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지 UXers 06화

용 — 상상력과 확장성

상상은 현실을 설계하는 가장 먼 지름길이다

by UX민수 ㅡ 변민수


용은 왜 상상의 동물이 되었는가


용은 존재하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상징성을 가진 동물이다. 동양에서 용은 황제의 상징이었고, 여의주를 품은 채 하늘과 물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그 모습은 언제나 경계를 넘는 자였다. 물과 하늘, 인간과 신, 육체와 정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히 존재할 수 있었던 동물. 용은 언제나 틀 밖에서 움직였다.

UX 설계에서도 이 용의 속성은 그대로 이어진다.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경계’들을 넘고 있다. 현실과 가상, 손과 뇌, 시선과 의도. UX는 이제 화면 속 인터페이스를 넘어, 환경 전체를 설계하는 일로 확장되고 있다.


존재하지 않기에, 어디로든 확장될 수 있다.

이 장은 UXer가 상상력이라는 여의주를 품고, 어디까지 설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는지를 탐색하는 여정이다.



상상은 어떻게 UX를 확장시키는가


상상은 미래를 만드는 도구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그것을 기술과 연결하는 일. UX 설계는 그 상상의 인터페이스를 현실에 닿게 만드는 과정이다. 용이 실재하지 않기 때문에 어디로든 뻗어 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UXer는 아직 등장하지 않은 흐름을 먼저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


AR/VR, MR, Spatial Computing, 제스처 UI, 뇌파 인터페이스까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UX는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눈이 아닌 머리로 조작하고, 손이 아닌 시선으로 조정하는 환경 속에서, UXer는 공간 전체를 사용자 경험의 무대로 삼아야 한다.



UI-less / NUI — 상상은 인터페이스의 경계를 해체한다


화면이라는 틀은 오랫동안 UX의 기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프레임은 사라지고 있다. 음성, 시선, 움직임, 감정. 이 모든 것이 입력값이 되는 시대. UXer는 더 이상 픽셀의 위치를 고민하지 않는다. 어떤 감각을 먼저 자극할지, 어떤 흐름 위에 감정을 띄울지, 더 섬세한 설계 언어가 필요하다.


NUI(Natural User Interface)는 사용자가 UI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 상상은 언제나 인터페이스의 해체에서 시작된다. 용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되, 흐름 속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 기술의 해체는 곧 감각의 해방이다.



Physital UX — 물리와 디지털의 융합이 감각을 확장한다


이제 UX는 디지털 세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물리와 디지털의 경계에서 새로운 감각을 창조한다. 피지컬(Physical) + 디지털(Digital)이 결합된 Physital UX는 버튼과 진동, 햅틱과 시선, 공간과 음향을 하나의 경험으로 엮는다.


예를 들어, 문을 여는 동작 하나가 실제 도어와 가상 경험을 동시에 작동시킨다면? 화면을 스와이프하는 것이 아닌, 손짓으로 환경을 조정한다면? UXer는 이제 단일 디바이스가 아니라, ‘공간 전체’를 인터페이스로 설계해야 한다. 감각을 조율하는 설계자. 그것이 확장성의 UXer다.



반복과 상상, 경계를 넘는 UX의 리듬


상상력은 무작위가 아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감각 위에서 새로움을 밀어넣을 때, UX는 유의미하게 확장된다. 기존의 흐름을 유지하면서, 낯선 경험을 슬며시 끼워 넣는 일. 이것이 확장 UX의 리듬이다.


용의 움직임은 자유롭지만, 늘 대지를 감지하고 있었다. UX도 마찬가지다. 사용자의 현재 경험을 존중하면서도, 더 멀리 데려가기 위한 상상. 확장은 도약이 아니라 리듬의 누적이다. UXer는 흐름을 해치지 않는 상상으로 경험을 확장해야 한다.



[사례] 상상으로 경계를 확장한 서비스들


혁신은 단지 새로운 기술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 기술을 ‘경험의 흐름’ 안에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확장의 핵심이다. 다음 사례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계를 확장하며, 사용자의 감각과 공간, 정체성까지 설계의 대상으로 삼은 UX들이다.



