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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얏 Oct 20. 2022

서울 나들이 5


꿉꿉한 날이었다. 쌓인 피로를 풀었지만 하루를 맞이할 때는 역시나 다시 시작이다. 어딘지 모르게 꽉 막힌 것처럼, 조금 답답한 상태로 집을 나왔던 것 같다. 분명 일어날 때는 개운하니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집을 나오자 왠지 모르게 익숙한 날씨에 한 번 권태를 느꼈고, 집을 나오고 나서 끼고 도는 골목 자리에서 느끼는 권태가 또 익숙해서 결국 처음이 되었다.


 처음부터 나는 언제든지 불안해지거나 우울해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며칠 전부터 스스로에게 '좋다'는 어휘와 이별하길 선언했다. 좋다는 말 대신 표현할 수 있는 나는 얼마나 각양각색일까. 그동안 사람들 앞에서 '좋다'고 대충 말했던 나를 더이상 용서하기가 힘들어졌다. 좋다는 말보다 다른 표현을 했다면 우리의 대화는 얼마나 풍부해졌을까 하고. 실제로 좋다는 말과 재밌다는 말, 그리고 행복하다는 말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 어휘들을 벗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의심쩍게 봤다. 나 스스로가 의심스러워 그렇게 보는 거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일단은 이 의심을 풀기 전까지는 도리 없는 일이니.


 산책을 가기 전, 학생 은이를 만났다. 은이와 3시간 가량을 같이 보내고, 제비다방에 들려 글을 게워내다 산책을 떠났다. 충무로, 영화를 떠올렸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연상 관계로 만들어줬던 충무로. 나는 충무로에 가본 적이 없었다. 충무로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었다. 오늘 충무로에서 집 잃은 개마냥 비를 맞으며 떠돌아 다녔다. 그렇게 떠돌아다니다가 신사역과 논현을 가기도 했다. 오늘은 전철에서 글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우는 여자를 2명 봤다.


 은이는 대전에서 올라온 20살 소녀다. 내가 은이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대전에서 올라와 친구와 집을 얻어 생활비를 벌고 학원비를 벌어 스스로 살아가는 소녀라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은이를 울렸다. 은이는 안에서 간신히 눌러온 불안과 자신에 대한 실망과,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깊은 피로를 내 앞에서 조금 놓아버렸다. 은이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은이에게 너는 예술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후 은이는 더이상 내 앞에서 예술을 하고 싶다고 하지 않았다.


 처음 은이에게 '예술'에 대한 동경을 심어줬던 건 고3 때 만난 한 언니에 의해서였다. 그 여자는 연출과를 다니는 학생인데 과외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와중에 은이를 만났던 것이다. 은이에 의하면, 그 여자는 몹시 우울하고 어둡고, 또 그래서 멋져보였다고 한다. 은이는 그 여자를 향한 동경, 그 여자가 심어준 동경,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다. 내가 은이를 처음 봤을 때 울렸던 말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은이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은이를 처음 봤던 날, 나는 집으로 가면서 은이에게 보탬이 될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은이가 학생이 된 지 한 달이 됐다. 은이는 저번 주부터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했다. 은이는 언제나 씩씩하게 말하지만 은이의 집안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어머니가 아프시다는 말을 하는 은이는 눈물이 나올라 그러면 언제나 말을 돌리며 웃어버린다. 나는 은이가 서툴게 거짓말을 하고, 또 서툴게 말을 돌릴 때마다 표정을 잃는다. 그리고 오늘은 은이가 숙제를 거의 안해왔다.


 은이의 옷차림은, 은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바보같이 오늘에 와서야 은이가 신은 신발을 봤다. 부분부분 헐고 뜯겨 몹시 낡은 운동화. 나는 어릴 때 신발과 옷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 없어서 언제나 그것들이 더이상 제 구실을 못할 때까지 사용했었다. 밑창이 뜯어진 신발은 한두 켤레가 아니었고, 그런 헐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다. 그렇지만 은이의 운동화는 좀 달랐다. 은이는, 어쩔 수 없이 오늘도 알바를 나가는 것처럼 신발을 신고 있었다. 도중에 나는 은이에게 말을 했다. '오늘은 그만 할까?' 은이는 자꾸만 괜찮다고 했지만 눈빛이 흔들리는 걸 숨길 순 없었나 보다. 그래서 나는 은이에게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으레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웃으려고 한다. 한없이 흘러가는 순간에 자신의 모습은 지워져만 가는데, 사진을 찍는 건 그 순간의 포착이고, 사람들은 그 순간만큼은 웃는 얼굴로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일까. 은이도 웃었다. 나는 은이에게 나온 사진을 가지라고 줬다. 마음에 들었는지 과외가 끝날 때까지 자꾸만 사진을 봤다.


