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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Nov 10. 2022

까롱 나르시스 느와 (1911)

빈티지 향수 리뷰

들어가며


까롱은 한국에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다. 향수의 역사를 보다 보면 굉장히 자주 볼 수 있는 이름이었고 클래식 향수 중 전설을 배출했으나, 마치 우비강과 비슷하게 오랫동안 잊혀졌고, 20세기 후반부에 계속 소유자가 이리저리 바뀌면서 전설적이었던 향수들도 그 힘과 매력을 잃었다. 이것은 특히 까롱의 남성용으로 나온 향수보다 여성용으로 나온 향수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남성용으로 나온 향수들은 아직 자신의 특징이나 아름다움을 돋보게 해줬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반면, 여성용으로 나온 향수들 중에는 그것마저 잃은 경우도 있다.


슬픈 일이다. 까롱은 "Mousse de saxe", 즉 특유의 "작센식 이끼"향이 나는 베이스로 유명했는데, 이것이 까롱 향수의 우아하고 풍성한 느낌을 주었다. 이끼라는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베이스에서는 오크모스가 큰 역할을 했는데, 오크모스에 대한 규율이 틀림없이 영향을 끼쳤으리라. 까롱의 전성기에는, "까롱은 귀부인들을 위한 것이고, 겔랑은 정부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말이긴 하다. 어떤 향수를 뿌린다고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리라, 어떤 계급에 속하리라 단정짓는게 가능하던 시대는 너무 삭막하고, 물론 그런 시대의 망령이 현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긴 하지만, 많이 사라졌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이런 말이 나올 만큼 까롱이 어떠한 아름다움, 우아함을 가졌던 향수를 내던 브랜드인건 확실하다.



향수 리뷰


빈티지 나르시스 느와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밑의 사진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르시스 느와는 검은 병마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특유의 꽃 문양을 하고 있어, "검은 수선화"라는 이름과 아주 잘 어울린다. 이 향수병이 계속 쓰이다, 중간에 다른 향수병이 쓰이고, 최근에 다시 이 향수병으로 돌아왔다가 또 다시 향수병이 바뀌었기 때문에 빈티지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은 확실치 않다. 그러나 내 향수병에 있는 라벨을 봤을때, 아마도 늦어도 1980년대, 혹은 그 이전 향수병인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소장중인 까롱 나르시스 느와 엑스트레


