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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Nov 07. 2020

시간이라는 수면 아래,

두 번째 조각 글


어떤 시대는 끝을 향하고 어떤 관계는 다른 형태로 나아가며 어떤 삶은 다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바쁘게 채우지 않는 시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고여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늘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도 되는지, 남들처럼 얼른 달려 나가야 하는 것 아닌지.


그런데 이제는 어렴풋이 알겠다. 멈춰있는 듯 보여도 멈춰 있지 않은 시간이 있다.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시간의 수면 아래에는 거센 물살이 흐르고 있는 그런 시기가 있다. 무언가를 매일매일 준비해 가는 시간이 그럴 것이고,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이, 잃었던 삶의 페이스를 되찾는 시간이 그럴 것이다.


매일 햇빛을 받아 돋아나는 새싹의 움직임처럼 아주 작고 느리지만 시간의 흐름은 분명히 어떤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도달하면 시간은 우리를 다음 장으로 보낸다. 그 순간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느 순간 눈 앞에 다가올 다음을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했다. 지난날들처럼 조바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것을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을 조용히 대면하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있는 이 자리에 서서 이 시간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지켜보고, 나는 이 시간과 함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그렇게 맞이할 앞으로의 시간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면서.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맞이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또 그때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 나의 선택이 옳다고 생각하고 어디 한번 지켜보자,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또 우리를 내일로 데려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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