Apple Vision Pro — 공간을 UI로 만드는 상상


Apple Vision Pro는 단순한 MR 기기가 아니다. 그것은 공간 전체를 인터페이스로 삼는 새로운 UX 실험이었다. 손짓으로 창을 띄우고, 시선으로 선택하며, 음성으로 조작하는 흐름.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비물리적인 감각 속에 배치된다.


Apple은 이 경험을 “컴퓨팅의 공간화”라고 불렀다. 사용자는 더 이상 기기 안에서 상호작용하지 않는다. 기기를 중심으로 ‘공간 전체’가 사용자에게 반응한다. 이는 단지 새로운 디바이스가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과 감각을 재설계하는 UX의 확장이다. UXer는 이처럼 ‘기기의 UX’에서 ‘환경의 UX’로 사고를 넓혀야 한다.



Roblox — 창작의 확장을 가능케 한 사용자 생태계


Roblox는 단순한 게임 플랫폼이 아니다. 수많은 사용자가 직접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는 ‘사용자 주도형 UX’를 실현했다. 제작자와 사용자라는 경계도, 개발자와 소비자라는 이분법도 이 안에서는 무력화된다.


여기서 UX는 도구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가 된다. 사용자 경험은 인터페이스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창작 그 자체가 된다. UXer는 이제 "사용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냐"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확장형 UX다.



Spatial — 모임과 작업의 경계를 허물다


Spatial은 가상 공간 안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협업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단순한 화상회의가 아니라, 공간과 움직임, 시선까지 모두 ‘경험화’된 설계. 사용자는 집 안에서 회의실로 이동하고, 손짓 하나로 인터랙션을 이어간다.


이 UX는 디지털 툴을 넘어서 ‘환경 자체를 감각화’하는 흐름을 설계한다. 마치 용이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자유로움, 하지만 그 움직임은 사용자의 리듬과 정확히 맞물린다. UXer는 공간과 감정, 시선과 협업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



[개인] AI 시대, 상상은 기능이 아니라 감각이다


AI는 이제 상상을 구현할 수 있다. Midjourney, ChatGPT, DALL·E 등은 생각을 곧바로 현실로 바꿔준다. 그러나 ‘무엇을 상상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기능보다 감정, 구조보다 분위기. UXer는 더 이상 기능 설계자가 아니라, 연출자다.


상상은 기술 위가 아니라 감정 아래에서 자란다. 사용자가 경험하고 싶은 감정, 떠올리고 싶은 장면, 기대하고 있는 몰입감. 그 모든 것을 먼저 설계하는 일. 그것이 AI 시대 UXer의 새로운 역할이다. 상상은 기능이 아니라, 감각을 이끄는 도구다.



[조직] 실무에서 용처럼 일한다는 것


실무에서 용처럼 일한다는 건, 존재하지 않는 인터페이스를 먼저 말할 수 있는 태도다. "이건 아직 세상에 없지만, 곧 필요해질 겁니다."라고 제안할 수 있는 사람. 회의에서 당장 필요한 기능보다, 미래의 사용 맥락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


이들은 새로운 문제를 만들고, 새로운 흐름을 준비하며, 조직 안에 새로운 리듬을 삽입한다. 확장 UX는 조직 전체의 사고 구조를 넓힌다. 그래서 용 같은 UXer는, 조직 내 상상력의 허용치를 끌어올리는 존재다. 실무에서의 확장은 태도다.



UX는 감각의 세계를 확장하는 일이다


UX는 점점 더 눈에 띄지 않게 되고 있다. 동시에 더 넓고 깊은 경험을 요구받는다. 현실의 틀을 넘고, 기술의 언어를 바꾸고, 감각의 흐름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 그것이 상상력으로 설계된 UX다.


용은 존재하지 않기에 무한하다. UX도 마찬가지다. 존재하지 않기에, 언제든 다시 설계할 수 있다. 상상력은 가장 멀지만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상상한 대로 움직이고, 상상한 대로 반응하는 UX. 그것이 진짜 몰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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