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적인 아이 육아
최근에 콩만이가 유치원에서 쉬야 실수를 세 번이나 했다. 그중에 두 번은 어제 하루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린이집에서도 거의 하지 않던 실수인데 왜 그럴까’ 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치원 적응기에 오랫동안 여행을 다녀와서 그런 걸까. 물론 실수는 할 수 있고,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안 그래도 내향적인 녀석이 위축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선생님 말씀으로 콩만이는 평소에 화장실을 혼자서 잘 가는 아이이지만, 수업 중에는 손을 들고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을 못 한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화장실에 가는 길에 실수를 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콩만이는 놀던 자리에서 그대로 쉬를 해버리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다고 했다. 선생님이 눈치채 주실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다고. 엄마로서 녀석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을 때, 수업의 맥을 끊고 선생님께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부끄러운 실수를 해버리고는 그 또한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는 수치심 때문에 오히려 태연자약하게 앉아있었겠지. 녀석의 마음을 짚어보다 그만 숨이 갑갑해졌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이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ㅡ물론 굉장히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ㅡ콩만이는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다. 엄마인 내 앞에서도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남편과 나는 다시 한번 대화를 테이블 위로 꺼내보기 위해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썼다. 엄마와 아빠도 어릴 때 쉬야 실수를 많이 했었다고, 그래서 쉬가 안 마려워도 쉬는시간 마다 꼭 화장실에 다녀왔다고, 혹시 놀이 중에 쉬가 마려우면 손을 번쩍 들고 ‘쉬하러 갈래요.’ 말을 했다고 했다. 어설프게나마 아이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콩만이는 늘 붙어있는 엄마의 경험담보다 아빠의 고백에 깜짝 놀라는 듯했다. ‘아빠, 정말이에요?’하는 표정으로 아빠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효과가 있었는지, 잠들기 전에 콩만이가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나는 콩만이 할 테니까 엄마는 김민지(가명) 선생님 해.’
‘그래, 콩만아. 나는 행복반 김민지 선생님이야.’
‘선생님, 저 화장실 갈래요.’
그리고는 정말 화장실에 다녀왔다. 병아리 눈물만큼 쉬한 걸로 보아 자신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했다. ‘우와~ 우리 콩만이 씩씩하다. 방금 너무 멋지던데?’
'엄마. 나 바깥놀이 나갔을 때 민성이(가명)가 어디에 있는지 계속 찾아다녔어. 혼자 이리저리 걸어 다니다가 쉬를 해버려서 그냥 바닥에 앉아버렸어.’
‘그랬구나. 민성이랑 빨리 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쉬야를 참았던 거구나. 갑자기 쉬가 나왔을 때 우리 콩만이 당황했겠다.’
'응, 깜짝 놀랐어.’
‘그랬구나. 콩만아. 쉬가 항상 먼저야. 쉬를 하고 나면 마음 편하게 놀 수 있어. 민성이도 기다려줄 거야. 민성이는 콩만이를 좋아하니까.’
‘응, 알았어.’
‘그리고 밖에 나가기 전에, 차 타기 전에는 꼭 쉬를 해야 해. 알았지?’
알았다고 말하며 작은 등을 돌리고는 금세 잠들어버리는 녀석을 보니 너에게도 하루가 참 고단했겠다 싶었다. 40개월 작은 어린이에게도 명예는 있다. 얼마나 부끄럽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을까. 내 안에도 내향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나에게 육아란 내향인의 마음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 못 하는 마음이 힘들지만, 앞으로 녀석에게는 또 다른 용기가 필요한 날들의 연속일 것이다.
용기, 나는 용기가 있나? 어디든 겁 없이 뛰어드는 편인 것 같기는 하다. 내가 가진 용기를 뚝 떼어다 콩만에게 건네줄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어떻게 키워야 녀석의 용기를 길러줄 수 있을지, 타고난 기질을 강점으로 잘 활용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엄마는 고민이 많다. 육아상담전문기업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는 저서 ‘불안이 많은 아이’에서 그렇게 말했다. 엄마에게만 보이는 '작년보다 나아진 내 아이의 모습'이 있다고.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시선은 철저히 내 아이에 기준해야 한다고. 이다랑 대표는 아이가 어느 날 반장선거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 몰래 펑펑 울었다고 했다. 불안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을까 싶었고 또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 또한 비슷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것 같다. '콩만아, 조금만 더 용기를 내.' 응원하면서, 때로는 속앓이도 해가면서. 되도록 답답한 마음은 들키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은 한다. 응원만 하기로 한다.
인생에 성공보다 실패가 더 많은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매한가지지만 실패 또한 작은 성취로 가기 위한 여정임은 분명하다. 아직은 솜털 보송한 세 살 인생에 실패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겠냐만은 너의 명예는 안녕하다고, 너는 여전히 멋진 아이라 말해주고 싶다.
오늘도 여벌의 바지와 속옷을 챙겨보내며 마음으로 메시지를 실었다. '바지야. 오늘 돌아오지 마. 사물함에서 나오지 말고, 나중에 보자.' 오늘의 콩만이는 상처 없이 돌아오기를 응원한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단단하게 마음 터를 다진 우리 부부를 셀프 칭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