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ENTJ는 매우 유능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큼 효율적이지 못한 데에 답답함을 느낀다. INFP는 예술적이고 감성적인데 게으르고 끈기가 없다. 이 두 MBTI는 매우 다르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궁합 하나는 끝내준다.'
인터넷에 떠도는 MBTI 성격론과 궁합론 한 대목을 가져와 보았다. MBTI 유행이 한차례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간 뒤, 초면에 MBTI를 묻는 건 한국인들의 습관이 되었다.
MBTI가 뭐예요?
상대의 성격유형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초면에 대화거리가 별로 없을 때 서로 MBTI를 물어보며 대화의 물꼬를 튼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MBTI는 정말로 실제 그 사람의 성격을 대변할 수 있을까?
MBTI는 검사 대상자가 직접 자신에 관해 판단을 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질문에 답하는 검사다. 그래서 MBTI 결과에 실제로 반영되는 성향은 진짜 나의 성향이라기보다는 '내가 선호하는 성향'에 가깝게 나타날 수 있다. 이를테면 매우 감정적이지만 자신이 감정에 휘둘리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다'라고 착각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논리적인 사람'인 것으로 검사 결과가 나온다. 감정에 휘둘리냐는 질문에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감상적이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 때문이다. 과연 모든 질문에 100% 맞는 답을 할 정도로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자기 객관화가 잘 된 사람이라도 실제 성격에 맞게 대답이 나오기 어려운 모호한 질문들도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유시간 중 상당 부분을 다양한 관심사를 탐구하는데 할애하는가?'
한창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떤 성격유형이든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은 질문이다. 바빠서 자유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은 성격이 어떻든 밥 먹고 자기 바쁘다.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냐, 예술의 해석에 대해 논하기 좋아하냐는 류의 질문 역시, 응답자의 성장환경과 교육 수준을 파악하려는 것이면 몰라도 그의 성격유형을 파악하는데 효과적이진 않다. 이런 허점 때문에 검사를 할 때마다 다른 유형이 나온다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겉핥기로 살펴봐도 MBTI로 누군가의 성향을 파악하고자 하는 시도는 무의미해 보인다. 실제로 MBTI 검사는 신뢰성 부족 때문에 정작 심리학계에서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 상담이나 의료행위에 활용할 수 있는 '진단 검사'가 아닌 '비진단 검사'이기 때문이다. MBTI 연구소에서도 MBTI는 본인이 '선호하는' 경향을 묻는 성격 검사이며 '편 가르기의 도구, 낙인의 도구'로 쓰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MBTI라는 것은 혈액형이나 별자리처럼 어디까지나 '재미'로서 다뤄지는 검사여야지, 이것을 가지고 자신의 정체성을 정한다든가 타인의 성향을 판단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MBTI는 신뢰도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이를 맹신하며 지나치게 과몰입하면 성장에 큰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1.
MBTI는 강력한 '자기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다
'친구가 자신이 감정 없고 공감 능력 없는 MBTI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유독 냉정한 척 논리적인 척해서 재수 없어요. 원래는 그런 친구가 아니어서 갑자기 왜 저러나 싶어요.'
10대 20대 학생들은 간혹 이런 하소연을 하기도 한다. 아직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성장의 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MBTI 유형은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당신은 이런 성향을 보이는 이러한 사람이다'라는 외부의 분류에 '그렇다. 그렇지 않다.' 자기주장을 할 수 있을 만큼 자신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직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에게 해당하는 유형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만들어 나가기 쉽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영향받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정말 위험하다.
