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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mellperfumes Feb 15. 2023

규제, 카피향수, 건강, 비서구

향수업계의 미래

2006년 처음 관련 판결이 이후로 세계 각국의 법조계에서는 일관적으로 향수란 지적재산권이 미치지 않는 제품이라는 것을 주장해 왔다. 한 논거따르면 향수란 주관적인 감각이 너무 많이 개입하기 때문에, 같은 향을 맡아도 어떤 사람은 튜베로즈를, 어떤 사람은 포도를, 어떤 사람은 딸기 사탕과 비슷한 향을 느낀다는 것이다. 다른 논거에 따르면 향수를 지적 재산권 하에 등록한다면, 마치 음식 레시피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등록하는 것처럼, 거기에서 조금 달라지는 경우 이게 스스로 고안해낸 것인지 아닌지 등이 불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향수에는 소위 말하는 카피향수가 넘쳐난다. 저번에 교보문고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선 나는 르 라보의 베르가못 22를 카피한 향수가 버젓이 팔리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외에도 다른 유명 브랜드를 카피한 향수가 있었는데, 아니 교보문고 같은 데에서 "짝퉁"을 팔아도 되나? 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다른게 뭐가 있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프레데릭 말의 로 디베하고 아쿠아 디 파르마의 뭐하고 디올 쟈도르 였던 거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수제 카피향수, 뭐뭐풍 향수는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넘쳐난다. 정품을 살 돈이 없을 경우 비슷한 향수를 찾는 것까진 뭐라고 안 하겠는데, 대놓고 이 브랜드의 뭐를 베꼈습니다, 사세요, 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라는 생각을 했다. 


카피향수가 만들어지는 것은 현대에 들어와서 심해진 것은 아니다. 영화 <향수>에서 나오듯이, 옛날부터 조향사들은 누구의 어떤 향수가 유행한다고 하면 그걸 가져와서 분석해봤고 거기에 자신만의 터치를 더하거나 혹은 몇몇 재료를 바꾸거나 빼거나 해서 새롭게 향수를 만들어내곤 했다. 대표적으로 코티의 시프레와 겔랑의 미츠코 등이 있다. 이런 뿌리깊은 표절의 역사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는데, 이 때문에 대부분의 향수 성분표를 보면 모든 재료가 다 나열되어있지 않다. 일반 소비자에게는 생소한 화학 성분의 이름 여러가지를 제외하고 봐도, 늘 "fragrance" 혹은 "parfum" 이라고만 적혀 있는 부분이 있다. 웹사이트 같은 경우에는 "성분 목록은 차후 바뀔 수 있으며" 라는 설명문이 붙어 있다. 향수에 들어간 재료, 배합 비율 등은 "짝퉁"향수가 넘치는 이 업계에서 옛날부터 매우 중요한 비밀이며 이마저도 현대에 와서 사람들이 알러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고 관련 권고안이나 법령이 생기자 어거지로 이렇게 쓰는 것이고, 물론 기계를 돌려서 어떤 성분이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천연향료 등을 쓰면 이걸 또 일정 부분 피할 수도 있다. 


잠시 주제와 상관 없는 말을 하자면, 천연 향료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상하게 인터넷에서 천연 재료 예찬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화학약품이 몸에 안 좋고-이런 말을 하는데, 천연에서 추출했다고 해서 화학물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천연물 중에는 사람에게 독이 되거나 알러지를 일으키는 것이 매우 많다. 독버섯은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이 아니지 않는가. 천연 향료는 어디선가 재배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 해의 기후나 토양의 변화 등에 영향을 끼치고, 대부분의 향료는 제3세계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노동착취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이익 극대화를 위해 한 종류의 작물만을 기르는 플랜테이션식 농업을 하는 경우, 혹은 그렇지 않아도 숲을 개간하여 농사지을 땅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 파괴 문제가 발생한다. 더 나아가 유념할 것은, 천연 향료가 들어갔다고 해서 합성 향료가 안 들어간 것은 아니다. 예로 천연 장미 향료를 썼습니다! 라고 했을 때, 해당 장미 향료에 천연 향료가 몇 퍼센트 들어가야 천연 향료를 썼다고 적을 수 있는지는 규제가 명확히 있는 곳도, 없는 곳도, 있는 곳에서도 매우 낮은 퍼센트인 곳도 있다. 그래서, 천연 향료는 조금 넣고 그 뉘앙스를 합성 향료로 살려서 천연 향료스러운 느낌을 낼 수도 있다. 합성 향료, 화학성분에 대한 두려움은 알고 있다. 환경 파괴, 가습기 살균제 피해 등이 떠오르는 단어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연 원료가 몸에, 환경에 좋기만 한 것은 또 아니다. 


