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자네트워크이론(ANT) 쉽게 알기

by 김희우

"사회는 사람들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의 이 말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는 사물, 기술, 제도, 문서, 알고리즘까지 모두 세상을 함께 움직이는 '행위자'라고 주장했다.


학교를 생각해보자. 선생님과 학생만으로는 학교가 작동하지 않는다.

시간표, 교과서, 칠판, 출석부, 전산 시스템, 교칙 같은 비인간적 요소들이 얽혀야 비로소 학교가 된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일방적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 인간관계, 사고방식을 바꾼다.

우리는 서로를 변화시키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룬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또 하나의 행위자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란?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은 1980년대 과학기술학에서 등장했다.

당시 과학지식사회학은 "과학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ANT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한 행위자로 보는 '대칭성'의 관점을 제시했다.

핵심은 이것이다. 사회는 미리 주어진 구조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얽히며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라투르는 "사회적인 것은 설명되어야 할 것이지,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사회를 고정된 배경이 아닌 행위자들이 관계를 맺으며 구성해가는 결과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번역: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과정

ANT의 핵심 개념은 '번역(translation)'이다.

이는 서로 다른 행위자들이 설득과 협력을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여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프랑스 학자 미셸 칼롱은 번역을 네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문제제기다. 어떤 행위자가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하며 중심 위치를 차지하려 한다.

둘째, 관심 끌기로, 다른 행위자들의 주의를 끌어 자신의 네트워크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

셋째, 등록하기에서 각 행위자에게 역할이 주어지고 실제로 참여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동원하기에서 모든 행위자들이 함께 움직이며 네트워크가 안정화된다.


예를 들어 한 작가가 새 책을 발표할 때, 출판사, 독자, 플랫폼, 미디어가 각자의 이해관계 속에서 협력하고 충돌하며 하나의 네트워크를 만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아이디어도 변형된다. 전통적인 네트워크 이론은 정보가 단순히 '확산'된다고 보지만, ANT는 전달 과정에서 내용 자체가 재구성된다고 본다.



권력도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ANT는 권력을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전통적으로 권력은 누군가가 소유한 '힘'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ANT에서 권력은 관계의 결과다. 라투르는 "권력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국의 구제역 사태를 연구한 로와 싱글턴은 정부의 정책 결정이 한 명의 리더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 과학자, 문서, 기술 시스템이 얽히며 만들어졌다고 분석했다.

권력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여기서 '블랙박스화' 개념이 중요하다.

복잡한 협상과 갈등이 숨겨지고 시스템이 단순해 보일 때, 그 시스템은 더 큰 힘을 얻는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기면 블랙박스가 열리고 권력의 균형도 흔들린다.



관계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것

ANT는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꾼다.

"누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누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묻는다.

정치는 권력자의 결정만이 아니라 미디어, 문서가 함께 작동하는 관계망이다.

경제는 돈의 흐름만이 아니라 신뢰, 감정, 기술이 얽힌 체계다.

디지털 시대에는 알고리즘, 플랫폼 같은 비인간 행위자의 역할이 더욱 커졌다.

ANT의 관점으로 보면 버튼 하나, 플랫폼의 규칙 하나가 참여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는지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ANT는 비판도 받는다.

인간과 비인간을 동등하게 다루다 보니 사회적 불평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ANT의 강점은 분명하다.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하는지, 기술과 사회가 어떻게 함께 진화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준다.


결국 ANT가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세상은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끊임없이 연결되고 번역되며 만들어가는 살아 있는 네트워크다. 보이지 않는 관계의 실들을 따라가면,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모습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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