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15:00, 집에서 도보 10분. 주 3-4회 근무. 지나가면서 본 아름다운 가게에 붙어 있는 조건이 지금 상황에 너무 적합해 전화해 보니 다음날 이력서 준비해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다.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 내부를 보니 더 마음에 들었다. 나의 어느 한 시절을 품은 딱 그 분위기. 처음 왔지만 이미 내가 알던 곳이라는 느낌. 점장님도 마음에 들었다. "저 나이가 이만큼인데요. " "오~ 저랑 두 살 차이신데요? ㅋㅋㅋ"그의 유쾌+산뜻한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저쪽에서도 그렇게 느꼈는지(일단 한국인이라고 하면 엄청 좋아하시는 분위기가 있다.) 다음날 바로 출근하라고 하셔서 시작해 버렸다. 11:00부터라면 달리고 글을 쓰다가 가기에 좋고 나의 개인 사정(아이 학교 행사 등 은근 호출이 많다.)도 언제나 감안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첫날은 살짝 긴가민가 했는데, 둘째 날부터 딱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 분위기!!! 분위기가 좋다. 본격 일본사회로 들어간 느낌. 그동안 우리 집에서 지냈다면 이제 진짜 일본에 온 느낌? 단톡방에도 초대받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생각보다 더 즐거워서 오히려 놀랐다. 연령대와 성별도 다양하다. 신나게 웃고 일을 마치며, 역시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사람들 틈에서 충전받을 수 있는 에너지를 필요로 함을 느꼈다. 예상 못한 성과로는 회화 연습도 있겠다. 다들 단어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시고, 내 국적이 갖는 메리트도 크다. 이 동네는 외국인 자체가 희소한 데다가 한류 열풍으로 한국을 좋아하시는 분위기가 있다. 한국인이라는 자체로 "お! すごい(대단해)"하시며 아무것도 안 했는데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모든 것이 다 갑작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나의 이 행보들은 일본이기에 가능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이제 한국에서 일반적이라 여겨지는 궤도를 벗어났다.(제대로 진입해 본 적도 없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곳에서는 '내가 있는 곳'이라는 이유로 생기는 불안보다 큰 확신 같은 게 있다. 다른 이유가 뭐가 필요할까. 내가 선택해 내가 있는 곳이라는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미 나의 삶은 나도 모르는 방향으로 누구와도 같지 않게 흘러가고 있으니.
그리고 나는 요즘 글을 쓰는 일에 많이 꽂혔다. 원래 사랑하던 일을 급격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무언가를 엄청나게 사랑하는 일이 한편으로는 조금 내키지 않는데(피할 곳이 없을까 봐), 글쓰기를 향한 마음을 보며 느낀다. 사랑은 감출 수 없는 게 맞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을. 방법은 없다. 마음을 따라 마음이 원하는 시간까지 가보는 수밖에.
이 시간, 일은 삶과 글의 균형을 잡아주리라는 느낌이 든다. 다방면으로 연료를 들이붓는 거다. 글과 책과 삶으로. 진짜 사람들 틈에서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분명 글의 세계를 넓혀 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