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17. 카파도키아 3일 차 - 그린 투어
비행의 흥분을 뒤로하고 호텔방에 들어왔다. 워낙 일찍 일어난 탓에 꽤나 피곤하다. 아직 7시도 안 되었기 때문에 9시 45분 그린투어 출발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간단히 씻고 1시간 정도 잠을 잤는데 꽤 잘 잔 것 같다. 개운하게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하러 올라왔다. 아침보다 더 맑은 하늘은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어제 흐린 날씨의 식당과는 인상이 전혀 달랐다. 주변 풍경 배경이 파란 하늘로 바뀐 것뿐인데 호사스러운 뷰의 식당으로 변했다. 어제와 같은 메뉴로 구성된 아침은 다시 먹어도 훌륭했다. 오늘은 초코 푸딩 같은 디저트가 추가되어 있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간단히 준비하고 로비로 나가자 그린 투어 픽업이 도착했다.
레드 투어와 마찬가지로 호텔을 통해 예약했기에 혹시 오늘도 메수트를 만나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다른 가이드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첫 목적지인 파노라마 뷰 포인트로 향하면서 오늘 여행에 대해서 브리핑하는 것을 들어보니 좋은 가이드를 만났다는 예감이 든다. 자기 이름은 투르가이고 자기 작업은 투어 가이드라고 소개했다. 사람들이 농담인 줄 알고 다 같이 웃으니 자기 신분증을 보여준다. Turgay라고 적혀 있다. 진짜 남자라는 이름을 지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후에 일정이 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더니 투어 마무리 시간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느긋하게 안내하겠다고 한다. 사실 재방문이 있을 투어도 아니고 일은 빨리 끝내고 쉬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텐데, 왜 오래 일을 하겠다는 것일까? 이 일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카파도키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시작하니 예감은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어제보다는 해설에 깊이가 있고 좀 더 신뢰가 간다. 다만 영어를 100프로 알아듣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몇 가지 부분은 스킵되기도 했지만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들었던 이야기를 조금 재구성하고, 검색 등을 통해서 빈틈을 채우면 카파도키아에 대한 개요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였다.
카파도키아가 예쁜 말들의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와 낮은 지방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쪽이라도 이상할 것은 없어 보였다. 카파도키아는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내륙의 5개의 지역(악사라이, 크르세히르, 니즈데, 카이세리, 네브쉐히르)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에 중앙에 해당하는 곳이 네브쉐히르이고 네브쉐히르 중심부에는 맨 윗 성, 중간 성, 아랫 성이라는 의미로 바시사르(위르굽), 오르타히사르, 우치사르 세 개의 성이 있고, 그 사이를 좁은 의미에서의 카파도키아로 부른다고 한다고 한다. 그 세 개의 성 사이 가운데 마을이 바로 괴레메이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적 특성으로는 화산재가 쌓여서 생긴 응회암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카이세리에서 본 높은 산이나 으흘라라 계곡으로 갈 때 본 하산 산 등 대부분의 높은 큰 산들은 순상 화산이라고 하는데, 이 화산들이 화산재의 공급원인 것 같다. 내가 본 산들은 대부분 모양도 방패 모양으로 예쁘게 올라간 것으로 보아서 큰 폭발보다는 주기적인 마그마 분출로 화산재를 넓게 퍼뜨렸을 것 같다. 화산재가 굳어져서 만들어지는 응회암은 사암과 같은 다른 퇴적암과 마찬가지로 강도가 그렇게 강하지 않아서 쉽게 파고 들어갈 수 있다. 동굴 건물에 들어가면 볼 수 있는 정으로 쪼갠듯한 무늬는 그렇게 사람들이 파 들어간 무늬가 아닐까 싶다. 동굴 건물이 주된 주거 양식이 된 이유는 건설이 편리하기 때문도 있지만 주거 환경이 쾌적한 것이 가장 컸다고 한다. 방문했던 동굴 건물은 대부분 서늘한 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연교차가 큰 카파도키아에서도 동굴 집 안에서는 연중 온도가 15~20도 사이를 유지한다고 하니 거주에는 최적의 기온이 아닐 수 없다.
