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은 19세기 후반에 하나의 학문 분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다윈의 진화론이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고, 초기 종교학자들 중 일부는 진화론적 관점을 종교 연구에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종교학은 진화론과 결별했다. 직접적인 문제는 서구 중심주의 및 진보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사회진화론'이었지만, 대부분의 종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진화'라는 용어 자체가 호소력을 잃었다. 안타깝게도 다윈주의 진화론의 혁명적 아이디어까지도 종교학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90년대였다. 종교 연구자들 사이에서 다윈주의 진화론이 다시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 인지종교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인지종교학은 진화과학, 인지과학, 심리학, 인류학, 종교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지식을 절충적으로 수용하는 탈경계적 연구다. 이들은 종교적 사고, 행동, 표현의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패턴이 어떻게 여러 문화권에서 널리 나타나게 됐는지를 마음의 작동 방식과 행동의 진화를 통해 설명하고자 했다.
전통적인 종교학은 '종교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신에 대한 믿음과 의례가 있으면 종교다", "궁극적 실재에 관한 체계다" 같은 정의를 내리려 했다. 그러나 실제 종교 현상은 이런 정의로 깔끔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불교 전통에는 신 개념이 없고, 어떤 종교에는 의례가 중심이 아니다. 유교는 종교인가 철학인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종교처럼 작동할 때는 어떻게 봐야 하나? 경계가 분명하지 않다.
비트겐슈타인이 제시한 '가족유사성' 개념처럼, 가족 구성원들이 특정 본질을 공유하지 않지만 눈, 코, 얼굴 윤곽 등 겹치는 특징을 통해 서로 닮아 있듯, 종교도 이런 방식으로 이해된다.
일부 종교학자들은 종교의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정의를 마련하는 일 자체가 종교를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종교 현상은 너무 다양하고, 본질적 정의보다는 맥락 속에서 드러나는 유사성과 차이를 통해 더 잘 이해되기 때문이다. 러셀 맥커천이나 데이비드 치데스터 같은 학자들은 종교를 권력, 담론, 맥락 분석에 기반해 연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전통 종교학의 또 다른 입장은 반환원주의였다. "종교는 종교 자체로만 다뤄야 한다"는 주장이다. 종교를 사회, 심리, 정치, 경제 같은 다른 요인으로 설명하는 환원주의를 비판했다. 그러나 이 또한 종교를 사회·역사적 맥락과 분리된 초월적 실체처럼 이상화하는 문제가 있었다.
인지종교학은 이런 논쟁을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선 '종교'를 어떤 독립적인 실체로 보지 않는다. 종교는 인간 삶의 특정한 측면을 가리키기 위해 우리가 만든 이름일 뿐이다. 마치 '사랑'이나 '우정'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특정한 감정과 행동 패턴을 묶어 부르는 개념인 것처럼 말이다.
과거 종교학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종교적 존재(호모 렐리기오수스)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지종교학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뇌와 인지 구조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 인지 구조가 특정 조건에서 종교적 사고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인지종교학은 종교를 심리학, 생물학, 인지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전통 종교학에서는 이런 접근을 "종교를 다른 것으로 환원시켜 그 고유함을 훼손한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인지종교학이 말하는 '설명'은 종교를 무시하거나 단순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복잡한 종교 현상이 인간의 뇌와 마음에서 어떻게, 왜 나타나는지 그 작동 원리를 밝히려는 것이다.
종교적 경험, 신앙, 의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왜 존재하는가'를 인간의 인지 구조와 진화, 문화적 맥락 속에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인지종교학의 핵심 주장 중 하나는 종교가 뇌 속 어딘가에 별도로 진화한 '종교 전용 기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교는 환각이나 착란 같은 비정상적 상태 때문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정상적인 마음이 제대로 작동한 결과다.
인간에게는 생존에 유리했던 여러 인지 능력이 있다. 그중 하나가 '과잉 행위자 탐지(HADD)'다. 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나면 "저기 호랑이가 있나?"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바람일 수도 있지만, 과민하게 반응하는 편이 생존에 유리했다. 한 번 놓치면 죽지만, 백 번 과민해도 손해는 크지 않으니까.
