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mellperfumes Dec 29. 2022

빈티지 향수를 좋아해야만 할까?

그럼 무슨 자격증이 생기나? 

들어가며


예전에 SNS에서 어떤 분이 자신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본 적이 없고, 찾아보니 2001년에 개봉했는데 자신은 그 이후에 태어나서 잘 모른다고 하는 말을 봤다. 또, 예전에는 스마트폰 같은 것이 적어 다들 TV에서 트는 영화를 다시 보고 또 보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구나, 라고 적어놓은 것을 봤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 분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솔직히 왜 저렇게까지 화가 나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반지의 제왕>시리즈를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영화를 봤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판타지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것을 꼭 읽어봐야 판타지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다고 생각한다. 


향수도 어떻게 보면 마찬가지다. 어떠한 향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향이 속한 계열을 유행시키거나 구조를 정립한 빈티지 향수를 맡을 필요는 없다. 



빈티지 향수를 좋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전에 나는 잠시 몸이 아팠을 때, 내가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었다. 마치, 너무 잦은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적 결함이 가득한, 병약한 왕족 후예를 지키는 늙은 신하나, 골동품을 끌어안고 죽어가는 수전노가 된 느낌이었다. 따스한 사람의 피부 위에서 숨쉬며 그 사람의 체향과 섞이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에 진열되어 방문객들에게 이런 향수가 있었다, 라고 해설되는 물건으로 존재하는 빈티지 향수를 좋아하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상태가 계속되었다면 내게도 향테기가 왔을 테고, 그랬다면 내가 지금까지 빈티지 향수를 구매한 것에 대해 환멸을 숨기고 어떻게든 정당화를 해야 하므로 예전에 얘기했던 향수 꼰대가 되어 "요오새 향수랍시고 나오는 것들은 근본이 없어! 이런 쓰레기들을 좋아하다니, 너는 정말 교양이 없군!" 이런 아무 영양가도 없는 말이나 하거나, 아니면 모든 향수를 처분하고 (아마 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거나 팔았을 것 같긴 한데, 가끔 악몽에서 향수병이 죄다 깨지거나 넘어져서 향수가 새는 꿈을 꾸는 것을 보면, 최악의 경우 아무 의미 없으니 혹은 그냥 그 상황 자체에 대한 냉소적인 반응으로서 다 섞어버리거나 수챗구멍에 뿌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잠시 암울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곤 앞으로의 삶에서 향을 맡았을 때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취미를 열심히 즐겨야 하는가? 운동을 예시로 들면 그냥 친구랑 엉터리 배드민턴을 치면서 웃는 대신 레슨을 들어서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야 하고, 아니면 무슨 동호회를 들어서 정기적으로 꼬박꼬박 만나서 인증 사진을 올려야 하는가? 악기를 한다면 친구들과 허접 밴드를 만들어서 누가 들어도 못 치는 명곡의 처음 몇 소절만 치다가 점점 실력이 느는 정도로 만족하면 안 되는가? 영화감상 같은 것이면 그냥 아 재밌다~ 이런거 좋아하네~ 이런 말 하고 넘어가지 않고 <시민 케인>부터 정주행하며 한 장르의 영화에 대해 걸어다니는 인간 백과사전처럼 정보를 달달 외우며 타인을 지식이 아닌 정보의 양으로 눌러버려야만 하는가? 요리를 한다면 와아~ 나도 이제 삼시세끼 밥을 해먹을 수 있어에 안주하지 말고 반드시 비싼 재료에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며 이것은 본래 어쩌구 나라에서 저쩌구 시대에 유래한 것으로, 라고 설명을 더해야 하는가? 


