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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r 01. 2023

우울증 약 먹는 엄마

  내가 우울증 약을 먹은 지는 1년이 넘어간다. 처음엔 단순히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불면증 약을 처방받으러 갔다가 어쩌면 불면증보다 중요한 것은 ‘왜’ 불면증이 생겼느냐에 대한 이유인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불면증이 생긴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2년 전 남편 직장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사하고 얼마 뒤 윗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일반 가정집에서 흔히 들릴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고, 나와 남편이 너무 시끄러워 윗집에 찾아가서야 우린 그 소리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곳은 핸드폰 대리점에 다니는 직원들의 합숙소였는데 말만 합숙소였지 양아치들의 집합소였다. 열 여 명의 온몸에 문신을 한 뚱뚱한 남자들이 집에서 매일 술을 마시고 노는 곳이었기에 그렇게 쿵쿵 거리는 소리가 심했던 것이었다.




  가뜩이나 낯선 곳에서 다시 일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이런 악재가 터지니 나의 온 신경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때부터 그 양아치 놈들이 다시 이사를 갈 때까지 불면증에 시달려야만 했다.

처음 간 병원에서 의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단순 불면증이라고 판단하여 불면증 약과 신경안정제만 처방해 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끔씩 느끼는 가슴 두근거림, 불안감, 그리고 약이 없으면 잠을 들지 못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나는 다른 병원으로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고, 그곳에서 의사는 나에게 단순히 우울증 약만 먹는 것이 아니라 우울증 약을 먹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하였다.

사실 검사지에서 검사를 하면서 나는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고 나 스스로 판단하였다. 나는 원래 예민하고 천성이 우울한 사람이라서 그렇지, ‘병’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원래’ 우울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고 하였다. 내적 에너지가 부족한 사람은 있어도 그것이 우울로 가지는 않는다고. 그냥 괜찮다고 덮어놓지 말고 곰곰이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생각해 보자고 하였다.




  의사의 말을 듣자 나의 현 상황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을 따라 끝없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나날들, 전세 만기 날짜만 다가오면 쫓기듯 떠나야 하는 상황, 코로나로 인한 무한 가정보육 등등.

사실 모두가 겪고 있으니 나도 괜찮다고 하며 억지로 웃으며 지내던 나날들이 떠올랐다. 특히 이사하기 직전 남편의 직장 문제 때문에 장거리 부부로 몇 달을 지냈을 때는 내가 먼저 남편에게 이혼 이야기를 꺼낼 만큼 나의 몸과 마음은 무척 힘들었었다.


나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새로운 불면증 약도 다시 처방받았다. 의사는 나에게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서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약의 중독자가 되지 않는다고. 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고 하였다. 뉴스에서만 보던, 연예인들이나 먹는다고 생각하던 우울증 약이 내 손에 들려져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나의 존재가.


사실 모든 엄마들이 경미한 우울증을 겪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는 엄마들이 늘어났고 (나 포함) 말은 못 하는데 체력과 자기주장이 넘치는 아이를 홀로 보내는 나날들이 길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우울증 걸리는 엄마들이 늘었을 것이라 예측한다.


나 또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돌보는 나날이 길어지다 보니 나의 체력과 인내심은 늘 바닥을 치고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에게 화도 많이 내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커다란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내가 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말 부끄럽고 숨고 싶은 시기이다.




  돌이켜보면 내 마음의 생채기가 다 아물기도 전에 층간소음 문제가 터져버리니 그 시절의 나는 갈 곳 없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날, 용기를 내어 병원에 간 내가 자랑스럽고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처음엔 약을 먹는다고 해서 일상이 달라지진 않았다. 역시나 배란기 전후가 되면 아무것도 하기 싫고 극도로 예민한 나날이 이어졌고, 불면증도 역시나 심했다. 그러나 약을 꾸준히 먹으면서 좀 더 나를 릴랙스 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고 우울해지는 시기가 오면 억지로라도 산책을 나갔다. 잠이 안 오면 그냥 불면증 약을 먹고 잠을 자거나 아니면 마음 편하게 책을 읽기도 하였다. 물론 쉽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쉽지 않고.


하지만 이전에는 그저 우울하고 나의 인생은 망하였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그래, 모두의 인생이 다 성공할 수는 없어. 난 나를 사랑해 주는 남편과 아이가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야’로 바뀌었다.


난 사실 내가 약을 먹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뭔가 세상에 진 느낌이 들었고 남들과 내가 다른 사람처럼 보일까 두렵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그럴수록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였다. 내가 사실은 마음이 아픈 시기라고. 그래서 약을 먹으며 나의 마음을 고치고 있다고 말이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당황해하며 나와의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섰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그럴 수 있다며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자신 또한 힘들었던 경험을 공유하며 한 걸음 더 가까워지기도 하였다.




  현재의 나는 누구보다 평온하면서도 활기차게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진짜 내가 뭘 하며 살고 싶은지 인생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그토록 힘들었던 육아도 조금씩 나의 손에 익기 시작했고, 미치도록 나를 힘들게 하였던 아이는 어느새 예쁜 과일이 있으면 나에게 먼저 줄 만큼 성큼 컸다. 물론 아직도 내 눈엔 꼬맹이지만.


나의 목표는 약 없이도 지금처럼 나의 우울감을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하루 더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지. 늘 다짐하며 하루를 보낸다. 엄마는 참 쉽지 않은 자리다. 사실 내 몸 하나 챙기기도 쉽지 않은데 나보다 훨씬 작고 연약한 아이까지 챙겨야 하다니. 어찌 보면 정신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는 직업이 바로 엄마라는 직업이다.


매일의 육아가 너무나 힘들다면, 이유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는 날이 많아지고 잠을 못 이루는 나날들이 많아진다면. 그저 가볍게 산책 삼아 병원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약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고민을, 나의 마음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툭 터놓고 말하는 것 자체가 큰 위로이더라. 그렇게 조금씩 위로받고 도움도 받다 보면 어느새 나도 커있고 아이도 훌쩍 커 있더라.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좀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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