 은이와 헤어지고 나는 제비다방에 들려 별의별 요설들을 쏟아냈던 것 같다. 그리고 처음에는 DMC에 가볼까 하다가, 충무로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는 그 자리에서 바로 충무로로 향했다. 대한극장, 하면 나는 평소에 보이는 CGV나 메가박스 같은 영화관이 아닐 줄 알았으나. 결국 영화 한 편 볼 수 없었다. '요즘 하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대한극장에서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는 없었다. 아쉬움을 돌리고 길을 떠돌기 시작했다.


 남산 밑 골목은 정말 적적했다. 이때부터 비가 추적추적 떨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천천히 젖어가며 계속 걸었다. 어떤 놀이에 대해서 생각했다. 지나가다 이끌리는 한 사람이 보이면, 그 사람을 미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스토킹은 아니다, 어릴 때 하던 경찰과 도둑이 생각났다). 그러다가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다니며 어딘지 모르지만 계속 쫓아다니는 것이다. 사람을 갈아타는 이 놀이의 흥미로운 점은, 미행인 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 이 사람의 행동에 있다. 평범하게 길을 걷다가 갑자기 멈추고서는 서성거리기. 딴짓을 하다가도 힐끔힐끔 누군가를 쳐다보며 쭈뼛거리기. 그러다가 난데없이 뛰어가다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걷기. 미행하는 사람의 행동은 평범한 행인의 행동이 아니다. 무질서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래서 흥미롭다. 아마 미행을 잘 하는 사람(영화에서나 나오는)은 자신의 기척이나 시선을 주변의 '익명'에 숨기는 순간포착의 달인이리라.


 비를 잠시 피하고자 상가 입구에 들어섰을 때, 어떤 여자가 계단에 앉아 울고 있었다. 또, 집에 오는 버스 옆자리에 있던 여자도 흐느끼고 있었다. 여자가 우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이상해진다. 사연이 있어 보여서? 그렇지만 평소에 내가 느끼는 '사연 있어 보이는 사람'의 느낌과는 다르다. 애잔한 향수가 유년 시절에 녹아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을 받으며 집 잃은 개마냥 떠돌아다녔던 충무로는 유독 동물과 연인이 많았다. 이 둘은 생각보다 진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충무로는 청계천 세운상가의 꽁무니와 닿아 있으면서, 남산 근처이고, 또 온갖 중국인과 일본인이 돌아다니는 명동의 옆이다. 그렇지만 충무로에서 보였던 건 동물과 연인이 주였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띄었던 건 진열된 동물이었는데, 연인들이 지나가면서 소위 말하는 '귀엽다'고 창가에 달라붙어 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르겠다. 귀엽다와 동물의 자유에 어떤 필연이 있기에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서 저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또 그렇게 끌려가고(이를 순화해서 데려간다고 하더라) 다시 가둬지고(이를 순화해서 양육한다고..) 이런 순환이 돌아가는 새에 정말 아파트 한 면을 벗긴 것마냥 각 층과 각 방에 있는 저 어린 동물에게, 귀엽다와 자유는 무슨 관계이길래. 나는 아직 어린가 보다. 연인들이 자주 보였던 이유는 남산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렇지만 내 눈을 사로잡았던 것은 적적한 골목 입구와 유난히 사람이 보이질 않는 주거 지역이었다. 동국대 근처로 갈수록 골목들은 낙산공원의 골목집들을 연상시켰다. 그만큼 형태와 거리가 유사했다.


 오늘은 사진을 1장 찍었다. 은이에게 20살 은이라고 적힌 사진을 줬다. 떠돌아다니는 내내, [조서] 르 클레지오가 떠올랐다. 나는 그에게 빚이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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