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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23. 2023

엄마도 사람인지라,

-감기에 걸린 요즘

 드디어 나도 감기에 걸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열 감기에 걸린 아이 가정보육을 하며 이틀 밤을 아이 열 체크한다고 꼬박 새우고 나니 몸이 욱신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며 버텼는데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몸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렇다. 이번에도 아이는 나에게 감기 바이러스를 모두 준 뒤 깨끗이 나은 것이다.


뭐, 어쩌랴. 엄마의 숙명인데.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이를 챙기고 유치원 등원 버스에 태운 뒤 집에 돌아오자 난장판인 집이 보였다. 식탁에 널브러진 체온계에 아이 색종이 무더기, 거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봇 장난감들. 얼른 치워놓고 쉬고 싶었지만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아서 장난감을 발로 쓱 밀어 넣고는 얼른 소파 가장자리에 몸을 뉘었다. 굽혀져 있던 허리뼈가 찌르르 소리를 내며 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한 시간을 쓰러져 잤다.


온몸을 마동석 아저씨가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겹게 눈을 떴다. 근육통이 시작된 것이다. 아우 이번 감기 독하다더니 진짜 독하구나. 싶어 얼른 타이레놀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 정도면 나중에 더 아파질 걸 알기에 얼른 병원에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된 것 중에 하나는 내가 아무리 아파도 결국 아이는 내가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파도 내가 애를 보고 애가 아파도 내가 애를 돌보지만 내가 아프면 애를 봐줄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려면 적극적으로 나아야 한다. 그렇기에 골골 거리는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섰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선생님 몸살 기운도 심하고요. 코도 맹맹하고 침 삼킬 때마다 목도 아파요. 머리도 띵하고요. 약이 독해도 되니까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감기에 ‘무지’한 환자의 부탁이 마음에 안 드셨던지, 수다쟁이 의사 선생님은 나를 붙잡고 감기와 감기약의 관계, 바이러스 치료법, 왜 감기약을 세게 지어줄 수 없는지 등등을 일장연설을 하기 시작하셨다.


몸은 아파 죽겠는데 5분 넘게 감기와 바이러스에 대해 설명하시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선생님, 제발 그만 나가고 싶어요.” 말하고 싶었지만 동네에 하나 있는 내과인지라 입을 꾹 다물고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의사 선생님의 설교를 듣고 난 뒤 약을 처방받고 나서는데 배가 고팠다. 그때 문득, 나도 누군가가 밥 좀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봉지를 받고 터덜터덜 집에 돌아오는데 괜히 서글퍼졌다.


집에 돌아오니 역시나 집은 개판 오 분 전. 더 이상 못 본체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끙끙 거리며 집을 치웠다. 아이 아프다고 오로지 아이에게만 관심이 쏠려 있으니 집도 엉망, 빨래도 엉망, 모든 게 엉망이었다. 얼른 밥을 먹고 약을 먹어야 살 것 같아서 집에 있는 걸로 대충 때운 뒤 황급히 약을 먹었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게 한 편으로는 우리 아들도 이렇게 감기로 고생하였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문득 아이가 보고 싶어 사진첩을 열어 아이의 사진을 봤다. 아이 때문에 아픈데 아이를 보며 힘을 얻다니 참 아이러니하였다.




-엄마! 나 왔어!


오랜만에 유치원을 다녀온 아이가 함박 웃으며 유치원 버스에서 내렸다. 아이도 나도 서로가 그리워서 나도 아이를 꽉 껴안았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아이는 얼른 집에 가자는 내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은 채 놀이터로 내달렸다. 바람은 불고 나는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 처럼 아프고. 아이도 감기 나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몇 번이나 이제 집에 들어가자고 하였지만 역시나 아이는 친구들이랑 논다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과자 사준다고 꼬셔 보고, 집에 가면 티비 보여준다고도 해봤지만 요지부동.

20분 전의 반가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나는 다시 도끼눈을 장착한 체 아이에게 점점 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너 안 갈 거면 엄마 혼자 집에 갈 거야! 너 여기서 살아!”


