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12지 UXers 01화

프롤로그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

by UX민수 ㅡ 변민수

UX 디자인, 질문을 바꿔야 할 때


무엇을 위한 디자인인가?

나는 'UX'와 '디자인'이라는 포괄적 개념을 함께 나열해서 쓰는 것부터 불편한 처사라 여기는 디자이너다. 그렇지만 그 불편을 무릅쓰고 자문해 본다. 'UX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기능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일? 화면을 더 아름답게 설계하는 일? 아니면 데이터를 분석해 흐름을 최적화하는 기술? 비즈니스 목표에 기여해야만 하는 디자인? 우리는 이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덧붙인다. (물론 그게 원론적으로 맞다.)


질문을 바꿔보자!

그리고 그 정의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희석돼 자주 잊는다. 그것은 바로 사람 즉, '디자이너'다. 이제부터 UXer라고 통칭해 보자. 기술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지금, 우리는 오히려 무엇을 설계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AI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하고, 인터페이스는 더 정교하고 세련되었지만, 사용자 경험이라는 말은 점점 공허해지고 있다. 다시, 사람인 UXer에 집중해 보자.


누가 뭘 위해 하는 어떤 행위인가?

'UX'도 '디자인'도 더는 도구를 잘 다루는 기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사용자 경험 설계가 잘 되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누구를 위해, 왜 이걸 만들고 있는가?”로. 이 질문은 설계의 방향을 바꾸는 나침반이다. 제품을 설계하는 일에서, 사람을 이해하고 감정을 설계하는 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이 연재는 이 질문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동양의 순환에서 감각을 꺼내다


UX 유니콘, 그리고 여우와 두더지로부터의 문제의식

발단은 이렇다. Jeremy Wilt는 UX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UX 유니콘의 개념에서 나아가, 여우와 두더지에 비유해 UX 전문성의 여러 양상을 보강하는 글을 쓴 바 있다. 자그마치 10년이나 되었다니 놀랍다. 이런 글이 화제가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특히나 요즘이라면, 우리나라의 수많은 UX 메이븐들 너도나도 이 글을 퍼다 나르거나 번역하기 바빴을 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온라인 활성 UX 전문가 자체가 드물었다.) 나 역시 책에다 이 비유를 풀면서 들었던 생각은, 왜 이런 쉬운 비유조차도 우리는 본토향에 젖어야만 하는가였다.


12간지는 단순한 시간의 도구가 아니다

그 문제의식에 스스로 부흥하기 위해, 나는 동북아시아의 ‘12간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이 익숙한 열두 마리 동물들은 단순히 시간을 구분하는 기호가 아니다. 각각의 동물은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성정을 상징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태도와 삶의 감각을 품고 있다. 계절의 흐름처럼 반복되지만, 그 안에는 질서와 전환의 리듬이 담겨 있다. 이 리듬은 사람의 내면에도 흐르고 있다.


디자이너에게 동물이 된다는 것

사람은 동물처럼 살 수 없지만, 그 감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는 있다. 나는 그 감각을 UXer의 자질로 바꿔보기로 했다. 인간의 본성과 사용자의 맥락, 감정의 움직임과 인터페이스의 질서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비유가 필요했다. 12간지는 그것을 완벽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가능하게 했다.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감각의 은유로서 동물들이 UXer의 내면을 구성해 주는 도구가 되었다.



동물의 감각에서 UXer의 자질로


감각의 언어로 번역한 UX

쥐의 관찰력과 민첩성, 소의 신뢰와 지속성, 호랑이의 혁신과 임팩트, 토끼의 배려와 감성, 용의 상상력, 뱀의 직관, 말의 속도, 양의 포용, 원숭이의 창의성, 닭의 질서, 개의 보호본능, 그리고 돼지의 마무리 감각. 이 각각의 속성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감각의 조각들이다. 'UX 디자인'이란 결국 흐름을 읽고, 감정을 느끼고, 다음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일이다. 단순히 문제를 푸는 방식이 아니라, 감각을 담는 그릇이다.


감각에서 통찰로, 통찰에서 태도로

이 열두 감각은 단지 스킬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관찰은 기술이지만, 민첩성은 반응의 태도다. 포용은 설계의 방식이지만, 보호는 사용자를 향한 철학이다. 이 감각들이 연결될 때, 우리는 기술보다 앞선 통찰을 갖춘 UXer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이 연재를 통해 내가 바라는 UXer의 모습이다.



