자들을 이해해야 했다. 심지어는 그중에서 무엇을 주제로 에세이를 써야 할지 선택해야 했다. 그 외에도 아카데믹 글 쓰기, 마케팅 전략, 온갖 종류의 자본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론들, 그리고 우리를 "Entrepreneur!"이라고 우렁차게 부르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전공 교수님들의 워크숍까지.

석사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을'리 없었다.


숨 쉴틈 없이 이어지는 수업보다 더 큰 산은 날씨였다.

런던 하면 떠오르는 흐린 하늘에 비로 젖은 바닥, 어둡지만 분위기 있는 건물들. 그런 이미지에 환상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다만 걱정했다. 나는 햇빛이 나지 않으면 집에서 편하게 있어도 타이레놀을 찾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그런데 왜 런던을 선택했냐고 묻는다면 이 정도는 아닐 줄 알았다. 아무리 한 도시에 비가 많이 오고 흐려도 그래 봤자,라고 생각했었나. 여하튼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  


학기가 시작하고부터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구글 날씨를 켜면 오늘부터 9일 후까지의 날씨가 나오는데 전부 구름 혹은 구름과 비였다. 구글 날씨예보가 그렇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지 미처 몰랐다. 날이 흐리기만 했으면 그래도 조금 낫지 않았을까.

흐린 날씨와 더불어 급격히 해가 짧아지기 시작했다. 잠이 쏟아져도 해가 지지 않던 여름과는 정반대로 일과를 시작하려는데 노을이 지는 날들이 시작됐다. 10월부터 짧아진 낮은 11월과 12월을 지나며 더욱더 짧아졌고 오전 8시가 넘어야 나타난 해는 오후 3시가 지나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새카만 어둠이 그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됐다.


이런 와중에 내가 첫 학기에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의는 6000자 분량 곱하기 삼, 총 18000자를 써야 했다.

모국어로도 어떤 글을 6000자까지 써본 적은 없었다. 일 하면서 썼던 보도자료들이 6장 내지는 7장이었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 최대 길이의 글이었다. 앞으로도 그럴 줄 알았다.  어디서부터 써야 할지, 다 쓰면 몇 장이 나오는지, 그런 글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수강 신청하기 전에 이 사실을 몰랐느냐, 그것은 아니다. 분명하게 알았다. 그저 얼마만큼의 힘듦이 요구되는지 몰랐을 뿐.


날씨와 에세이의 연타를 맞은 나는 이런 선택을 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고 싶었으나 그러고만 있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에세이 마감기한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래서 그냥 닥치는 대로 읽고 적고 또 읽고 적었다. 앉아서 무언가 쓰다 보면 6000자가 완성되니 일단 아무 알파벳이라도 써보자는 친구의 자조 섞인 조언에 따라 무작정.


작년 10월부터 2월까지의 내 삶은 그랬다.  내 행동의 가짓수를 퍼센트로 따지면 한 80퍼센트 정도는 읽고 쓰는 일 밖에 없었다. 물론 나머지 20퍼센트에 여행과 공연 그리고 수많은 요리에 도전하기 등 분량은 적지만 밀도가 높은 다른 행동들이 있었지만 내 정신과 육체를 지배했던 것은 그 80퍼센트였다.


낯선 도시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해야 할 일'을 껴안고 있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정신적인 피로감을 주었다. 사람과 일로 인해 받았던 압박과는 또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였고 그것을 감당하는 일은 어려웠다. 그 와중에 눈치 없이 불쑥 찾아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첩첩산중이었다.






그 모든 것들을 거쳐와서, 지금이다.

생각보다 괜찮았던 여름 후에 생각보다 괜찮지 않았던 가을과 겨울을 지나 조금씩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어느새 집을 떠나 런던에서 생활한 지 반년이 넘어버린 지금.

어둡지만 치열했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이 도시에 많이 적응한 나를 발견한다. 더 이상 내 주변을 지나가는 외국인들이, 다른 나라의 언어만 들리고 보이는 길거리가, 늘 익숙했던 사람들을 만날 수 없고 일상이던 장소들을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낯설지 않다. 무엇보다 나를 자꾸만 어두운 곳으로 끌어내렸던 날씨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에세이가 이제는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몇 번이나 이런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었다. 다시없을 런던 살이를 조금이라도 적어두고 나누고 싶어서, 또 어느 날은 혼자 있다는 사실이 버거워서 글을 적으려고 노력했었지만 손가락에서 나오는 것은 울퉁불퉁 정리되지 않는 조각 글 뿐이었다.


런던행을 결심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적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멀리 돌아보게 되고 나서야 적을 수 있는 이유는 눈 앞의 순간에는 여전히 서툴기 때문이 아닐까.

아마도, 여전히 지금 나의 이야기를 적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조금씩 눈에 보일 정도로 쌓인 시간을 이제는 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이야기하는 그런 글을 나눠보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하고 유학갑니다'에 담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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