아무튼, 다시 돌아가서, IFRA(국제 향료 협회)와 EU에서는 지속적으로 향수 업계에 권고안을 냈다. 이 원료는 암을 유발할 수 있고, 저 원료는 알러지 유발 성분이고, 그러므로 이것들을 향수에 쓸 수 없다, 혹은 쓰더라도 몇 퍼센트 이하로만 써라, 이런 권고안이 주어졌다. 향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부 향수 생산자들은 이런 규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자의 경우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향수가 지속적인 권고안으로 인해 특정 효과나 향을 내는 원료가 빠짐으로서 덜 풍부해지고 아름다움을 잃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싫어했고, 후자의 경우 새 향수를 만들기에도 바쁜데 이미 있던 향수를 재조합하여 똑같거나 아주 흡사한 향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면서 동시에 기존 향수를 좋아하던 고객들의 원성을 들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재조합을 한 적이 없습니다", "기존 향과 똑같습니다", "품질 관리는 늘 매우 엄격히 하고 있습니다" 류의 말을 해야 한다. 고객들에게 의심을 사기 쉽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 신뢰도가 떨어지는 발언 말이다. EU에서 향수를 팔기 위해서는 저 권고안을 따라야 했다. 참고로 한국의 경우 유럽보다 훨씬 엄격한 규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 EU국가가 아닌 유럽국가, 예로 스위스라든지, 혹은 미국이라든지, 이런 곳에서 인디 브랜드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2022년 12월 29일, 미국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연방 식품 의약품 화장품 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을 개정하는 화장품 규제 현대화 법(Modernization of Cosmetics Regulation Act)에 서명했다. 2023년 12월부터 유효한 이 법은 미국의 식품의약국이 향수 업계에 대해 굉장히 많은 힘을 행사하게끔 해주는데, 먼저 향수를 포함한 화장품 업계가 식품의약국에 등록하고, 제품 및 그 재료, 들어간 알러지 유발 성분을 보고하고, 투명하고 윤리적인 제조과정을 도입해야 하며, 제품을 사용한 후 15일 내에 일어난 심각한 부작용 사례를 보고해야 한다. 또, FDA는 향수를 포함한 화장품 업계에 대한 다른 관리 권한을 가지는데 그 중에서는 제품을 리콜할 권한, 회사의 등록을 정지시켜버릴 권한 역시 포함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향수에 어떤 성분이 들어가는지를 한 나라의 정부 부처가 모두 알게 되기 때문에, 이것이 유출되었을 때 향수 회사들에게 카피향수 등의 범람으로 많은 경제적 손실을 유발할 수 있고, 부작용이 발견되었을 때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제품이 리콜될 수 있고, 심지어는 회사가 등록이 정지되어서 더 이상 향수나 화장품을 합법적으로 팔 수 없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니치와 인디 향수 브랜드의 경우 식품의약국에 등록하는 과정이 지난하고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새로운 브랜드의 탄생은 물론 현존하는 여러 인디, 니치 향수 브랜드 역시 없어질 수도 있다. 설령 등록을 한다고 해도, 규제에 따르는 향료를 구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비싼 천연향료는 대기업들이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고 쓸어갈 가능성이 높으며, 합성향료의 경우에도 다 저렴한 향료만 있는 것은 아니고, 소수의 회사들이 합성 향료 시장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이 담합하여 향료의 가격을 올려버리면 작은 브랜드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특히 알러지 문제가 있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이런 규제를 환영할만 하다. 일단 모든 성분이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 향수를 썼을 때 알러지 반응을 보일지 걱정할 필요가 줄어든다. 암 유발 성분, 혹은 뭐 다른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성분이 파악된다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안전하다는 신뢰를 준다. 물론 향수라는 제품, 혹은 기타 향 제품을 고를 때 소비자들이 안전, 건강이라는 가치를 아름다움이나 자기 표현 수단, 혹은 명품으로서의 과시용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의문이 좀 있지만, 그래도 이 역시 어느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법으로 앞으로 어떻게 향수 업계가 바뀔지 솔직히 모르겠다. 일단 미국의 인디나 소형 니치 브랜드가 굉장히 위축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어쩌면 현재 유럽과 북미를 주 타겟으로 하고 그곳의 문화적 특징이나 코드를 차용하는 향수 업계의 지역적 헤게모니가 스러지고 다른 지역들, 예로 중동, 남미, 아시아 등에서 더욱 다양하고 활발한 향수 시장이 형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해당 지역에서 굳이 미국에 진출하지 않아도 될 만큼 향수에 대한 국내 수요, 혹은 인근 지역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더욱 향수 업계의 서양중심적 코드가 다양화될 것 같긴 하다.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흥미롭다. 예전에는 서양에서 해석한 동양, 중동, 아프리카, 남미의 이미지를 가졌던 향수가 나왔었는데, 지금은 해당 지역에서 본인들이 해석한 본인의 이미지와 코드를 표현한 향수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변화로 인해 서양만이 가졌던 향수에 대한 노하우, 지식 등이 어떻게 퍼트려질지, 어떤 향수들이 나올지, 어떤 지역적 특징이 나올지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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