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영화 속 숨겨진 키워드들

마침내 헤어질.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퍼지는 사람도 있다."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가 개봉했다고 하여 기대가 많았다.

사실 이 영화는 감독상을 받은 박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보다는 오랜만에 상영하는 서정적인 느낌의 진한 로맨스물이라는 점이 나를 더 끌리게 했다.

예고편에 나오는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이 장면이 그런 의미 일 줄이야.

영화의 러닝타임은 생각보다 길었지만 디테일 하나하나, 복선을 찾으면서 보려고 하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감독이 추구하는 그 특유의 차가운 색감, 한색 위주의 연출이 으스스하고 미스테리한 이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살린 것 같다.

촬영 구도나 소품, 인테리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 것이 눈에 띄었다. 뒷배경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만한 디테일한 임팩트의 소품들과 요소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하는 줌 촬영 기법이나, 화면 전환에서 주는 연결감이 참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영화를 잘 모르는 나조차도 소름이 돋았으니.

이 영화는 상업영화가 아니다. 예술 영화다.

자 그럼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영화의 주연인 박해일과 탕웨이는 해준/서래라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해준 : 형사, 폭력 살인사건 등 자극적인 요소들에 흥미를 느낌, 최연소 경감, 잠이 부족(불면 증), 주말부부, 살인사건은 좋아하지만 피 냄새를 싫어함, 형사로서의 자부심이 있음, 깔끔하고 깨끗함, 사회적인 모습과 가정적인 모습에서 항상 떳떳하고 꼿꼿한 모습이길 원함-이로 인한 부담감,스트레스로 인하여 수면 부족.

-서래 : 중국에서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추적을 당하다 첫 번째 남편의 도움으로 밀항에 성공, 소유욕 강하고 깔끔한 남자에게 가정폭력에 시달림, 깔끔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임, 본인을 힘들게 했던 남편을 마침내 죽임, 어렸을 때부터 아팠던 엄마의 기억과 부부간의 가정폭력에 대한 애정결핍, 해준은 서래에게 품위있게 대해준 사람(현대인 치고는). 고소공포증이 있고 산보다는 바다를 좋아함.

  

해준은 폭력, 살인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이고, 서래는 해당 살인사건의 피의자.

해준이 서래의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비슷한 면과 마음이 통한다는 점에서 극 중 두 인물은 서로 배우자가 있음에도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다.

해준은 최연소 경감 자리를 꿰찰 정도로 사회적, 가정적인 모습에서 빈틈없이 깔끔하고 품위 있는 사람. 서래는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며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서서히 가까워 지며마음을 열었다.

해준의 헤어질 결심은 파도처럼 덮쳐왔고, 서래의 헤어질 결심은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진행되었다. 해준의 헤어질 결심은 둘 사이의 이별, 종결하려는 헤어질 결심. - 해준은 이포로 내려와 배우자와 함께 지내며 헤어질 결심을 했다. 해준의 헤어질 결심의 증거는 이포로 내려오고 나서 변화된 것들. 시계, 구두, 피 냄새. 마음 정리의 과정.

서래의 헤어질 결심은 물리적인 헤어짐의 과정.

치밀하고 계획적인 성격의 서래는 헤어질 결심마저 찬찬히 계획한다. 그에게 사랑고백을 하고, 끝까지 그를 위해 자신의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는 서래. 사랑의 이유라면 나쁜 짓도 괜찮다는 서래. 해결되지 않는 미결사건이 되어서라도, 그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다.

그녀는 그녀의 방법으로 결심을 한다. 헤어질 결심.

사실 영화의 스토리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공감되는 장면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감독의 코멘트 중에 만남을 시작할 때는 자연스럽지만, 헤어질 때는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헤어짐이든 이별에는 반드시 결심이 따른다.

이 영화에는 많은 키워드들이 있었다.