이 연재로 나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이론을 넘는 질문으로

이 책은 'UX 디자인'을 잘하는 법을 알려주는 매뉴얼이 아니다. (항상 이런 류의 것들을 기피하기에 내가 비판받는다는 점도 잘 안다.) 기능과 흐름, 인터페이스 구조에 대한 설명은 넘쳐나지만, 우리는 여전히 질문해야 한다. “나는 어떤 UXer인가?”라는 질문 말이다. 그것은 단순한 직무의 정의를 넘는 질문이며, 존재의 형태를 묻는 물음이다. 사용자의 시선에서 생각하고, 기술 이전에 감정을 다루며, 숫자보다 표정에 집중하는 태도. 이 연재는 그런 감각을 붙잡기 위해 시작되었다.


존재의 결을 탐색하는 여정

사용자 중심이 무엇인지, 진짜 배려란 무엇인지, 시스템 이전에 감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동물들의 감성과 함께 탐색해보려 한다. 즉, 디자인보다는 디자이너를 볼 것이다. 디자인은 결국 시스템이다. 하지만 디자이너는, 시스템을 넘어서 존재해야 한다. 흐름을 만드는 손이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는 감각이 되어야 한다. 이 연재는 그 존재에 대한 탐색이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사람이니까.



열두 마리 동물과의 UX 여행


질문을 품은 열두 개의 여정

각 장마다 한 마리 동물이 등장한다. 그 동물은 UXer가 마주하는 과제와 질문을 상징한다. 관찰이 먼저인가, 실행이 먼저인가? 속도 중심주의는 왜 위험할 수 있는가? 상상은 언제 현실을 뚫는가? 마무리는 얼마나 조용해야 하는가? 나는 이 동물들에게서 UXer로서의 감각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을 글로써 정리해 보았다. 이 질문들은 단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프로젝트의 시작점에서 마주하는 고민이며,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면서 끊임없이 되짚어야 할 기준점이다. 각각의 동물은 하나의 성질이 아니라 하나의 방향성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디자이너의 내면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반복해서 말할 것이다.


당신에게 던지는 질문

이 여정은 당신에게도 질문을 던질 것이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마다, 무엇부터 보고 무엇부터 들을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각 동물은 도구가 아니라 거울이다. 당신 안의 감각을 비춰주고, 아직 훈련되지 않은 감정의 근육을 일깨워줄 것이다. 그러니 각 장을 읽으며 떠오르는 고민들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 안에 존재했던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 연재는 그것을 발견하고, 언어로 끌어올리고, 감각으로 정리하는 여정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만의 UX 철학이 있다면, 이제 그 철학을 구성하는 감각의 언어도 함께 갖게 되기를 바란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마다, 무엇부터 보고 무엇부터 들을 것인가를 다시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당신 안의 감각을 비춰주고, 아직 훈련되지 않은 감정의 근육을 일깨워줄 것이다.



다시, 존재로 돌아가다


기술보다 앞서는 존재의 감각

UX는 단지 도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사람의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다루지만 시스템 너머를 상상하고, 기술을 활용하지만 감정을 설계하며, 흐름을 구축하지만 그 안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람. 이 연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UXer의 모습은, 바로 이런 존재다.


존재에서 시작해 마무리까지

이제, 열두 마리 동물과 함께 UX의 흐름을 다시 살펴보자. 디자인보다는,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 그것이 이 연재의 본질이다. 그리고 아마, 이 연재가 끝난 뒤에도 당신이 품고 갈 수 있는 몇몇 태도가 남길 기대해 본다. UXer는 결국 시스템의 완성도를 논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의 농도를 다루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기술은 빠르게 진화하지만, 감각은 천천히 훈련된다. 이 연재가 던지는 질문들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만의 해석과 시선으로 열두 가지 감각을 되짚기를, 그 속에서 당신만의 리듬과 존재감을 발견하길 바란다.


그 여정의 시작이자 끝은, 언제나 존재다. 질문은 기술이 줄 수 없고, 감각은 데이터를 통해 대체되지 않는다. 존재의 감각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바로 그 사람이, 시대를 이끄는 UX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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