카파도키아 자체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 기온이 낮은 반면에 위도가 높고 내륙 지방이라서 일조량이 좋다고 한다. 게다가 화산 지형의 비옥함 덕분에 물만 있다면 농사를 짓기 편한 환경이라고 한다. 이 때는 몰랐지만 괴레메는 유명한 와인 산지이며 관개수로의 여부에 따라서 다르지만 카파도키아 지방의 농업 생산성은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개가 어려운 스탭 지형이라도 양 등을 방목해서 먹고사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문명의 발상지라고 하는 강가들은 지금은 사막이 된 경우가 많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나 황하 유역 나일강 등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후 변화나 댐 건설 등의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인류가 오랜 기간 개발했기 때문이다. 황하 유역도 메소포타미아 유역도 나일 유역도 원래는 밀림이었지만 인류가 개간을 반복하면서 삼림이 없어지고 토양이 유실되어 결국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기후의 변화도 있었지만 농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는데 이곳은 아직도 생산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첫 번째 장소인 파노라마 뷰 포인트는 우리가 첫날 갔던 식당 바로 위에 위치해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우리 팀 밖에 없다. 한눈에 괴레메 마을과 그 너머의 침니 지형까지 잘 보였다. 맑은 날씨 덕분에 대충 찍어도 사진이 너무 아름답게 나온다. 방금 문을 연듯한 기념품 상점에 마그넷이 다양해 보였다. J 씨는 언제 구매할 수 있을지 모르니 여기에서 구입하겠다고 한다. 여러 가지 마그넷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마그넷을 구입했다.
두 번째 포인트는 얼마 이동하지 않아 도착한 피전 밸리였다. 이름답게 비둘기가 참 많이 있었는데 투르가이는 비둘기의 중요성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해주었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불결하게 느끼기도 하지만 비둘기는 그들에게 중요한 새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통신에 사용했으며 알은 프레스코화의 원료로 사용했고 힘든 시기에는 식량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동굴 건물에 남아있는 작은 구멍들은 비둘기 집으로 사용하기 위한 구조들이었다고 한다. 어떤 문화권이라고 하는 중심에는 아마 한국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만난 비둘기와 이곳의 비둘기는 때깔이 달라 보였다. 비둘기는 기본적으로 지저분한 새는 아니다. 절벽 지형에서 살기 때문에 도시 지형에 쉽게 적응했던 것이고 그들이 더러운 것은 우리의 더러움의 영향일 뿐이다. 비둘기 너머로 우치사르가 보였다. 이번이 세 번째 장소에서 보는 우치사르였는데, 첫 번 째는 레드 투어에서 봤을 때는 반대방향이라서인지 흐린 하늘 밑에서 봐서 인지 좀 외로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에 달빛 아래에서 벌룬과 함께 본 몽환적인 우치사르도 있었는데, 오늘 보는 비둘기 너머의 우치히사르는 또 다른 멋이 있었다.
다음 순서는 보석 상점이었는데 주인의 경력이 특이했다. 멕시코에서 투자 이민 온 아저씨라고 하는데, 차림새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특이한 터키 수정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빛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특별한 보석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 신뢰는 가지 않았다. 오히려 주인아저씨의 거동을 구경하는 것이 좀 더 좋은 구경거리가 되었다. 혹시 J 씨가 눈에 담아 두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고려라도 해보았을 텐데 배구장 하나는 족히 될 넓이의 매장을 돌면서도 관심을 두는 물건은 없어 보였다.
다음으로 향하는 목적지는 지하 도시라고 하는데 한 시간 이상 이동해야 한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문자 그대로 직선의 도로가 나있다. 반대편을 달리는 차가 드물 정도로 한적한 평야를 달리는 미니 버스에서 한 명 두 명 잠들기 시작했다. J씨도 아침의 벌룬 투어가 힘들었는지 이내 잠들었다. 끝없이 초원이 펼쳐져 있다. 어떤 곳은 농사를 짓기도 하고 어떤 곳은 방치되어 있기도 하다. 농사를 짓느냐의 여부는 아마도 물을 댈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 같은데, 물이 흐르는 마을 근처에 농경지가 몰려 있는 것 같다. 황량해 보이는 초원에는 봄이라 유채꽃이 간간히 펴있다. 건조해서인지 제주에서 본 유채꽃의 절반도 안 되는 키였지만 어디에나 조금씩 피어있었다.