내가 향수에 관심을 가졌을 때, 나는 빈티지 향수가 궁금했다. 향수의 계보와, 레퍼런스로 삼는 여러 다양한 향수가 궁금했고, 전통적인 표현방식과 현대의 표현방식은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조금 더 많이 아는 것 같이 보일 수도 있다. 물론 나는 빈티지 향수들의 대다수가 현재 나오는 것들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 이건 어쩔 수 없다. 나라는 사람의 편향이다. 내가 빈티지 향수 중에서도 지금까지 회자되는, 즉 고전이라고 여겨지는 향수들만 골라서 모았기 때문에 오는 시각의 편협함일 것이다1900년대 초~1990년대까지의 향수 중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가치가 없다고 평가되는 향수들은 정말 수두룩하다. 내가 직접 맡아본 빈티지 향수 중에서도 아, 이건 가치가 없다라고 평가한 것들이 있다. 반대로, 현재 나오고 있는 대다수의 향수들은 아직 시간이라는 일종의 체에 걸러지지 않았다. 물론 "현대 향수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이 50년이 지나도 계속 유효한 어떤 레퍼런스나, 혹은 향수의 큰 흐름에 영향을 줬다고 평가되거나, 아니면 그때까지 계속 만들어지고 있을지는 모르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나는 혁신과 예술성을 갖췄다는 것이 증명된 향수와 그렇지 않은, 미지의 가능성만을 가진 향수들을 저울에 놓고 재고 있는 불공평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향수를 잘 리뷰하고, 그것으로 유명세를 얻는 것은 무엇인가? 남들보다 월등한 감각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건 무슨 과학실에서 정식 테스팅을 받지 않으면 그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설령 정말로 후각이 예민하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많은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후각민감성을 끌어올릴 수 있고, 마지막으로 후천적인 요인으로 후각이 사라지거나 점점 둔해질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코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향을 제대로 맡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에 걸려서 후각이 없어진 사람도 있다. 나이가 들면서 후각이 둔해지는 경우는 흔하다. 향수와 향수 브랜드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인가? 아, 향수는 무슨 컨셉으로, 어떤 도시전설이 있고, 이런 정보를 나열하는 것은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과 잘 리뷰한다는 다르지 않나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하고 있다. 그것은 박물관에 큐레이션할때 유용한 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표현력이 좋은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표현방식은, 어떤 유행같은 게 있을 수는 있지만, 사람마다 다르고,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흥미롭고 재밌는 표현방식이 다른 사람에게는 과하고 불쾌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정보도 주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다. 


로알드 달의 단편 소설중에 "맛"이라는 단편이 있다. 여기서 주인공은 유명한 소믈리에인 친구를 초대해서, 준비한 와인이 언제 어디 와이너리에서 나왔는지 맞추는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친구는 그걸 맞추면 당신의 딸과 결혼하게 허락해달라고 요구하고, 이 소설이 출판된 1950년대 초반 배경의 중년 남자인 주인공은 딸의 반대와도 상관없이 경쟁심에 져버려 그러자고 동의한다. 친구는 와인을 천천히 마시고 음미하는데 이 모든 과정이 굉장히 징그럽게 묘사된다. 그리고 결국, 주인공을 몇 번이나 농락한 후, 정확히 무슨년산 어디 와이너리인지 맞춰버린다. 주인공과 딸은 얼굴이 새하얘진다. 이 때, 주인공 집에서 일하는 충실한 노인 하녀가 안경을 가지고 온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하녀는 친구를 보며, "오늘 아침에 와인 셀러를 방문하셨을 때 놓고 가셨지 않습니까?" 라고 묻는다. 


가끔 향수 관련해서 특출나게 뛰어난 감각을 가졌다며 자랑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저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리고, 모두가 향수 리뷰로 유명세를 얻어야 하는가? 화학물질 하나하나까지 분석할 수 있는 절대후각을 가져야 하는가? 그냥 자기가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무언가를 즐기기 위해서 그것에 대한 모든 계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달달 외우고 다닐 필요는 없다.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필수적인 정보는 아니다. 



끝맺으며


빈티지 향수 역시 취미의 한 갈래일 뿐이다. 이걸 알아야 할 필요성은 없고, 알면 좋고 몰라도 좋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꼭 다 알아야 하는가. 향수를 즐기는 것에 대해 꼭 뭔가 더 알고 뭔가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이 즐거우면 그것으로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시간의 문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