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단상
한 때 빠졌던 적이 있다. 해설을 찾아 읽으며 '결과'가 실제 내 성격과 얼마나 닮아있는지 확인하고 신기해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사주 결과 보듯 MBTI 해설을 읽었다. 나의 강점을 확인할 때도 MBTI... 우습지만 그럴 때가 있었다. 도통 공감이 가지 않는 글도 왕왕 보였으나, 믿고 싶은 눈으로 해석하는 세계는 MBTI로 모두를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여자 넷이 모여 긴 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다. 비슷한 월령의 아이들을 키운다는 공통점 하나로 한 번 모일 때마다 일상다반사를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시간을 아껴 쓰는 편인 내게는 오랜만의 기회였다. 기꺼이 수다 경쟁에 참전했다. 대화 주제는 요 아줌마들의 의식의 흐름에 충실히 따르다 이윽고 MBTI 이야기로 흘렀다.
너는 MBTI가 뭐야?
나는 I*TJ, 나는 EN*J, 나는 I*FP, 나는...
재미 삼아 'MBTI 궁합표'까지 찾아보았는데, 어떤 둘은 정말 잘 맞는다 하고 또 나머지 조합들은 그럭저럭 잘 지낸다고 나왔다. 곁에 앉은 사람들 얼굴 밑에 가상의 결과표를 붙여놓고 생각했다. 이따위 궁합과 실제 내 마음이 가고 잘 통하는 정도는 별개임이 틀림없었다. 내심 편하지만은 않던 어떤 이와 내가 궁합이 잘 맞다고 나왔는데, '더 알아보면 이 사람과 진짜 잘 맞을까?' 싶기도 했지만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한편 '나와 그저 그런 사이로 해석된 친구'를 바라보는 내 마음이 괜히 아련했다.
MBTI 궁합표만 보면 남편과 나의 결과는 상극 수준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 남편만큼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우리 결혼이 단지 서로의 피가 끓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서로만큼 잘 이해하고, 존재 자체로 충만하게 여겨주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결혼을 결심했다. 그럼에도 '이거 참 웃기네.' 생각하며 그것에 대한 맹신을 이어가던 내가 오늘 드디어 MBTI 지옥에서 탈출한다.
'친구야. MBTI 결과가 어찌 되었든, 내 마음속 1순위는 너야.'
그깟 소설가가 만든 인간유형분류로 잠시나마 타인까지 재단하려 들었던 나를 반성한다. 더불어 인생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내가 쌓아온 것들을 믿지 않고, MBTI 해석을 검색해 보던 나의 한심함을 고백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탈출은 홀가분하다. 4년 전에 사주 탈출, 오늘 MBTI 탈출, 다음에는 또 어떤 탈출을 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고정관념을 하나둘씩 훌훌 벗어던지며 더욱 자신을 믿고, 한계 없는 사고를 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