매일 루틴을 지키고 하루 목표와 계획을 적으며 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MBTI 검사 결과가 인식형(P) 유형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어디 가서 MBTI 얘기를 꺼낼 때마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즉흥적으로 사는 유형'이라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다. 자아가 확립되지 않았거나 남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일 경우 오랜 세월을 들여 촘촘히 쌓아온 성실한 삶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향적, 외향적이라는 분류 기준 역시 강력한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기존에는 사람들 사이에서 먼저 말도 걸고 분위기를 주도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내향형(I) 유형이 나왔다는 이유로 '나는 내향형이니까, 원래 이래.' 하며 기존에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하던 노력을 그만두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MBTI 유형이 묘사하는 성향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나의 모습이라면 얼마든지 맹신해도 상관없지만 나의 성장에 방해가 될 것 같은 요소가 있다면 지금 당장 머릿속에서 당신의 성격 유형을 지워버려라. 그것이 실제로 당신의 성향이든 아니든, 그렇게 믿는 순간 당신은 정말 그런 사람을 닮아간다.
2.
MBTI 궁합 표는 인간관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MBTI 궁합 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유형과 어떤 유형은 잘 맞고 어떤 유형끼리는 상극이라고 적어둔 표이다.
직접 어떤 사람을 시간 들여 알아보기 전에 성격 유형만으로 나와 잘 맞을지 안 맞을지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참 편리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표는 인간관계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 어떤 유형과 잘 맞는다고 마음을 열었는데 배신당할 수도 있고, 어떤 유형과는 잘 맞지 않다고 해서 멀리했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과의 인연이야말로 당신의 삶에 꼭 필요하고 만족감을 주는 관계였을 수도 있다. MBTI로 선입견을 품고 한 사람을 제대로 알아가기도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린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겪어보기도 전에 그 결과를 섣불리 속단해서 좋을 것은 대체로 없다. 어떤 사람과 어울리고 멀리할지는 충분한 대화와 경험을 통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3.
인간을 특정 유형으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인 위험성을 내포한다
'특정 MBTI는 입사 지원 금지. 특정 MBTI 가산점 부여'
MBTI로 입사 지원 자격을 명시해 놓은 한 회사의 구인 공고가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명백한 차별 행위다. 이렇듯 신뢰성과는 무관하게 MBTI는 '인간을 특정 유형의 그룹들로 분류한다'는 사실만으로 위험성이 있다. MBTI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유형을 나누어 분류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다 약간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흔히 그 분류 기준의 신뢰도를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인종과 성별 같은 분류 기준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수준으로 악용되었던 과거가 있으며 이런 인간 분류 악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쩌면 다양한 인간을 특정한 몇몇 부류로 묶어 분류하고자 하는 욕망 자체가 인간을 분석의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다소 비인간적인 특성이 있을 수도 있다.
MBTI 유행 이전 인기를 끌었던 혈액형별 성격 유형을 보자.
혈액형별로 성격설은 1910년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독일 내과 의사 듄게른이 '순수 유럽 민족에게는 A형이 많고 아시아 민족에 B형이 많다.'라고 주장한 것이 시초다. 그 후 B형을 열등한 혈액형으로 몰아가기 위해 전염병도 B형에게 많고, 범죄자도 B형이 많다는 연구가 잇따랐다. 당시 독일에 있던 일본 철학 강사 후루카와 다케지는 이런 연구 결과들을 본 뒤 주변 사람 300여 명을 조사해 '혈액에 따른 기질 연구'라는 글을 썼다. 그 후 1970년대 초 일본 작가 노미 마사히코는 이 글을 바탕으로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썼고 그것이 한국에 유행하는 혈액형별 성격설의 원조가 되었다. 이렇듯 혈액형 성격설은 그 시초부터 아시아에 많은 B형을 '열등한 혈액형'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가 명백했다. 이에 근거해 아직도 'B형은 바람둥이고,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다'라는 낭설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B형들 입장에서는 참 억울한 일이다. 참고로 일본인들이 독일의 혈액형 성격 연구를 가져와 차용한 이유는 일본인이 아시아인치고는 B형이 적고 A형이 많아서라고 한다.