오랜 이동을 마치고 카이막클르 지하도시에 도착했다. 가장 유명한 데린쿠유가 아닌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혼잡도나 볼거리에 맞춰서 선택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폐소공포증이 있는지 입구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번을 확인한다. 입구에 들어가 있는 첫 번째 공간은 마구간이라고 한다. 파수, 온도 조절, 은폐 등 입구에 동물들을 둬서 갖는 장점들을 설명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입구에 주차장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느껴졌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제 오픈 에어 뮤지엄에서 메수트가 주방이라고 설명했던 곳은 사실 마구간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마구를 걸어 놓았다고 하는 훅과 여물을 놓아두었다고 하는 홈이 메수트가 주방이라고 설명한 공간에도 동일하게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마구간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다시 한번 폐소공포증 여부와 각자 상태가 문제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한층 더 내려가서 더 들어가면 빠르게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과연 아래층으로 내려갈수록 공간이 좁아지기 시작한다. 통로는 허리를 굽히고 오리걸음을 해야 지날 수 있었으며, 방 같은 공간에서도 허리를 다 펼 수가 없었다. 투르가이는 킥복싱 선수나 농구선수를 가이드한 적이 있었다는데 과연 몸집이 큰 사람은 이곳을 구경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조금 더 들어가자 둥근 맷돌을 세워놓은 것 같은 돌 문이 보였다. 이 돌 문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시설이었다고 한다. 한쪽에는 중앙에 홈이 있어서 굴려서 열고 닫을 수 있게 되어있다. 반대편은 반반해서 힘을 줄 수 있는 곳은 없고 돌은 무겁고 공간도 좁다. 만약에 적이 침입해 이 문을 안에서 닫으면 바깥에서는 열 수 없었을 것 같다. 어떤 곳은 이런 문을 양쪽에 만들어서 침입자를 가두는 구조를 갖춘 곳도 생겼다고 한다. 또한 이곳의 좁은 통로에서는 갑옷 등 중무장한 병력은 들어가기 어려웠을 것 같다. 동굴 안 세력이 상대적으로 수가 부족하거나 장비가 부실해도 소탕하기가 쉽지 않은 장소였을 것 같다.
올라가다가 한 곳에 수직 갱도가 있는데, 위아래로 살펴보라고 한다. 위로는 하늘까지 아래로는 가장 깊은 곳의 지하 수원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3-4층 깊이는 될까? 위쪽을 올려다보자 우리가 생각보다 깊이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래쪽은 지하수가 흐른다고 하는데 너무 깊어서 눈에 보이진 않았다. 우리 관광 코스는 지하도시의 절반 정도만 들어간다고 하는데 제일 아래까지 간다면 허리를 굽히고 좁은 통로를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꽤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운데 화덕이 있는 주방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연기를 숨기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살다 보니 취사나 난방을 위해서는 연기가 나오곤 할 텐데, 연기는 민가의 굴뚝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평소도 민가에서는 불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곳의 존재를 숨길 수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오랜 기간의 지혜가 모여서 만들어진 방법일 것 같다. 취사를 하는 곳 근처에는 그을음 자국이 보였는데, 조명을 위해서는 아마씨유를 사용했다고 한다. 다른 종류의 조명은 그을음 때문에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한다. 과연 이 좁은 공간에서 동물성 유지라도 태우면 그 냄새와 매캐함에 견딜 수 없었을 것 같다.
와인 양조장도 있었고, 와인을 저장하는 곳도 있었다. 와인 양조장 자리는 큰 욕조와 같은 구조물과 거기서 포도즙을 흘려보내 모을 수 있는 구조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에는 규칙적인 구멍들이 있었는데, 암포라라고도 하는 테라코타 토기에 와인을 넣어서 저 구멍에 끼워서 보관해 두었다는 모양이다. 가혹한 환경이었기 때문에 정신적 안정을 위해서는 술이 꼭 필요했다고 설명했지만, 지금처럼 수돗물에 염소를 넣어 소독할 수도 없는 시절이니 위생을 위해서 와인을 물에 타서 소독제처럼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 같다.
