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방지축 망아지 아들을 키우는 엄마의 고민
지난 3월 말에서 4월까지 나는 몸과 마음이 매우 지친 상태였다.
아이는 3월 말부터 컹컹 호랑이 기침을 하더니 역시나 폐렴을 얻었고 일주일 넘는 가정보육을 하며 약을 써보았지만 낫지 않아 결국 입원을 하였기 때문이다.
의사는 주말 동안 병원에서 치료하면 나아질 수 있다고 말하여 호기롭게 입원을 하였으나 정작 아이의 상황은 계속 나빠졌다. 3박 4일의 입원을 생각하고 갔으나 나날이 입원 날짜는 길어졌고 결국 6박 7일을 꽉 채워서야 우린 집으로 갈 수 있었다.
입원을 시켜본 부모는 알 것이다. 입원한 아이의 병시중이 얼마나 힘든지. 거기다 잠자리가 예민하기론 우리 동네 1등을 달리는 나는 (자랑이 아니다 부끄러운 일이다) 6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입은 헐고 피부에 두드러기가 올라오는 둥 내 몸과 마음의 수명이 점점 줄어드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집으로 오자, 나도 모르게 해외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인스타 속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과 커플룩 입고 동남아의 아름다운 해변가에서 사진 찍은 모습을 볼 때마다 애 본다고 씻지도 못해서 얼룩덜룩한 피부에 추노 머리로 꽉 상투를 묶고 있는 내 모습과 너무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다.
코딱지만큼 좁다란 병실에서 아이와 들들 볶고 있는 내 모습과 동남아의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꽃핀을 꽂고 환하게 웃고 있는 또래 아이의 엄마는 정말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 이제 나도 해외여행을 갈 때가 되었어! “ 퇴근하고 돌아와 피곤에 지쳐 잠자리에 든 남편을 깨우며 나는 외쳤다.
사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 결혼 기간 5년 동안 1년에 두세 번 비행기를 탈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처음 여행은 유럽 패키지 신혼여행이었는데 그때 학을 뗀 이후로 내가 진짜 원하는 여행이 무엇일까 찾아보다가 보라카이를 알게 되었다. 그게 내 첫 자유 여행이자 내가 좋아하는 여행 스타일이 뭔지 알게 된 계기였다.
일단 나는 여행을 떠난다고 해서 억지로 끌려 다니는 패키지 스타일을 극혐 하는 스타일이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유를 좋아하는 스타일상 나는 내가 비행시간을 정하고, 내가 숙소와 여행 스케줄을 정하는 이 자유여행이 딱이었다. 그리고 관광 스타일보다는 자연을 보는 것을 좋아하였고, 날씨도 너무 춥거나 쌀랑한 날씨 대신 1년 내내 따뜻하고 습한, 그런 여름 날씨를 좋아하였다. 그곳이 다 모인 게 어디냐? 바로 동남아였다.
동남아, 특히 태국과 사랑에 빠진 뒤로는 1년에 두 번씩 심지어 2주일 동안 동안 태국에 머무른 적도 있었다. 뭐 2주 머물렀다 해서 돈을 어마어마하게 쓴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그땐 지금보다 8년은 젊었기에 제일 저렴한 밤비행기로 예약을 하여 잠은 비행기에서 잤고 숙소는 하루에 7만 원짜리를 빌렸다. 멋들어진 수영장도 필요 없었고 운이 없어서 도마뱀이 나올 때도 있었지만 뭐, 흐린 눈으로 지나갔다. 왜? 여행이란 그런 것이니까.
짜뚜짝 시장에서 산 싸구려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20000원짜리 시장표 팟타이와 맥주를 먹을 때마다 나는 그렇게도 행복하였다. 화려한 옷도 명품 가방도 부럽지 않았다. 남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힘이 들면 쉬어가도 됐었다. 그리고 이런 내 옆에는 늘 나만 사랑하고 나를 위해 뭐든 다 해줄 사랑하는 (사랑했던) 남편이 있었다.