사실 MBTI 검사도 그 시초가 그렇게 신뢰할 만하지 않다. 이 검사를 만든 작가 중 한 명이 심각한 인종차별주의자였기 때문이다. 이자벨 마이어스의 1934년 소설은 선조 중 흑인이 있다는 이유로 대를 끊기 위해 자살한 부유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단순히 그러한 사건을 다룬 것이라면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 이야기하며 어떻게 변호할 수 있겠는데, 해당 소설 속 주인공까지 그 가족의 자살 동기에 동조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도저히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 소설뿐 아니라 이자벨이 개인적으로 쓴 편지에서도 인종 차별 사상이 드러난다. 그녀는 흑인을 가리켜 '까맣고 추정컨대 열등한 인종의 일원들은 자기 정신의 억눌리고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가리키는 전형적인 상징'(영문 : Members of a dark and supposedly inferior race are standard symbol for the suppressed and considered-inferior part of one's own psyche)이라고 썼다.
성격이든 피부색 혈액형이든 '인간을 분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인간의 등급을 나누어 우월함과 열등함의 척도로 삼겠다'는 부적절한 욕망으로 이어지기 쉽다. ENTJ는 일을 잘하고 INFP는 조직 생활이 어렵다는 편견이 백인은 우월하고 동양인은 열등하다는 인종차별주의적인 편견과 무엇이 다른가? 남자는 역경을 이기며 성공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여자는 남자가 벌어오는 돈을 쓰며 집안일이나 해야 한다는 성차별적인 편견과 무엇이 다른가? 이 편견들 모두 실제 존재하는 차이점들을 바탕으로 인간을 여러 유형으로 분류하는 기준에서 출발했다. 실제로 백인과 황인은 신체적 특징이 다르며, 남자와 여자도 생물학적 차이점이 있다. 이렇듯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게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만 사용되면 좋겠지만, 인간 사회에서 너와 나의 다름은 편을 가르고 우열을 가르고 차별하는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혈액형이든 성격이든 인간을 몇 가지로 분류해 차별하는 경우, 그 사람이 어떠한 성향을 보이게 되기까지의 환경적 영향은 고려하지 않고 그 성향이 그 사람 고유의 불변하는 특성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예를 들어 미국 생활 경험이 있는 사람 중에는 공공연하게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흑인에 대한 편견을 옹호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편견이 정당하며 그 편견이 경험에서 우러났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실제로 미국에 살면서 마약에 중독되어 있거나 폭력적인 성향의 흑인들을 많이 만나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인종 차이가 아니라 살아온 환경과 교육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한다. 조선을 방문했던 백인 선교사들이 당시 전근대적인 환경에서 힘들게 살고 있었던 우리 조상들을 가리켜 '비위생적이고 게으르고 식탐 많은 민족'이라 깎아내린 지 채 백 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인간을 내 편, 네 편, 이 소속, 저 소속으로 가르고 성급하게 일반화하게 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성별에 대한 편견도 마찬가지다. '여성은 책임감이 없고 고통을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은 '남성은 천성이 폭력적이고 잠재적인 성범죄자다'라는 말과 똑같이 성급한 일반화이다. 이런 말들을 강력하게 내재화한 상태로 사회생활을 할 경우,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을 발언이나 행동을 해서 소외될 위험성이 있다. 성급한 일반화는 사회구조적 결함으로 발생하는 어떤 문제를 특정 인간 그룹의 문제로 속단해 그 그룹을 마녀사냥하고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구조적인 결함을 가린다. 이런 편 가르기는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쉽게 지배하기 위해 사용하는 우민화 전략 중 하나다.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노예가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인간을 몇몇 그룹으로 나누어 편 가르기 하는 것이 전형적인 우민화 전략임을 알고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MBTI 역시 재미로 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를 바탕으로 성급히 자신을 일반화하고 편을 가르려는 시도는 원천 차단하도록 하자. 우리는 알파벳 네 글자만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무한히 깊고 넓은 발전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