투르가이는 코스가 끝나갈 때쯤 지하도시의 미스터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이 지하도시에는 대부분의 시설이 밝혀졌지만 화장실에 해당하는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아까 봤던 수직 갱도 아래의 지하 수원에 버려서 흘려보내는 방법, 도자기에 모아서 내보내는 방법, 파묻는 방법 등이 이야기된다고 한다. 아마 여기서 숨어 지내는 기간에는 인구 밀도도 높아져서 배설물 처리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기에 간단히 처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마실 물로도 사용하고 있는 지하수에 버리는 것은 방법이 아닐 것 같다. 요강에 모아서 쌓아두면서 여유가 있을 때마다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을까? 숨어서 지낸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밀폐해서 지내는 시간은 외부에 적이 있을 때 등으로 길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허리를 굽히고 한참을 걸어서 어느덧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좁고 어두운 동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다. 다음은 계곡 하이킹을 위해 으흘라라 밸리로 간다고 한다. 다시 1시간 정도 이동한다고 하니 다시 미니 버스에 자리를 잡았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J 씨는 잠이 든다. 저 멀리 평원 너머로 눈 덮인 산이 두 개가 보인다. 구글링을 통해서 확인하니 하산산이라는 산이며 순상 화산이었다. 아마 카파도키아를 만든 화산들 중에서 하나일 것 같다. 한 시간이라고 안내받았지만 40분 남짓 달려가자 으흘라라 마을에 도착했다. 으흘라라 계곡의 입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가파른 계곡에 동굴집과 일반 집이 섞여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을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J 씨와 이 독특한 분위기를 공유하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다. 온천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도 하루 정도 묵어도 운치 있을 것 같았다.
으흘라라 계곡에 도착하자 왜 한 시간씩 달려서 여기까지 하이킹을 하러 오는지 알 수 있었다. 제주도의 주상절리를 열 배 정도 늘려서 양쪽으로 세우면 이런 계곡이 될 것 같다. 2-300미터 높이는 족히 될 법한 육각형의 빼곡한 기둥이 양쪽에 서있다. 계곡 위에서 계단을 통해서 내려가기 전에 트루가이는 희소식을 하나 알려주었다. 구경하러 내려가지만 다시 올라올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우리 차가 계곡 반대편 식당 근처에서 우리를 기다릴 것이라고 한다. 계곡을 내려가는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참 고생스러워 보임과 동시에 우리 코스에 감사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돌벽은 화성암이라 파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이곳에도 동굴 교회들이 있다. 계곡 입구에 하나 있어서 구경하고 계곡을 따라 하이킹하면서 절벽을 보자 곳곳에 사람이 판듯한 흔적이 보였다. 약한 포인트를 찾아서 만들었거나, 응회암을 뚫어서 발전시킨 기술을 활용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계곡 아래 개울 옆에는 나무와 수풀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이제까지 카파도키아는 대부분 스탭이나 돌밭이었는데 수풀이 우거진 산책 코스를 걸으니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자칫하면 심심할 수 있는 산책 코스 중간중간에는 소박한 포토존들이 꾸며져 있다. 허수아비라든가 간단한 인형 같은 구조물도 있고, 벤치도 곳곳에 있다. 웬지 그 소박함이 좀 더 정겹게 느껴졌다. 봄이라 아직 덥지 않은 계절이라 그런지 서늘하다. 한여름에도 계곡의 시원함은 느껴질 것 같다.
계곡이 끝나갈 때쯤 넓어지는 구역이 있는데, 요세미티 밸리의 풍경이 떠오르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스케일은 조금 더 작고, 빙하가 침식해서 만들어진 지형이 아니라 용암이 흘러간 지형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수직에 가깝게 올라간 기암괴석 사이에서 갑자기 넓게 펼쳐진 계곡의 초원이 비슷한 느낌을 만드는 것 같다. 넓은 초원 주변에 개울가에 방갈로들이 있고, 거기서 식사를 할 수 있게 꾸며져 있었다. 한국의 계곡 음식점이 떠올랐다. 물론 한국처럼 계곡을 다 가리고 있는 추한 모습은 아니었다. 자몽 주스가 맛있어 보여서 하나 주문했다. 30리라로 가격이 저렴하진 않다고 느꼈는데 주먹 두 개만 한 커다란 자몽을 두 개나 짜서 만들어준다. 저렴하지 않다고 잠시나마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다.