그런데 이 능력은 부작용을 만들어낸다. 천둥이 치거나 누군가 갑자기 병에 걸리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누가 이걸 일으켰을까?"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신이나 정령 같은 개념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마음 읽기' 능력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추측하는 데 능숙하다(마음 이론: Theory of Mind) "저 사람은 지금 화가 났구나", "저 사람은 나를 속이려는 것 같아" 같은 판단을 순식간에 한다. 이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다. 그런데 이 능력은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도 적용된다. 조상의 영혼이나 신이 나를 지켜보고, 내 행동을 판단한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마음과 몸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몸은 죽어도 마음(영혼)은 남을 수 있다는 직관이 쉽게 받아들여진다. 세상 만물에 목적이 있다고 보는 '목적론적 사고'도 있다. "왜 산이 있을까? 우리가 살 곳을 제공하려고", "왜 해가 뜰까? 낮을 밝히려고" 같은 식이다. 이런 사고는 창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인지 능력들이 원래 종교를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각각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에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이 능력들이 우연히 함께 작동하면서 종교적 사고를 만들어낸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비행기 엔진은 비행을 위해 설계됐지만, 작동하면 소음이 생긴다. 소음은 엔진의 목적이 아니라 부산물이다. 마찬가지로 종교는 인간 본성의 핵심이 아니라, 여러 인지 기능이 함께 작동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산물이다. 종교는 고장 난 마음의 결과가 아니라, 정상적인 마음이 불확실한 세계를 빠르게 이해하려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모든 인간이 종교적일까? 그렇지 않다. 인지적 부산물 모델은 "인간은 종교를 가질 수밖에 없다"를 주장하지 않는다. 무신론자도 있고,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도 많다. 핵심은 '불가피성'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다. 인간의 인지 구조가 종교적 사고와 잘 맞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특별한 훈련 없이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개체군 사고'와 연결된다. 개체군 사고는 종교와 문화를 '고정된 본질'로 보는 대신, 사람들의 다양한 신념과 행동이 만들어내는 분포로 바라본다. 생물학에서 진화가 "유전자 빈도의 변화"로 설명되듯, 문화와 종교도 "사람들의 신념·행동 빈도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본질주의는 "이 종교는 원래 이런 것이다"라고 단정하지만, 개체군 사고는 "이 종교 집단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몇 퍼센트 있다"라고 말한다. 종교는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분포의 풍경'이다.
인지종교학은 종교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실제로 신을 믿고, 기도하고, 의례를 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다만 "왜 그런 생각과 행동이 생겨났는가"를 설명하는 방식이 다르다.
전통 종교학은 "종교는 특별하고 신성한 것이니까" 혹은 "신자들이 그렇게 믿으니까"라고 설명했다. 인지종교학은 다르게 묻는다. "인간의 뇌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기에 종교적 사고가 생겨나는가?" 답을 종교 내부의 주장이 아니라, 인간 인지의 작동 원리에서 찾는다.
지난 30년 동안 인지종교학은 꾸준히 발전해왔다. 처음에는 "종교는 인지의 부산물이다"라는 기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면, 이제는 더 정교한 질문을 던진다. 종교가 집단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종교적 행동이 배우자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까? 이런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실제로 사람들의 반응을 측정하고 데이터를 모은다.
특히 최근에는 여러 분야가 협력하고 있다. 신경과학자는 뇌 영상을 통해 기도할 때 뇌의 어느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본다. 발달심리학자는 아이들이 언제부터 신 개념을 이해하는지 연구한다. 진화인류학자는 다양한 문화권의 종교 패턴을 비교한다. 컴퓨터과학자는 종교 관념이 어떻게 퍼져나가는지 시뮬레이션한다. 이제 종교 연구는 한 분야의 전유물이 아니라, 여러 학문이 함께 풀어가는 퍼즐이 되었다.
결국 종교를 이해하려면 뇌, 인지, 문화, 진화를 함께 봐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연결하는 열쇠가 진화다. 인지종교학은 전통 종교학의 오랜 질문들을 품으면서도, 과학적 방법으로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