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은 도시락순이 아니잖아요
봄소풍 도시락 열전
금요일 저녁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저번 주부터 소식을 간간히 들어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온 것이다.
바로 봄소풍!
일단 봄소풍 하면 무엇이 가장 떠오르는가? 나는 도시락을 떠올린다. 인터넷에 유치원 봄소풍을 검색만 해도 정말 이걸 사람이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의 휘황찬란한 도시락이 나오는데 그걸 볼 때마다 나는 못내 주눅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요리 똥손이다. 어른들이 먹는 간단한 음식이나 반찬은 별생각 없이 종종 만들어 먹는 편인데 (다진 마늘, 간장, 대파만 있으면 OK!) 아이 음식 만들 때만큼은 늘 요리를 망쳐 버린다.
특히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기술들, 예를 들어 토끼 모양 주먹밥이라든가 병아리 모양을 한 메추리 알, 예쁘게 말아놓은 달팽이 모양 햄 샌드위치 같은 건 정말 엄두도 못 내겠다. 당연히 도전은 해봤다. 무엇이든 다 있는 다이소에서 김으로 곰돌이 귀와 눈을 만들 수 있는 펀칭 기구를 사서 요리 저리 만들려고 했지만 결과는 실패. 분명 인터넷에서는 귀엽고 깜찍한 곰돌이가 있었는데 정작 내가 만든 것은 지옥에서 온 곰돌이 모양이었다.
이런 내가 봄소풍 도시락이라니! 도시락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치 없는 남편은 다른 엄마들이 만든 예쁜 유치원 도시락을 흘깃 보더니 나에게 너도 좀 이렇게 만들어 보라며 훈수나 뒀다. 자기 일 아니라고 무심코 던지는 남편의 잔소리가 어찌나 미운지. 남편에게 다가가 조용히 남편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오빠가 만들 거 아니면 닥쳐.”
그래,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했어. 일단,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미니 돈가스와 소시지를 주로 하고 주먹밥을 메인으로 하자.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한 뒤, 문어 모양으로 소시지를 잘 자르고 미니 돈가스와 함께 노릇노릇 구웠다. 다른 엄마들은 소시지에 검은 참깨로 눈알 모양을 붙였지만 요리 똥손인 나는 과감히 패스. 대신 케첩으로 약간의 데코를 가미했다.(곧 엉망진창이 되겠지만) 미니 돈가스로는 뭘 만들어 볼까 하다가 에잇 몰라 돈가스는 돈가스지 뭐, 싶어 문어 소시지 옆에다 가지런히 줄을 세웠다.
이제 주먹밥 차례. 동글동글 굴려볼까 하다가 남편이 곰돌이 모양이 어떠냐기에 그래 변화를 줘보자 싶어 또 다이소에서 산 (뭐 많이도 샀다) 곰돌이 모양 틀을 꺼내 안에다 밥을 꾹꾹 눌러 담아 꺼냈다. 나름 있어 보이는 (?) 곰돌이 모양 주먹밥이 나왔다. 오호라! 그래 이거다 싶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심히 틀을 이용하여 곰돌이 모양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만들고 나니 뭐가 이상했다. 곰돌이 모양은 곰돌이 모양인데 뭐가 이리 좀 빈약하지?
가만 생각해 보니 눈도 코도, 귀도 없으니 뭔가 밋밋해 보였다. 그러나 유치원 차량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나는 그저 바쁜 마음에 도시락 뚜껑 통을 황급히 닫고는 아이의 손을 잡고 내달렸다.
“oo 어머니, 아침에 도시락 만든다고 고생 많으셨어요!”
유치원 차량 등원 길에 만난 엄마들과 인사치레를 하며 자연스레 도시락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들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준비했다는 둥 두 번 했다가는 골병 나겠다는 둥 후기를 말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오늘 만든 도시락 사진을 보여주는데.
오 마이 갓!
내가 인터넷에서나 본 휘황찬란한 도시락들이 여기 있었다. 곰돌이에 토끼에 병아리, 꿀벌까지. 도시락이 아니라 동물 놀이터 같았다. 과일까지 색색으로 맞춰져 있으니 도시락 대회라도 열리면 금상 감이었다. 그 순간 내 아이의 가방 안에 든 도시락이 생각났다.
다이소에서 산 허접한 2단 도시락 통에 (이것마저도 다이소!) 멋이라고는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소시지와 돈가스 몇 개, 주먹밥이라니. 숙연해졌다. 특히나 이번 소풍은 모두가 빙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는데. 이런 도시락 틈에 우리 아이가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기분이 어떨까 싶어 괜히 미안해졌다.
내 마음도 모르고 유치원 버스는 그렇게 뒤꽁무니를 보이며 달렸고, 나는 못내 찝찝한 마음을 괜히 누르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곧 SNS에서 다른 아이 엄마들이 만든 휘황찬란한 도시락을 보며 괜한 자책감과 아이에 대한 미안함, 혹시나 아이가 친구들의 도시락을 보고 실망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까지 더해져 후회가 급격히 들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어린 시절, 나는 봄 소풍 때 엄마가 만든 김밥이 참 싫었다. 엄마는 몸에 좋다며 멸치를 그렇게 김밥에 넣었는데 어린 나로서는 멸치가 들어간 그 김밥이 너무 징그럽고 맛도 없었다. 특히 먹다 보면 한 번씩 멸치 대가리가 삐죽 튀어나와 나를 쳐다보곤 하였는데 그걸 보면 가뜩이나 없던 입맛이 더 떨어졌었다. 특히 아이들이 내 김밥을 한 번 맛보고는 맛없다고 뱉는 시늉을 하곤 했었는데 그것 또한 어린 마음에 큰 상처였다. 갑자기 그 기억이 나며 우리 아이도 그렇게 놀림받는 건 아닐까 괜한 불안감이 들었다.
아이가 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 버스에서 변함없이 아이는 나를 보고 해맑게 웃으며 나를 안았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은근슬쩍 오늘 소풍은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내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이야기를 하며 (?) 내 마음을 애타게 하였지만 나중에 아이 아빠에게 사실 주먹밥이 커서 먹기 힘들었다는 고백을 하였다고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도시락 이야기 따위를 들으면 코웃음을 쳤다. 그깟 도시락이 뭐라고 그렇게 걱정하고 유난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막상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내 아이가 기죽을까 봐, 나의 사랑이 이런 사소한 걸로 인해 다른 부모들의 것보다 더 낮아 보일까 봐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걱정이 된다. 사실 엄마의 사랑은 도시락 따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잠들어 있는 아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엄마가 다음 가을 도시락은 기필코 성공해서 너를 기쁘게 해 주리라 다짐한다. 사실 지키지 못한 약속임을 나도, 남편도 알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