그리고 장면 곳곳에 숨겨진 복선들을 캐치하는 재미도 있다. 내가 캐치한 키워드들만 해도 10가지가 넘는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모든 것에는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영화를 여러 번 보며 감독의 의도를 찾아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키워드

마침내 / 불면증(잠) / 높은 곳(산) / 바다(해준은 해군이었고, 서래는 밀항을 하며 배에서 10일 동안 숨어있었던 기억이 있음) / 인공눈물 / 폰 / 암호(패턴, 비밀번호) / 벽지(파도) 및 월요일할머니께 읽어드렸던 책 / 망원경 /슬픔(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모래처럼 서서히 부서지 기도 한다) / 잡고 싶었던 범인(박정민)-유부녀를 사랑함(공통점-하지만 여자에 미쳐서 모든 게 무너짐) / 화재경보기 / 자동차 방향지시등 / 새 / 드라마 / 자부심 꼿꼿한 자세 / 초밥-핫도그 / 안개 /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한다고 말한 적 없다는 해준과 사랑한다고 했던 말이 너무 좋아서 계속 들었다고 한 서래 / 깊숙히 빠뜨려서 아무도 못찾게해요.

1. 불면증 : 자부심 있는 형사, 품위 있고 꼿꼿한 자세를 항상 유지하는 내면, 부족함 없이 가정, 사회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가진 사람의 결핍된 모습

-하지만 서래와 함께 숨을 맞추며 잠들었을 때 서로 사랑함을 느낌. 거짓말 탐지 조사를 하고 서래와 함께 경찰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경찰서에 도착해 있을 때 해준은 잠들어있었다. 여전한 마음(사랑)을 의미. 서래는 해준을 잠들게 해주는 사람.

2. 바다: 산에서 만났지만 본가나 회사나 바다 근처인 해준. 높은 곳이 싫고 산보다는 바다가 좋다는 서래. 둘의 연결고리? 서래의 집 벽지마저 푸른 바다였다.

처음 만난 곳은 부산, 다시 만난 곳은 이포, 마지막 장면도 바다.

3. 인공눈물 : 사건을 항상 똑바로,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해준의 자세. 또렷한 시야로 보려고 하는 모습. 해준은 본인의 모습도 또렷하고 떳떳하게 보려고 한다.

4. 폰 : 숨기려도 해도 숨겨지지 않는 모습(심장-마음) / 핸드폰은 항상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었다

5. 암호:처음에 패턴을 풀어가면서 서로에 대한 흥미(?) (서래를 향한 해준의 첫 대사: 남편이 죽었는데 아무렇지 않으신가보네요. / 알고 싶네요 패턴이)가 생겼고 여러 번 암호를 푸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숫자에 대한 해준의 강박도 드러남.

6. 망원경 : 해준은 자부심 있는 형사. 살인사건이라면 잠복을 마다하지 않는다. 항상 녹음을 하며 상황을 기록하는 습관도 있다. 가정폭력을 당하는 서래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을 가져 평소와 달리 면밀히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이를 지켜본 동료 수환은 피의자가 예쁘고, 여자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해준은 이후부터 잠복하며 그녀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다. 피 냄새를 싫어하는 해준은 그녀의 향기를 짙게 마시기도 하며(좋은 냄새가 나는 듯)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서래는 자신을 지켜보는 해준이 본인을 지켜준다고 생각하였고, 해준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녀가 굿모닝 인사를 해줬을 때, 그녀에게 관심을 받았을 때 매우 좋아하며 서로의 마음이 싹트는 시작점이 된다.

7. 운전-방향지시등 : 초반부에 서로에게 관심? 서로에 대한 마음의 방향이 같을 땐 같은 쪽의 방향지시등을 켠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없다고 말이 엇갈릴 땐 화면이 전환되며 서로 반대방향 방향지시등을 켠다.

8. 새 : 도입부에 새가 죽었을 때, 땅에 묻어주며 고양이에게 말을 함. 나에게 선물을 주려거든 착한 그 사람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 줘. -이 모습이 꼭 마지막 서래의 모습 같음. 새=서래

9. 화요일 할머니가 위독했을 때 서래 대신 해준이 월요일 할머니를 대신 돌봐드린다. 서래는 할머니에게 부엌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읽어주라고 한다. 책의 삽화는  산에 안개가 자욱이 낀 그림이었다. 산에 낀 안개가 안 좋은 징조를 의미. 사건이 발생한 20201026도 월요일, 해준이 서래대신 할머니를 돌봐드린 20201123도 월요일. 그날 둘은 헤어지게 된다.

10. 드라마 : 서래는 드라마를 보며 한국말을 배운다. 부산에서는 사극을 보며 한국말을 공부했다. 이포로 이사오기 전에는 원전 사고 관련된 드라마를 보게된다.   마침 남편에게 빚쟁이가 알아버렸으니 이사 갈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온다. 서래는 아무런 연고지가 없지만 해준이 있는 이포로 이사를 가게된다.

