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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Sep 15. 2020

내가 나를 달래는 가장 좋은 방법.

읽고 보고 쓰기#3.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박선아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는 거지,

제목만 읽었는데도 묘하게 위안을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어른이 슬프게 걸을 때도 있지! 뭐 어때!'라고 생각하면서 장바구니에 책을 담았다. 그렇게 배송을 받고 몇 번이나 만지작 거렸지만 아직 다 읽지 못한 책들에 밀려나 있던 이 에세이집이 불현듯 어제 생각났다.


눈을 뜨자마자 해야 할 일부터 하나둘씩 떠올랐던 어제는 별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한 날이었다. 그 날의 기분을 내가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뜻 '기분 좋음', '컨디션 나쁘지 않음' 쪽에 손이 가지 않는 그런 날. 멍하니 소파에 앉아있다가 이 책이 생각난 것이다.


그럴 때가 있다. 슬픔이 애매하게 돌아다니는데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어딘가에 그걸 둔 채로 꾸역꾸역 살다가, 엉뚱한 곳에서 울만 한 일이 생기면 그대로 엉엉 울게 될 때가. 그렇게 울고 나서야 자신이 그동안 슬펐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 95p





아껴서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순간 내 마음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작은 정원이 생긴다. 따뜻하고 아늑해서 그 안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그런 장소 말이다. 그 안에 머물면서 잔디의 냄새도 맡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그 정원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도.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산책을 하면서 혹은 그 행동을 좋아하면서 경험했던 작가의 이야기들과 작가가 인용한 책들이 못생기게 뭉쳐있던 내 마음을 작은 정원으로 데려가 조금씩 녹아내리게 만들었다.


사소한 일이라는 게 있기는 한 것일까. 한 사람 안에서 사소했던 일이 점차 거대해지고, 한때는 거대하다 여긴 일들이 한없이 사소해지기도 하는 시간을 매일, 성실하게 걸어가고 있다.
- 123p
아무리 힘들어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하는 날들이 있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그런 날이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삶은 하루만 주어지는 게 아니어서 그런 날을 외면할 수 있는 날도 생긴다. 그럴 때, 우리는 같이 걸을 수 있다. 나를 좋아해 주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내 함께 걷는 거다.
-260p
완전한 사랑을 받는 일이 당연한 게 아니란 걸 아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부모가 내게 준 것과 비슷한 사랑을 흉내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인간이 인간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일은, 그래서 한 인간이 사랑을 의심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일은, 너무나 위대하다.
- 290p
"세상일에 울어봤자 소용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아무리 슬퍼해도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요. 가장 좋은 건 그냥 계속 걷는 겁니다." 마틴 어스본, <나는 이스트런던에서 86 1/2년을 살았다> 중에서
-39p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되고, 자신이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존재가 아니라 무언가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사랑을 느낄 때인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 98p





"누구나 자기만의 '정원'이 있다. 내 마음을 빼앗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로 둘러싸인 곳. 시간과 공간이 허물어지는 곳. 그 속에서 우리는 홀로 조용히 상상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묻고 답한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내면으로 산책하는 공간. 
그곳에서의 쉼이 일상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백은영, <다가오는 식물> 중에서
-31p


아끼는 책과 정원이라는 이미지가 함께 떠오른 이유는 이 책에서 인용한 위의 문장 덕분이었다.

이 책에 담긴 책을 하나씩 찾아보는 즐거움도 기대된다. 또 어떤 이야기와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될까. 


이 책을 만나면서 다시금 깨달은 것이 있다. 내 기분이 어떤지 잘 모르겠는 날에는 내가 나를 잘 달래줘야 한다는 거다. 나에게 맛있는 것도 먹여주고, 좋은 음악도 들려주고, 책도 읽어주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일들을 해 주어야 한다. 내가 나를 달래주지 않으면 아무도 그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수 없으니까.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이 책을 읽었고 그러지 않았을 때 보다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책은 늘 내가 나에게 해결책을 주도록 도와준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나를 보듬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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