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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Feb 25. 2024

애완닭 햇님이

 그날이 녀석의 마지막 날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훗날 내 아이들에게 얼굴이 까만 할아버지라고 불린 나의 삼촌이 그날도 예고 없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온다 간다 말도 없이 제집 드나들듯 우리 집에 왔다. 퇴근을 하고 온 여느 집 가장처럼 삼촌이 현관물을 쓱 열고 집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또 왔네 또 왔어하며 키득키득 웃으며 별로 내키지 않는 인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대중이 없었다.



 특별히 삼촌이 올 것으로 예상이 되는 날을 꼽으라면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을 하시는 삼촌의 직업상 비가 와서 날씨가 궂은날이나 매우 더운 날, 일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은 겨울철이었다. 마흔이 훌쩍 넘어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하고 잠시 살았던 외숙모라는 분이 어느 날 도망을 간 뒤로 삼촌이 우리 집에 놀러 오는 횟수가 늘었다.



 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잠시 살았던 주택에서는 그냥 열린 문을 열고 들어오면 됐지만 분양을 받은 아파트로 우리 식구가 이사를 간 뒤로 엄마는 삼촌에게 현관문 비밀번호를 종이에 적어 주었다. 엄마가 현관 비밀번호를 왜 그렇게 정했나 의문이었는데 큰 이모네 집 전화번호가 우리 집 비밀번호가 되었다. 지역번호를 뺀 나머지 번호가 일곱 자리니까 비밀번호로 쓰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생각이 든 것이 삼촌이 외우기 쉬운 것으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세 누이네 집 전화번호 중 하나로 하면 좋겠다고 엄마는 결정하신 게 아닌가 싶다. 세 자매 중 가장 어른인 큰 이모네 집 전화번호를 가져다 쓰는 것이 또한 공정해 보였다.


 

 아무도 올 사람이 없는 대낮에 삐삐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거실에 있던 식구들은 또 왔네 또 왔어하며 또 키득키득거렸다. 삼촌에게는 세 명의 누이가 있었다. 적적할 때마다 갈 수 있는 곳이 세 집이나 되었다. 삼촌의 큰 누이인 나의 큰 이모는 간간이 소일거리를 하러 외출하거나 여행을 다니시느라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고 나의 막내이모는 한창 직장생활을 하는 때여서 낮에 아무도 없는 빈 집에 간다는 것이 맞지 않았다. 세 누이들 중에 가장 만만한 곳이 전업주부로 계신 나의 엄마, 즉 둘째 누이집으로 당첨이 되었다.


 삼촌은 누이네 집에 마실을 온 김에 식사를 꼭 하고 갔다. 아니 식사 시간에 맞춰서 왔다. 삼촌이 오는 시간은 심 시간 즈음으로 항상 비슷했다. 점심을 먹고 잠깐 잡담을 나누다가 아버지 가게에 가서 또 잠깐 앉아 있다가 돌아가셨다. 그 길로 저녁때가 될 즈음에 또 다른 누이의 집으로 향하는 적도 있었다. 엄마는 "야! ㅇㅇ이 삼촌, 저녁때는 큰 이모네 집으로 갔단다!"라며 궁금하지 않은 삼촌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운동회가 있던 날 우리 집 셋째인 동생은 병아리를 한 마리 사 왔다. 얇은 비닐봉지에 덜렁덜렁 들려 집으로 온 병아리는 자라서 닭이 되었다. 동생은 자기가 사 온 병아리를 애지중지 키웠다. 인생 최초의 반려 동물이었다. 그것이 닭이 된 뒤로 마당에 풀어놓았는데 마당을 누비고 다니면서 똥을 여기저기 싸댔다. 엄마는 닭 때문에 마당이 지저분해진다고 이마를 찌푸렸다.  



 동생은 닭에게 햇님이라고 불렀다. 보통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처럼 애정을 쏟았다. 아빠도 예쁜 강아지를 대하듯 햇님이의 깃털을 쓰다듬으며 예뻐했다. 진즉에 치킨이 될 놈이 우리 집에서 늙은 닭이 되도록 애완동물로서 호사를 누렸다. 보통 닭이라 하면 이른 새벽부터 울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하건만 햇님이는 해가 중천에 뜬 대낮이 다 되어서야 대문 위로 올라가서 울어댔다. 엄마는 꼴에 저놈이 도시닭 행세를 한다고 했다.



 어른이 된 닭은 짝이 그리웠는지 이상행동을 보였다. 현관에 벗어놓은 신발 중 빨간 슬리퍼에 올라타고 엉덩이를 문대는 시늉을 했다. 엄마는 보기 흉하다며 빨리 저거 해치워야겠다고 말했다. 동생은 그럴 때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마음을 졸였다. 나는 햇님이와 마주치는 일이 없어서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있거나 없거나 똑같았다. 가까이만 가도 냄새가 나는 것 같아 햇님이를 피해 다녔다.



 마침 삼촌이 햇빛에 탄 얼굴을 내밀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는 삼촌이 온 김에 골칫덩이를 해치우려고 제대로 맘을 먹으신 것 같았다. 햇님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좀 더 지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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