그리고 이포에 오고나서의 첫 대사는 드라마 그대로. “당신을 만나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어요.”

11. 이포에 오고 나서의 서래 : 항상 해준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를 지켜보기 위해 경찰서의 화재경보기까지 울리는 그녀. 해준의 근처에 그녀가 곧 나타난다는 일종의 알림? 경보?

12. 첫번째 사건 초반부 조사실에서 초밥(시마스시)을 사줌- 초밥은 아무초밥이나 안 먹고 고급 초밥만 먹는 해 준, 수환에게도 비싼 음식 먹지 말라는 해준이 서래에게 첫 조사 시 고급초밥을 사줬다-마음의 열림

마지막 조사 때는 달랑 핫도그. 변화된 마음을 의미.

해준은 결벽증이 있을 정도로 깔끔한 사람. 처음 초밥을 먹고 함께 정리하는 모습에서 서로는 서로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걸 느낌. 이후 서래의 양치까지 챙겨주는 모습. 서래는 이런 해준의 모습에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별 이후에도 서래는 시마스시를 먹으며 마지막만남때 녹음했던 파일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 듯 보였다.

13. 붕괴되다:사랑에 빠진 해준은 파도가 밀려와 떠밀려 붕괴된듯한 모습이다. 그가 생각하는 자부심 있고 품위 있는 형사의 모습이 서래와의 사랑 때문에 무너져 깨지고 만다. 그녀에게 말한 모든 말이 사랑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이성적인, 흐트러지지 않은 본인의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씀.-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는 것 같음.

서래는 처음으로 자신의 말을 들어준 해준에게 서스럼없이 마음을 열게 된다. 서래 본인에게는 단일한 사람. 해준의 미결사건 되어서라도 해준의 마음을 갖고 싶은 서래.

14. 마지막 서래의 산(호미산)으로 올라갔을 때

: 서래는 사랑한다고 고백, 한순간도 당신을 잊은 적 없다고 말한다. 부산에서의 첫 만남과 이후의 만남에서도 사용했던 통역기에서는 남자목소리였으나, 이포에서의 통역어플은 여자 목소리였다. 용의자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본인의 상황, 본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자 목소리였고, 후반부에 본인의 진심을 터놓고 이야기할 때는 여자 목소리로 통역이 되었다. 그리고 해준은 자신이 왜 서래를 좋아하는지 아냐고 묻는다. 해준이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서있을 때도 그렇고 당신은 항상 자세가 꼿꼿해서. 그게 당신에 대한 많은 걸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하였다. 해준은 떨어져 있는 402일 동안 당신의 피의자 나는 경찰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고 한다.(402일이라고 하루하루 날짜를 센 것은 초반부의 해준의 와이프(이과 출신임을 강조함)가 결혼한 지 16년 8개월 이라며 함께한 시간을 세고 있었던 장면을 연상시킨다. 이전과 달리 계산적인 해준의 모습(이포에 오고 나서 달라진 해준-시계도 스마트워치에서 일반 시계로 바뀌었고, 운동화도 구두로 바뀌었고, 피 냄새를 싫어하는 해준이 피가 철철 흐르는 생선을 손질하는 모습 : 시들어진 해준의 모습-자부심 있는 형사, 남편의 모습을 지키려고 하지만 시든 모습 / 이포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구두에서 운동화로 바꿔 신은 모습(다시 서래를 만나자 활기를 찾은 모습)).

15. 안개 : 이포에 항상 가득한 안개. 해준의 마음과 같다. 행복하지 않아 보이지만 떳떳한 모습을 지키려고 이포에 내려와 부부생활을 하는 해준의 마음에 항상 안개가 낀 모습. 서래가 화재경보기를 울린 날도 안개가 가득 끼어 정말 불이난 건지 안개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였다. 이포는 안개가 싫어 떠난 사람이 많은 반면 서래는 안개가 좋아 이포에 온다.-해준을 보려고.

서래를 만나고 이포에는 서서히 해가 뜨기 시작한다.–마음의 안개가 사라져 간다.

마지막 장면에선 안개가 사라져 노을이 훤히 클로즈업된다. 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깊은 곳으로 영영 사라져 버린 서래.

그렇게 서로의 결심은 완전한 이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