최후의 통첩을 날리자 그제야 아이는 입을 참새처럼 삐죽 내밀며 따라나섰다. 휴. 왜 이리 안 도와주니. 걷는 것도 그냥 앞을 보며 걸어가면 좋으련만, 아이는 집에 가는 내내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팔랑팔랑 갈지자로 걸으니 보는 내가 더 머리가 아팠다. (아들 엄마들 동감하시죠?)

“제발 똑바로 걸을 수 없어?” 물으면 어깨를 으쓱하며 “나 똑바로 걷고 있는데?” 얄밉게 말대꾸하는 내 아들. 야 이 자식아 너한테 감기 옮아서 엄마 죽겠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가 이 애한테 뭔 말을 하겠냐 싶어 입을 다물었다.


아이가 오자마자 집은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손을 씻지 않겠다고 우는 아이와 입씨름을 하고, 환기를 하며 집을 치운 뒤 아이에게 밥을 챙겨주고 틈틈이 밥을 떠먹이면서, 시계만 쳐다봤다. 있으면 짜증 나지만 없으면 또 필요한 나의 남편. 나의 육아동지의 귀환을 몹시도 기다렸다. 남편의 차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뜨자마자 나는 숟가락을 들고 아이보다 더 기쁜 목소리로 “아빠다!” 외쳤다. 그러나 얼른 남편에게 아이를 건네야겠다는 다짐도 잠시. 오늘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녹초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자 갑자기 내가 아픈 것이 미안해졌다.


돈도 안 버는데 아프다고 유세 떠는 건 아니지. 싶어 남편에게 얼른 씻고 오라고 한 뒤 남편 밥을 차릴 준비를 하였다. 기침을 계속 하니 마스크를 끼고 밥을 하는데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제야 남편이 나를 보며 괜찮냐고 물었다. 회사에선 바쁘다는 이유로 남편과 연락을 자주 하지 않기에 남편은 내가 이토록 아픈지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하였다. 남편이 눈치껏 밥을 함께 차리고 같이 밥을 먹는데 그제야 남편에게 오늘 느꼈던 서러움을 토하게 되었다.




  사실 아픈 것은 별 일 아니다. 아이가 아프면 꼭 엄마들이 뒤따라 아픈 것은 불문율이니까. 아이가 아픈 것보다 엄마가 아픈 게 훨씬 마음 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엄마도 사람인지라, 아프면 서럽다. 나도 누가 밥 좀 해주면 좋겠고, 누가 좀 챙겨줬으면 좋겠다. 괜찮냐고 걱정해 주면 좋겠다. 나 아픈 게 제일 서럽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정말 잘 알 것 같다.


이럴 때 친정 엄마에게라도 전화해서 징징거리고 싶다만. 무심한 친정 엄마는 내가 아파서 아이를 당신에게 봐달라고 할까 봐 지레 겁먹고 “아파도 니 애는 네가 봐야 한다. 나는 못 간다.” 이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을 걸 잘 알기에 더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애초에 연락도 못하겠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어서)


다행히 남편이 아이를 씻기고 챙기고 놀아주면서 저녁에 쉴 수 있었다. 아이도 내가 마스크를 끼고 기침을 하자 걱정이 되었는지 조용히 자신의 이불을 들고 와 나에게 덮어주었다. 아이의 이불은 덩치 큰 내 몸의 반도 못 덮었지만. 아이의 마음이 너무 이쁘고 고마웠다.

그래, 가족이 최고지.


아이를 키우지 않을 때는 마음 놓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 사실 아이 키우기 전까지 이렇게 아픈 적도 없었고. 사회는 늘 ‘엄마는 강하다.’, ‘아줌마는 강하다.’와 같은 말을 쉽게 하지만 사실 엄마도 나약한 한 사람일 뿐이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날 때도 많고 내 몸이 아프면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도 귀찮고 다 짜증 난다. 그때 엄마들이 힘을 낼 수 있는 것은 가족의 사랑과 관심인 것 같다. 나를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를 돌보는 남편을 보며 힘을 얻는 것처럼.

일단 오늘 하루 푹 쉬고 얼른 나아서 아이와 발맞춰 걸을 준비를 해야겠다. 아이는 엄마를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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