빈티지 퍼퓸 엑스트레: 피부에서


일반적으로 나는 시향기를 적을 때 피부에서와 시향지에서를 나눠 쓴다. 그러나 이전의 껠끄 플뢰르와 비슷하게, 나르시스 느와는 피부에서와 시향지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거의 똑같은 향이었고, 차이라면 시향지에서 조금 더 은은했다는게 끝이었다. 처음에는 시트러스와 약간의 플로럴이 있더니, 거의 2초도 안 되어서 이 플로럴함이 마치 파도처럼 강렬하게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진한 오렌지 블로섬은 인돌릭한 화이트 플로럴 향과 함께 시럽이 연상되는 짙은 꿀향, 그리고 살짝 애니멀릭한 느낌도 있는데, 그것에 인센스향이 섞여 향이 더 매캐하면서도 어둡게 했고, 맑으면서도 조금 지푸라기 같은 마른 느낌이 섞여 있는 수선화향도 느껴졌다. 1분 후에 이 플로럴함과 인센스향이 섞인 가운데 더욱 강렬한 애니멀릭함이 느껴졌고, 4분 후에는 아주 아름답고 상쾌한 오렌지 블로섬과 수선화향과 인돌릭하고, 애니멀릭하고, 우디하며, 인센스향이 나는 어두움이 빛과 어둠의 대비처럼 피어나기 시작했다. 6분 후 이 모든 것과 함꼐 화이트 플로럴에서는 가끔 웰치스 포도 같은, 아주 달콤한 향이 나는데(디올 오리지널 쁘아종이 이 향의 좋은 예시다) 그런 향이 더해졌고, 파우더리함도 조금 느껴졌다. 21분 후 아까 전에는 분리되어 있던 상쾌한 플로럴함과 달콤함, 파우더리함, 어두운 우디, 애니멀릭, 인센스향이 마치 서로 녹아들듯이, 색이 다른 물감 둘이 천천히 서로 스며들듯이 섞이기 시작했다. 그 상대에서 계속 지속되다, 1시간 6분 후에는 어두운 느낌에 샌달우드, 그것도 우유나 버터향이 연상되기까지 하는 인도산 샌달우드 향이 더해져서 향이 점점 어두워져 가는 가운데에 보드라움과 매끄러움을 선사했고, 1시간 21분 후에는 플로럴함은 달콤함과 섞여, 달콤한 포도주스같은 느낌에 약간의 플로럴한 느낌을 줄 뿐이었고, 마치 검은 모피가 연상되는 매캐하고 애니멀릭하고 우디한 향이 그 밑을 받쳐주었다. 이 상태로 계속 지속되다 2시간 28분 후에는 베티버향이 났다가 또 사라졌고, 따스한 머스크향이 그 자리를 대체하여 전반적으로 아주 달콤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을 주었다. 잔향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12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나르시스 느와에 대하여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라는 소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설 내에서, 마녀가 나오는데, 여자들에게 화려한 사치품과 맛있는 음식, 호화로운 삶을 누리게 해주겠다며 유혹한다. "겔랑, 샤넬 No.5, 미츠코, 나르시스 느와, 이브닝 가운, 칵테일 드레스..." 등을 나열하는 마녀의 말에서, 이 향수가 그 당시에 얼마나 큰 위상을 가졌는지, 이색적이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을 가졌는지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이 향수의 이름마저도 유혹적이었기에, 히말라야 수녀원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에 대한 심리 드라마 영화인 <검은 수선화>의 이름이 이 향수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아주 오랫동안 <선셋 대로>라는 영화에서 이 향수를 여주인공이 썼다는 도시전설이 퍼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향수는 이 향수가 만들어지고 유행했던 시대의 감성으로 가득 차 있다. 전혀 현대에 맞는 향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내 능력에서 최대한 이 향수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 설명하려 했다. 마치 꿀을 오래된 검은 모피에 뿌리고 그걸 흑백영화 시대의 필름으로 촬영하면 이런 느낌이 날 것이다. 정말 이가 시릴 것만 같은 달콤함과, 어둡고 매캐하고 현대의 감수성, 특히 현대 한국의 은은하고 부담 없는 가벼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애니멀릭함이 난다. 실제로 맡아 본 사람들은 너무 옛날 느낌이 난다, 라는 말을 했고 이것은 당연한 말이다. 일반적인 현대 한국의 대중적 취향에 익숙한 사람들은 향을 맡았을 때 과하게 애니멀릭하면 이것을 아름답다, 혹은 예스럽다라는 느낌보다는 더럽다 라는 인상을 받곤 한다. 이건 이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다. 이 사람들이 교양이나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인센스향 역시 이 향수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1910년대에 유럽에 살던 서양인에겐 인센스가 이국적이고 신비한 느낌을 주었겠지만, 현대 한국인은 아무래도 절이나 오래된 사당, 케케묵은 느낌을 떠올리기 쉽고, 나 같은 경우에도 제삿상이 생각이 나기 때문에, 전혀 다른 맥락을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향은 한 번은 시향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은 왜 클래식인가? 그 당시에 충격이었기 때문에, 어떠한 트렌드를 발생시켰기 때문에, 그리고 그만큼의 가치를 가졌기 때문에 클래식이다. 가볍고 은은하고 직장에서 아무의 기분도 상하게 하지 않는 부담스럽지 않은 향수에 익숙하던 사람이라면, 이 향수를 맡았을 때, 향수가 이런 향도 날 수 있구나, 라고 경험의 지평선을 조금 더 넓힐 수 있을 것 같다.



끝맺으며


어두움은 무엇일까? 요새 많은 향수들이 이름에 "느와", "다크", "블랙", 이런 단어를 붙이고 나온다. 하지만 맡았을 때 내가 느끼기에 어두운 느낌을 주지 않는 경우도 꽤 있었기 때문에, 보통 나는 또 속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곤 한다. 혹은, 어둡긴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느낌만 있기 때문에, 마치 모든 별들이 꺼진 우주의 심연 어딘가에 떠다니는 사람처럼 이게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르시스 느와는 플로럴함이 시럽같은 과한 달콤함으로 변주되면서 동시에 정말로 어두운, 흑백영화로 찍은 여배우가 생각날 만큼의 애니멀릭하고 매캐한 인센스의 어둠을 보여줘, 달콤함이 빛으로, 나머지가 어둠으로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둘이 혼합되는 느낌마저 주게 하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할 수 있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면서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에 감탄하게 되는 향수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향수는 아니다. 너무 달고, 내 취향을 감안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클래식한, 너무 고전적인 느낌이 난다. 하지만 이 향을 맡으면 향 표현의 아름다움, 그 빛과 어둠의 대비에 대해서는 뭐라 지적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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