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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ul 18. 2024

이 세상에 좀비는 없어!

겁 많은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일

대충 점심시간이 지난 뒤 오는 유치원 선생님의 전화는 그리 달갑지 않다.

분명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으니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는 걸 진즉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자 역시나 우리 아이가 오늘 문제를 일으킨 것 같았다.


-  어머님, 다름이 아니라 00 이가 오늘 반 친구들이랑 영화를 보는데 아이가 계속 무섭다고 울어서요, 전혀 무서운 내용이 아닌데 계속 좀비가 나올 것 같다고 무서워하면서 울어서 결국 00 이는 혼자 원감실에 내려가서 블록놀이 하면서 놀았어요. 혹시나 00 이가 많이 울었다고 이야기할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어머님.

- 아 그래요? 선생님 말씀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런데 혹시 무슨 영화일까요?

- 그게, 주토피아요.




[주토피아]

  사실 그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라 아이가 크면 함께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그래서 아이가  6살에서 7살로 넘어가던 겨울방학 무렵, 나는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주토피아를 틀어줬었다.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함께 추억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는 나의 바람과 달리 조금만 무서운 음악이 나올 때마다 자지러지게 소리를 내면서 너무 무섭다고. 좀비가 나올 것 같다며 울었고 끝내 우리 가족은 주토피아를 보지 못하고 꺼버렸다.

그 영화를 오늘 유치원에서 다시 봤는데 역시나 아이는 무섭다고 도망쳤다는 것이다.


후에 아이에게 물어보니 영화에서 동물들이 주사를 맞고 매우 흉폭한 동물로 변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이 아이의 눈에는 좀비로 보였다고 한다.

그렇다. 아이는 좀비가 너무 무서워서 주토피아에 나오는 동물들도 좀비로 변할까 봐 보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전화를 끊고 가만 생각을 더듬어 보니 아이가 좀비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 것은 2년 전, 그놈의 신비 아파트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아주 우연히, 시댁에 있을 때 (평상시라면 절대 보여주지 않을) 신비 아파트를 보게 되었는데 하필! 그때! 나온 귀신이 키는 구척이 넘어 보이는 좀비 귀신이었다.


다 큰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만화 속의 허접한 좀비  귀신은 그저 피식 웃기고 넘어가는 존재였겠지만 이제 고작 인생을 만 4년 살아온 꼬맹이의 눈에는 정말 공포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 티브이를 꺼버렸으면 좋았을걸. ) 그 뒤로 아이는 있지도 않은 좀비에 대해 공포를 느끼곤 하였다.




  그렇다고 아이가 원래부터 겁이 많냐.

그건  아닌 것이 흔히 대부분의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어두운 곳, 불 꺼진 방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공간 중 하나였다.

 아이는 평소에도 혼자 분위기를 낸다며 불을 끈 화장실에서 응가를 하기도 하고 (솔직히 이게 훨씬 더 무섭다) 숨바꼭질할 때는 나를 놀라게 해준다고 어두컴컴한 옷장 안에서 몇 분이고 웃으며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할로윈 데이 코스프레를 한다고 호박 귀신 램프를 만들어서 불 꺼진 방 안에서 혼자 호박 귀신 램프를 볼 때도 있었다.


새로운 곳에 가면 예민하고 소심하냐.

그것도 아닌 것이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어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지가 먼저 나서서 물어보거나 때로는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히며 대뜸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묻기도 하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봐야 하고 지가 생각했을 때 아닌 것이 있으면 끝까지 아니라고 하는 것이 우리 아이의 성격이었다. 그 대상이 아무리 크고 무섭게 생긴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오죽했으면  가끔 만나는 어른들이 너 참 말 잘한다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




  이렇듯 정작 평범한 사람들은 겁에 질릴 만한 상황에선 전혀 무서움에 떨지 않는 애가 왜 있지도 않은 좀비에 대해서는 무섭다고 오들오들 떠는지.

아이가 무섭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래 무서워할 수도 있어. 하지만 이 세상에 좀비는 없어. 다 가짜야. 정말이야.” 이 말을 몇 번이나 들려주는데도 아이는 내 말을 믿지 않는다.


담임 선생님은 이제 곧 있으면 초등학생이 될 텐데 아이가 무서워한다고 하여서 오늘처럼 혼자 다른 데로 갈 수는 없다고. 이제 무서운 것도 이겨낼 줄 알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며 나에게 가정에서도 알맞은 지도를 부탁드린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괜히 내가 잘못 가르친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한숨이 나왔다.


가만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도 무서워하는 존재가 있긴 있었던 것 같다. 한창 우리 어린 시절을 강타했던 휴지 귀신이었는데 화장실에서 응가를 하고 나면 웬 손 하나가 변기에서 나타나 (윽 똥 뭍은 손 생각만 해도 더러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물어본 뒤 잔인하게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설정이 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것 같다.


물론 우리 부모님은 내가 휴지귀신이 무섭다고 울면서 말하여도 관심도 없으셨거니와 화장실에 함께 가주시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럼 어떻게 그 공포를 이겨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냥 시간이 흐르면서  그건 거짓말이라는 걸 내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무도 나에게 휴지귀신이 가짜라고 말해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이의 그런 겁먹는 모습이 남자아이 답지 못해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서 더 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이는 그런 것 따위 무서워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나의 욕심이 더 커서 아이의 무서움을 덮으려고만 했던 것도 약간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주토피아를 무서워하는 아이 때문에 좀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왜 일곱 살 형아가 이런 만화도 못 보냐고. 친구들은 다 보는데 왜 너만 못 보냐고 말이다.  


좀비가 없다는 말 대신 좀비 때문에 무서웠지?라고 물어봐줘야 하는데 아직 초보 엄마는 그게 참 쉽지 않다. 아마 오늘 밤도 아이는 나에게 꿈에 좀비가 나올 까봐 무서워. 잠을 들지 못하겠다며 칭얼댈 것이다. 오늘은 아이를 꼭 안아주고 좀 토닥여줘야겠다. 일단 좀비가 없다는 말은 나중에 하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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