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멜버른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상 그 자체다.

by Ding 맬번니언

인간은 결국 ‘적응의 동물’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신만의 익숙함을 찾아내고, 그 속에서 다시 살아가는 존재. 아마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버텨왔고, 또 내일도 살아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른다.

회사도 어느새 새로운 기업으로 넘어간 지 1년이 되었다. 특별히 대단한 변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시간은 묵묵히 흘러 1년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직도 휴가를 신청할 때만 잠깐 긴장되지만, 이제 업무 대부분은 몸이 먼저 기억한다. 이것 역시 ‘적응’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움이다.


스티븐이 해외 출장을 떠나고, 행복이가 5학년이 되면서 우리 가족에게도 또 다른 형태의 적응이 찾아왔다. 아침이면 행복이는 꿈나라에 있고, 나는 조용히 출근 준비를 한다. 그리고 주변 지인들이 행복이를 깨워 학교에 보내준다. 처음에는 걱정이 컸지만, 행복이는 놀라울 정도로 씩씩하게 새로운 일상을 받아들였다. 아이의 적응력은 가끔 어른들의 그것보다 훨씬 강하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살았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멜버른의 날씨다. 호주의 12월, 여름 한가운데인데도 멜버른 사람들은 두꺼운 겨울 점퍼를 입고 다니고, 하루 종일 흐린 하늘 아래 바람이 칼처럼 분다.


그러다가도 다음 날이면 갑자기 33도. 마치 기분이 들쑥날쑥한 누군가가 하늘의 스위치를 장난치듯 ‘퍽퍽’ 눌러대는 것 같다. 더운 여름에도 갑작스러운 추위가 찾아오고, 겨울 같은 날씨 뒤에 또 여름이 얼쩡거린다. 멜버른 날씨는 그야말로 변화무상 그 자체다.


이 날씨만큼은 멜버른에서 20년을 살아지만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적응이 된다는 건 익숙함을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적응이 안 된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전히 놀라고,

여전히 당황하고,
여전히 웃고,
여전히 감탄하고.

멜번의 변덕스러운 하늘 때문에 하루가 단조롭지 않고, 스티븐이 출장 간 빈자리 때문에 사랑을 다시 확인하게 되고, 행복이의 성장 때문에 나도 조금씩 다시 배우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날씨에도, 관계에도, 일에도, 부모 역할에도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적응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적응하지 못한 것들 덕분에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고, 아직 살아 숨쉬는 중이다.40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일들이 나를 성장하게 하고, 그 덕분에 나는 멈추지 않고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일상을 여행처럼, 여행을 일상처럼 사는 멜번니언이 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떨어져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