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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혜 Sep 03. 2022

7. 바퀴벌레 때문에 340만 원을 태울 것인가

절대 양보 못 하는 거 하나씩 있잖아요?

 "꺅!!!!! 어떡해 이제 저기 어떻게 들어가ㅠㅠ"


 신혼 초에 작은 방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하고 도배를 다시 한 여자 나야 나.


 괌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비싼 숙소는 보지도 않았다. 가장 저렴한 숙소를 잡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어느 정도 각오룰 하고 있었다. 불편해도 괜찮고, 낡아도 괜찮았다. 유학원 사장님이 이 숙소를 추천해줬을 때 오래되고 낡아도 괜찮다고 했다. 단, 바퀴벌레는 없어야 된다고 못 박았다. 사장님은 바퀴는 없고 개미가 나올 수 있으니 개미 약만 챙기라고 했다.


  그리고 괌에 도착해서 숙소에 들어와 보니 역시 생각했던 대로 오래되고 낡고, 고장 난 곳이 많은 숙소였다. 옷장 문짝은 떨어져서 덜렁거리고, 이불과 베개에서는 토 냄새가 나고, 화장실 욕조에 있는 수도꼭지에서는 계속 물이 떨어지고  있었고, 또 하수구는 막혀서 내려가지 않았다. 그뿐인가 건조기를 작동시키자 먼지 폭탄이 날리기도 했고, 블라인드도 고장이 나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다 괜찮았다. 고장 난 건 고치면 되고, 더러운 건 청소하고, 이불은 갈아달라고 하면 되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가서인지 정말 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오래 지낼 숙소이니 한국 아줌마답게 낡고 더러운 숙소를 반짝반짝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바닥도 쓸고 닦고, 오래돼서 물 때가 잔뜩 끼인 싱크대도 닦고, 그릇이랑 수저도 다 소독하고... 정말 부지런하게 집을 가꾸었다. 그런데 그게 나타난 것이다.


 그날도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뒤로 무언가 검은 게 샤샤샥 지나갔다. 너무 크고 빨라서 순간 잘못 본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런데 슬픈 예감은 왜 맞는 건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소프라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끼야아아아악~~~


 이 놈은 엄청난 크기였다. 거의 내 엄지 손가락만 한 크기였다. 미국 놈은 크기도 다르구나ㅜㅜ 신혼초에 방에서 바퀴가 나온 뒤에 뭘 했다고??? 그런데 여기는 내 집도 아니고 심지어 해외여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장 사장님과 현지 실장님에게 연락을 했다. 여기 못 있겠다고. 그랬더니 지금 바꿀 수 있는 같은 가격대의 숙소는 없고, 약을 놓고 며칠만 더 있어보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바퀴가 나온 적이 없는 신축 건물로 옮기자고 한다.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니 솔깃했다. 그럼 얼마 추가하는지 물어보자 한 달에 최소 340만 원...... 그런데 너무 바싸니까 약을 놓아보고 그래고 나오면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쓸고 닦았던 숙소에 정이 뚝 떨어졌다. 낮에는 밖으로 나가고 잠만 자러 들어갔다.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어서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급기야 집에서 챙겨갔던 비상용 수면 유도제를 꺼내서 먹었다. 유도제를 먹어도 선잠을 자고 2~3시간 간격으로 계속 깼다. 당연히 컨디션은 엉망이었다. 한국에서 남편도 걱정을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그런 집에서 어떻게 지내냐며 그동안 체득한 레벨을 보여주었다. '가격이 많이 부담되긴 하지만 바꿀래? 아니다, 바꾸자! 당장 옮겨!!!'라는 기특한 말과 함께.


 약을 놓았는데 걱정이 되었다. 약에 들어있는 미끼를 먹겠다고 더 몰려오면 어떡하지??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약을 놓은 지 이틀이 되던 날 또 손가락만 한 바퀴를 봤다. 다시 사장님을 붙들고 얘기했더니 이번에는 연막탄을 해보자고 했다. 하... 그럼 이 짐 다 어떡해???ㅠㅠ 이 좁은 집에 연막탄을 9개나 터트렸다. 아주 씨를 말려주갓어!!!!!


 결론부터 얘기하면 숙소 측에 항의를 한 후 연막탄을 터트리고 하우스 키핑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날 손가락만 한 죽은 바퀴를 발견하고, 그다음 날 같은 사이즈 바퀴를 또 발견하고는 사장님을 붙들고 바꿀 방이 없으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과 같은 가격대의 빈 방이 생겼다며 당장 방을 바꾸자고 거기는 컨디션이 훨씬 더 낫다고........;;;;;;;; 그렇게 우리는 같은 건물 1층에서 2층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정말 소름 돋게 이사하는 그 순간에도 또 한 마리 발견..... 남편은 계속 신축 건물로 가라고 했지만 바퀴 때문에 최소 340을 태워야 하나 정말 많이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결론은 조금 더 낫다는 2층으로 가보고 거기에서도 나오면 그때 다시 생각해보는 걸로.......


아랫집에서 윗집으로 이사온지 내일이면 일주일이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 보이지 않고 있다. 아직 안 보인 거라 언제든 보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온몸이 주뼛주뼛해지고 소름이 돋아서 괌에 대한 좋았던 이미지가 나쁜 게 변하려고 하는데.. 앞으로도 절대 보이지 않으면 좋겠다..ㅠㅠ


참, 여기서 지내다 보니 다른 숙소에서 지내는 엄마들도 만나게 돼서 이야기를 해봤는데 다른 숙소에서도 바퀴 대환장 파티 중이라고 한다. 신축 건물에 사는 엄마들은 아직 못 만나봐서 모르겠는데.. 여기는 날고 기고 온갖 방법으로 집안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바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데 난 다른 건 괜찮을지 몰라도 이건 절대 양보 못 하거든ㅠㅠ 7,8,9월은 우기라 벌레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기라고 한다. 혹시 필자처럼 벌레, 특히 바퀴벌레 극혐 하는 분들 계시면 꼭꼭꼭 참고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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