아무튼, 그때를 생각하니 갑자기 기운 없던 나의 몸이 의지로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내가 자유여행 짬밥이 몇 연찬데, 애 데리고 동남아 3박 4일을 못 가. 가면 되지.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을 미친 듯이 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 아이와 동남아 자유 여행
- 아이와 다낭 자유 여행
- 아이와 나트랑 자유 여행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니만큼 최대한 짧은 노선의 동남아를 찾았고, 요즘 가족여행으로 가장 뜨고 있다는 다낭과 나트랑을 찾게 되었다. 그러나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나의 자신감이 점점 꺾이기 시작했다.
첫 번째, 비행시간이었다. 아무리 비행시간이 짧아도 4시간 30분 동안 꼼짝없이 비행기에 갇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이 천방지축 망아지가 이걸 버틸 수 있느냐 이거다. 거기다 나처럼 잠자리를 가리는 아이 특성상 낮 비행기로 가야 하는데 그럼 비행기값이 밤비행기보다 훨씬 비싸지는 것이다. 하와이도 55만 원에 다녀왔는데 나트랑을 69만 원에 간다고? 갑자기 쓰지도 않은 내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아줌마 마인드) 그래, 그래 일단 간다 치자.
근데 뭐, 나트랑 공항이 멀어서 또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한다고? 오 마이갓. 분명 애가 그 시간에 내리면 흥분을 하고 난리를 부릴 텐데 또 좁은 차에 태워야 하다니. 그게 가능하겠냐고요. 거기다 우버를 타야 한다나 뭐라나. 우버가 뭐야? 나 때는 그냥 택시 타거나 어디 사이트 예약하면 차량 태워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아우 머리 아프다 정말. 나는 점점 지치기 시작했다.
일단 공항 벗어났다 치고, 숙소 가격을 알아보자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숙소에 대한 중요성을 그리 느끼지 못하였다. 내가 물놀이를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한국보다 훨씬 저렴해도 웬만한 퀄리티를 내는 태국 호텔 특성상, 우리는 하루에 10만 원 이하의 호텔을 늘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자야 하는 특성상 예전처럼 정말 잠만 잘 수 있는 호텔엔 데리고 갈 수 없었다.
적어도 아이가 안전하게, 깨끗하게 지낼 수 있고 특히 물놀이할 공간이 충분했으면 싶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 같은 한국 부모들이 묶는 리조트를 찾아보았는데 그 리조트를 보자 와, 이건 뭐 한국에서 묶는 리조트를 뺨치는 가격 수준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애 없을 때 여행 다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인터넷 속 아이의 엄마들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정작 그들의 짐에는 햇반과 함께 아이들이 갖고 놀만한 장난감이 한가득이었다. 종종 아이를 위해 한국음식을 먹어야 했으며 유모차는 필수였다. 그걸 누가 들고 다니냐? 바로 나와 남편이지.
이걸 보자 여유롭게 여행을 하던 나의 모습은 사라지고 외국에 가서도 땀을 줄줄 흘리며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아이가 있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었다. 그냥 외국 나가서도 육아를 하는 것이지. 콩깍지를 벗고 보자 여행 가서 웃고 있는 엄마의 진정한 얼굴이 보였다. 거기다 그들을 바라보며 부럽다기보단 대단하다. 어찌하냐, 나라면 저기서도 그냥 힘들어 누워있겠다. 약간의 존경심과 함께 경외심도 들었다.
허무하게 동남아 여행 계획을 끝내며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나는 언제쯤 예전처럼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까? 과연 나는 해외여행 가기나 할 수 있을까?
아이를 갖기 전 마지막 여행지 하와이 와이키키 바다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남편에게 “오빠, 이 여행이 마지막이 될 까봐 너무너무 무서워.” 속삭였는데, 아 그건 미래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나 보다. 니 팔자 좋은 여행은 끝이라고 말이다.
정말 나는 언제쯤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진정 내가 원하는 여행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