이때쯤 완벽했던 하루의 오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로 벌써 2시가 넘어가니 꽤 배고팠던 것이다. 점심 식사는 하이킹이 끝날 때 식당이 있다고 했고 출발하기 전에 메뉴를 주문했다. 앞으로 3-40분을 더 걸어야 하는 것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으흘라라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 물가에 있는 식당 중에 하나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자 역시 기본 빵과 렌틸 수프가 서빙된다. 여기는 부드럽고 밀도가 낮은 바게트였다. 배고팠기 때문에 맛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맛있는 음식이었다. 빵을 렌틸 수프에 찍어서 빠르게 먹다가, 이제까지 빵에 집중하다가 메인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것이 떠올라서 멈추고 J 씨의 빵도 뺐었다. 원망스러운 눈길을 받았다. 미리 메뉴를 주문할 때 안전하게 우리는 치킨과 쇠고기 캐서롤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메뉴가 나오는 순간 왜 생선을 선택하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달궈진 도자기 그릇 위에 참 먹음직스러운 생선이 통째로 잘 구워져서 나오고 있었다. 투르가이가 신선한 생선이라고 강조를 했는데 믿을걸 그랬다. 생선이 아쉽기는 했지만 우리 음식도 참 맛있었다. 패키지에 기본 포함인 점심이 이런 맛이라니 터키는 음식 걱정은 전혀 할 필요 없는 나라라는 것을 다시 느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베지르하네 성당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해 있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으흘라라 계곡이 한눈에 잘 보였다. 괴레메의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함과는 다른 녹색 풍성함과 장관을 이루는 절벽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사진 몇 장을 찍어 보지만 카메라에 담기는 모습은 일부분의 아름다움만 담고 있다. 특히 광각의 풍경에서는 카메라에 담기는 풍경이 너무 아쉽다. 눈에 가득 차는 풍경의 느낌과 부분 부분 살펴보는 느낌이 없어서 그럴까? 나중에 기술이 조금 더 발전해서 초고해상도 VR영상으로 보면 이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
이 성당은 언덕 정상에 말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철문이 달려 있긴 하지만 닫기는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교회 안에 벽화는 프레스코화와 그렇지 않은 부분이 섞여 있었다. 이곳의 프레스코화는 역시 심하게 훼손되어 있다. 사실 남아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폐허처럼 거의 방치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나 싶지만, 이런 유적의 자연스러움은 세계 어디서도 느끼기 힘든 부분일 것 같다. 터키에는 문화 유적이 너무 많아서 관리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오랜 기간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의 흔적 덕분일 것이다. 가이드 아저씨는 폐허가된 교회의 프레스코화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는데 어제 어제 메수트 아저씨의 설명보다는 좀 더 깊이가 있었다. 특히 훼손에 대해서 종교적인 이유까지 같이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사실 터키나 그리스인에게는 말하기 껄끄러운 소재인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네브쉐히르 시내에 있는 식품 가게에서 다양한 터키 과자와 견과류 등을 구경했다. 여러 가지 과자들을 시식시켜줬는데 솜사탕 식감이 맘에 들었다. 가격도 비싼 편은 아니라서 J 씨는 직장 동료 용으로 구매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란산 샤프란도 있었는데 마침 빠예야용 샤프란이 떨어져서 가격을 물어보니 한국에서 구매할 때의 가격의 90% 정도 가격으로 보였다. 투어에 끼어있는 코스인 만큼 가격이 적절한 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결국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았다. 나중에 현지인이 가는 다른 가게를 방문할 다른 견과류나 향신료 가격이 크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처음 안내했던 대로 7시가 다 되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은 특별한 예약은 없지만 벌룬이 뜰 것 같아 보여서 구경하려면 일찍 자야 했다. 저녁을 빨리 먹어야 했다. 식당을 찾는 것도 좀 피곤하기도 해서 어제 갔던 식당에 다시 가기로 했다. 오늘은 점심을 늦게 먹어서 그런지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아서 간단하게 사모사와 치킨 케밥에 맥주도 하나 추가해서 먹었는데, 오늘은 기본 반찬에 롤 튀김(?)도 들어 있었다. 조식 먹을 때마다 J 씨가 제일 좋아하던 음식이라서 참 반가웠다. 계산을 하려는데 현금이 부족했다. 유로화는 있어서 유로화로 드려도 되냐고 물어보는데 할머니가 기다릴 테니까 나중에 달라고 하신다. 어제 온 것을 기억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냥 도망갈 거라는 생각은 안 드는 모양이다. 환전소에 가서 돈을 바꿔서 지불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내일 벌룬이 뜨는지 로비에서 확인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