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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면서 Jul 12. 2024

23살 휴학생, 삼성전자 사옥에 들어가다

밥벤저스의 여정

삼성타운에 처음 가본 나, 용케 길을 잃었다



"공모전 같이 나갈래?"



Y 언니의 물음에 당연하듯 긍정의 답을 보냈다. Y 언니와는 작년 기자단 활동을 함께했었다. 언니는 주변을 잘 챙기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나 또한 챙김 받은 게 많아 매번 고마움을 느꼈다. 이번에는 증권사 숏폼 영상 공모전이었다. 사실 증권이고 주식이고 아무것도 모른다. 그저 좋은 사람이 불러줬다는 것만으로 함께할 이유는 충분했다.


초대받은 메시지방에는 S 언니도 있었다. S 언니는 특유의 활발함으로 늘 회의나 촬영 현장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팀원을 더 모색하던 찰나, D 동생을 떠올렸다. D 또한 같은 기자단 멤버로 통통 튀는 상상력을 가진 친구였다.


우리 넷은 이미 모인 적이 있다. 작년 늦가을 즈음 아침밥 홍보 공모전에 함께 도전했다. '아침밥파'라는 인물이 나와 열렬히 토론하는 그런... 영상이었다. 결론적으로 수상하진 못했지만, 어찌 됐건 우리는 쌀알 마냥 '아침밥'이란 단어로 뭉친 팀이었다.




왜 아이디어 내는 것은 늘 어려울까. 이상하게 나만 창의력이 없는 것 같다. SNS를 떠돌아다니다 보면 ‘창의성’, ‘크리에이티브’와 관련된 글을 종종 발견한다.  창의력은 태생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며 주변을 돌아보고, 당연했던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그 메커니즘을 머릿속으론 100% 이해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해도, 새롭고 재밌는 상상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주식하는 사람들을 '개미'라고 칭하는 것이 문득 생각났다. 그리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활용한, 조금은 일차원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병맛(?) 콘셉트에 팀원들의 반응은 예상외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인가? 스스로에게 묻는다.


다양한 의견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D의 아이디어였다. '조삼모사'의 언어유희를 ‘삼성증권’과 접목시킨 것이다. “삼성증권에 투자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공모 주제에 맞춰, 연령대 별로 조삼모사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소재로 삼자는 의견이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는 다양한 뜻으로 인지되고 있다. 어른들에겐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라는 사자성어로, 청소년들에겐 "조금 모르면 3번, 아예 모르면 4번"이라는 시험 유머로 각인되어 있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조삼모사'를 만들어갔다. Chat GPT를 괴롭혀 여러 가지 카피를 뽑아내기도 했다. "조금 모르면 삼성증권, 모르면 사고야", "조용히 삼성증권, 모르면 사지 마"... 뭐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다수였지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끝내 결정한 카피는 이것이다.



조언이 필요하면 삼성증권,
모르겠다고? 사용해 보면 알 걸!




S 언니가 준비한 소품들. 내가 그린 콘티


5월의 마지막 날. 대본과 콘티, 여러 소품을 각자 챙겨 모였다. 오랜만에 강의실과 분수대 등 캠퍼스 곳곳에서 촬영을 하니 딱 일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전문적인 촬영 장비나 기술 같은 건 없지만, 푹푹 찌는 더위와 살얼음장 같은 추위에도 그저 깡과 즐거움으로 버티던.


사이좋게 역할을 나눠 영상을 편집했다. D가 촬영본을 자르고 합치고, 나는 증권사 어플 화면을 만들고, S 언니는 어울리는 음악을 찾고, Y 언니는 자막 디자인과 마무리를 하는 식으로. 하루는 새벽까지 줌 화상회의로 실시간 피드백을 나눴고, 마침내 영상은 완성됐다!


p.s. 완성본은 글 마지막에 첨부함!



엥 미쳑다


1차 심사에 통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선 카피가 독특하고, 또 그걸 영상으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했다. 해서 살짝 기대하고 있었지만 진짜 될 줄이야.


Y 언니가 출품할 때 쓴 팀명은 브렉퍼스트






며칠 뒤, 삼성전자 서초사옥에 방문하게 되었다. 1차 통과자 설명회 날이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에 놀랐다. 이게 대기업이구나. 그 말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순간이었다.


‘감독‘이란 호칭이 붙은 이름표, 팀별로 촬영할 수 있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우리를 인터뷰하는 대포카메라와 짐벌, 도시락을 비롯한 갖가지 간식까지. 그런 것과 함께 2차 심사 설명을 들었다. 이게 대기업이구나.



제일기획 이승용 카피라이터의 특별 강연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60여 명의 감독 꿈나무들에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재밌어하는 ‘말’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또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시키라고. 창의력이나 기깔나는 크리에이티브는 역시 꾸준한 관찰과 연습에서 나오는 게 맞나 보다. 나만 창의력이 없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에게 창의력이 생기는 거구나. 깨달았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힐끔 D를 쳐다보게 되었다. 브렉퍼스트 팀을 이 자리에 오게 해 준 그 아이디어의 씨앗이, 그녀의 고민과 생각에서 시작됐으니. 그게 천부적인 능력일까 아니면 꾸준한 관찰과 연습에서 비롯된 걸까 궁금했다. 뭐가 됐든 닮고 싶다고 새삼 생각한 순간이었다.




아무튼 지금은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느낀 것들은.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음에 감사하다는 것. 그래도 작년에 좋은 팀원이었구나, 그런 안도감. 앞으로도 함께 도전하고 싶은 사람이 되자는 다짐. 좋은 아이디어를 다 같이 잘 가꾸자. 전 과정이 즐거웠던 이유는 팀원 모두가 열심히 참여해 주었기 때문. 그것에 또 감사하고. 최종 결과도 좋았으면 좋겠다!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을 쓰고 싶은데 말이 씨가 될까 두렵고. 뭔가 잘될 것 같은 기분이라 억지로 쓰고 싶지 않다. 끝!


촬영날 밥벤저스 수장 Y 언니가 챙겨준 아침밥. 일년 전 오전 촬영 직전에 언니가 직접 싸온 도시락을 먹었던 기억이 났다.



p.s. 선호도 투표를 진행한다던데! 이 글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의 마음을 건드렸다면... 아래 영상에 좋아요 부탁드립니다 :p


https://youtu.be/uYgXO8RXUEA?si=Y0Kb4sN2uVBU4k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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