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2.2023
독하게 착한 마음을 갖고 싶다.
하지만 착한 마음은 늘 여리다.
나쁘고 여린 마음이라는 표현을 들어봤는가.
독해지는 것에는 어느 정도의 착하지만은 않은 마음이 깃든다. 때로는 못된 마음까지도.
이것을 조절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은 매우 긴밀하다.
측은지심 여린 마음. 나만 생각할 수 없다. 독해질 수가 없다.
각자도생 독한 마음. 여린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다. 옆에 누가 어떻게 되는지보다 내가 살고 보자.
모든 경우가 그렇다고 치부할 수 없겠으나, 아니다라고도 말할 수 없다.
‘착하다.’라는 것은 언제부터 변질된 것일까.
“넌 너무 착해, 그러니까 그렇게 당하는 거야. 사람이 좀 못되기도 해야지. 으이그-”
물론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나. 주변에 선함의 아이콘 같은 지인 몇몇은 늘 듣는 말이다. 남을 위하는 마음이 언제부터 혀를 끌끌 차는, 당하는 것의 당당한 이유가 되었는가.
절대 선과 절대 악은 없다고, 악은 악대로 선은 선대로 모양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라고 아무리 말해주어도 나는 멍청한 것인지 머리로만 이해가 간다.
이를테면 힘이 센 육식동물 사자는 힘이 약한 초식동물 영양을 먹고, 죽은 사자는 결국 땅으로 돌아가 풀로 자라나고 그 풀을 영양이 먹게 된다는 순환의 선악. 모든 것이 이와 같은 자연의 법칙과 같은 것이라 해도. 이미 자연을 거스른 인간사는 보다 복잡하지 않은가. 그리고 언제나처럼 늘 선을 넘는 것이 문제이다. 인간은 이미 배가 부를 만큼 불러서도 계속 사냥을 해대니까.
그럼에도 어머니는 선함이 반드시 이길 것을 믿는다고 하셨다.
나도 정말로 그리 믿고 싶지만, 지금까지 짧지 않은 시간을 살아가면서 선한 것이 이기는 경우를 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보란 듯이 악한 것이 승리를 이루는 것을 뜬눈으로 목도할 뿐-
악함은 조금만 틈을 주어도 빠르고 깊게 뿌리내린다. 그리고 독하게 살아남는다.
하지만 선함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느리지만 단단하게 뿌리내리고자 정성스럽게 시간을 들인다. 때문에 단단한 대지와 같은 마음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 땅이 흔들리고 틈을 보인다면 선함은 시들어 버리고 만다. 반대로 잘 다져진 토양 같은 강인한 마음에서는 반드시 선함이 자라난다. 그곳엔 악함이 뿌리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독함’이 없다. 잘 다져진 토양은 비옥하기에 독하게 자리 잡을 이유가 없다. 이것이 선함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틈바구니에서 결핍과 욕망을 먹고 자란 악함은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뿌리를 단단히 박고 몸집을 키운다. 그리고 모두를 장악하고 결국은 해낸다. 이 얼마나 독함이 필요한 일인가. 이들에게 대적할 이 없다.
어여쁜 동화에서는 햇님의 따듯한 빛으로 옷을 벗기며 강하게 부는 바람을 이겼지만, 물론 때로 햇볕정책이 들어맞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갈등 속에서 이는 아름다운 동화의 이야기로 멈추고 만다.
그런데도.
나는 독하게 선한 마음을 갖고 싶다.
선하지만 독하고 독하지만 악하지 않은. 그런 마음을 갖고 싶다.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지지 않는 그런 강인한 마음을 갖고 싶다.
나의 땅은 비록 쩍쩍 갈라져 있고 비옥하다거나 단단하지 않지만, 사실은 착한 마음보다 못된 마음이 쉽게 자리 잡지만, 그럼에도 이곳에서 독함을 키우고 선함을 꽃피워 내고 싶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한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이러한 마음이, 살아있는 것이 나날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저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에서 그치게 될까?
매일 악에게 지고 독함은 무너지지만,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선함에 눈길을 보내고 박수를 보내며 다시 힘을 얻는다. 그리고 끝내 나는 독하지만 착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