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하게 늙다
흰머리가 예고도 없이 세력을 확장해 가는 요즘.
거울 앞에 앉아 있으면 나도 모르게
"늙었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뭔가 '늙는다'는 표현은 어감 자체도 참 싫다.
'늙다'와 '낡다'.
뭔가 형제자매 같지 않나.
모음 하나 차이로
끈끈한 유대관계 뽐내고 계시는 것 같다.
늙고 싶지 않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고,
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으니
늙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같이 늙어가는 친구들과 '노화. 안티에이징. 꼰대'
뭐 이런 거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야...우리 추하게는 늙지 말자"라는 멘트가
툭-하고 나와 버릴 때가 많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늙는 것도 서러운데 추하게 늙는 건 또 뭐람.
추하게 늙는 것에 대한 염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같은 것일까?
영어에도 '추하게 늙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느낌이 아주 강하다.
Age like Milk.
옷이나 나무 책상에 우유를 쏟아본 기억이 있는 사람은 느낌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우유를 쏟았는데 속히 제대로 닦아내지 못하면 구린내가 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거의 반강제로
우유 급식을 신청해야 했던 학창 시절.
250ml 우유가 우유 급식상자 안에서
터져 있기도 했고,
장난치면서 우유를 쏟기도 했고,
며칠 째 먹지 않은 우유가
사물함에 남아 있기도 했던 그 시절엔
우유 썩은 꼬리한 냄새를 자주 맡을 수밖에 없었다.
윽. 시큼 꼬리한 그 냄새.
영어에서는 추하게 늙는 것을
이런 꼬리한 우유 냄새에 비유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좀 너무한 거 아님?" 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추하게 늙은 모습이 싫다라는 거겠지.
age는 '나이'라는 뜻으로 익숙하지만
'나이 들다, 늙다'라는 동사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나빠졌어.
As I aged, my memory got worse.
이렇게 동사로 많이 사용되니
꼭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난 추하게 늙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age like milk.
그녀는 멋지게 나이 들었어.
She has aged like fine wine.
오래된 우유는 상해서 시큼꼬리한 냄새가 나서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오래된 와인은 깊은 향과 맛을 내며
숙성도를 자랑한다.
매일매일 나의 신체는 늙어간다 할지라도
이왕이면 숙성된 와인처럼 늙어가자.
I don't want to get old,
but I'll age like fine w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