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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 서울 Jul 11. 2022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은 흥행할 거라 믿은 이유

박찬욱 <헤어질 결심>

※ 이 글은 <헤어질 결심>을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이전 작을 다수 다루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는 딱히 없는 거 같습니다.



진담과 농담


<헤어질  결심> 개봉 전 홍보를 위해 진행한 여러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는 상업 영화이고 가벼운 영화이니까 많이 봐달라,  고 여러 번 언급한다. 특히나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고 한 귀국 인터뷰 자리에서, 이러한 쾌거가 일종의 선입견처럼  작용해서 예술 영화나 난해한 영화로 인식할까 봐 걱정한다, 고 강조한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홍보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영화가 상업 영화임을 강조하고 흥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일련의 주장은 대중이 자신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어느 정도 흥행할지 예측한 사람의 자조적인 농담처럼 들리기도 하고, 정반대로 자신이 관객에게  어떻게 이해되는지 알지 못하고, 대중과 왜 친밀하게 지내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의 읍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르는 박찬욱 감독의 말은 해준과 서래의 말보다 더 모호하게 들리며, 그 진의를 알기 힘들다.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서야, 마침내, 박찬욱 감독이 진심이었고 모든 말이 진담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는 철저히 이 영화를 상업  영화로 생각했고 가벼운 영화로 생각했다. 물론 그의 생각과 관객 사이의 괴리는 여전히 존재했고, 이는 흥행 부진이라는 냉정한  성적표로 드러난다. 그럼에도 글을 통해 풀어내고 싶은 건, "박찬욱"이라는 감독이 얼마나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느낀 개인적 감각에 의존하고 있고, 벌어진  활동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공개되지 않은 많은 프로젝트와 완성되지 않은 시나리오를 설명하지 못하고 박찬욱이라는 개인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강렬하게 느낀 부분은 특정 장면이 아니다. 영화의 총체에서 오는 감각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전의 영화보다 더욱 매끈하고 수월하다고 느꼈고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느꼈다. 그럼 도대체 이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매끈함


일반적으로  영화는 감독을 중심으로 의도나 목표를 이해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다른 스태프의 의견이나 개입이 있었을 수 있지만 영화는  감독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프로젝트마다, 작품마다 스태프 구성이 달라지고, 일관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주의  비평이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기 쉽고, 한 사람을 기준으로 놨을 때 변화하는 지점을 붙잡아 영화를 이해하는  일이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감독이 같은 스태프와 반복해서 같이 일하는 경우가 잦고, 그 협업의 방식이 보통의 감독과 다를  때는 다른 방식의 이해가 필요하다.



박찬욱  감독은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무명 감독으로 버틴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마초적이고, 터프하지 못한 자신은 감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권위적으로 지시하고 권력욕을 느끼며 현장을 통제할 때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입지를 구축하고 어느 정도 보장된 환경에서 일하게 됐을 때부터 그는 자신이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일하게 된다.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데에 힘을 쏟고, 이를 유지하는 데에 공을  들인다. 영화 프로젝트가 개인이 원할 때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스태프들과 스케줄이 안 맞을 수도 있을 텐데,  박찬욱  감독은 많은 필모그래피를 촬영감독 정정훈, 미술감독 류성희, 의상감독 조상경, 편집감독 김상범, 음악감독 조영욱, 작가 정서경 등  자신과 손발을 많이 맞춘 사람과 작업한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이들의 이름이 없는 작품을 찾는 것은 손에 꼽는다. 이 사실을  중요하게 여길 때, 박찬욱 감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다.



그는  정서경 작가와 하나의 본체에 두 개의 모니터와 두 개의 키보드를 연결해서 동시에 작업하는 방식으로 일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번갈아 작업하는 것과 동시에 작업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이 작성한 것을 다른 사람이 수정하고 다시 한 사람이  수정하는 것은 생각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하고 텍스트로만 놓인 결과물에 자신의 관점을 넣는 작업이다. 그러나 같은 모니터를  공유하면서 동시에 작업하는 것은 생각의 흐름과 썼다가 지운 말과 써내려나가는 속도를 모두 볼 수 있는 과정이다. 박찬욱은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의 색이 변화한 것이 있다면 정서경 작가와의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신은 그것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말은 "받아들인다"라는 것이다. 박찬욱 감독의 특징이 있다면, 그건 보통 사람들보다 '관용도'가 높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와 이미지에 대한 스펙트럼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범위가 넓고 시각적, 서사적 변별점을 가진다.



박찬욱  감독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다면 그건 그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해 내고야 마는 예술가형 감독이라는 인식이다. 그의  영화 속에 드러난 이미지가 다른 영화와 구별되고, 특징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해하기 쉽다. 그는 일상적인, 사실적인, 현실적인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에 관심 없고 오히려 동떨어진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에 소질 있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을 비교하면서, 봉준호 감독과 작업할 때는 '봉준호'라는 사람의 머릿속을 온 스태프가 이해하고 캐내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반대로, 박찬욱 감독과의 작업은 개방적이고 시도에 대한 제한이 없는 작업이라고 설명한다. 오히려 평범한 걸 거부하고 모든 요소에서  다른 걸 원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은 이야기를 뿌리에 두고 스태프들의 생각과 시도와 도전을 흥미롭게 여기고 받아들이는 탐험가 형 감독이다. 본인이 먼저 어떤  이미지를 상정하지 않고 스태프들이 시나리오 해석해 온 것을 더 확장시키며 영화 속에 적용한다. 그 과정에서 스태프들이 더  무모하고, 비범하고, 다르게 할수록 흥미를 느끼고, 작업에서의 희열을 느낀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들보다 관용도가 높고 작품 속에서  성립할 수 있는 이미지에 대한 허용치가 더 넓기 때문에 겁 없이 차별된 이미지를 구현한다.



스태프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감독이라는 점과 같은 스태프들과 반복적으로 작업했다는 점. 이 두 가지가 결합하면서 스태프와 박찬욱  감독 간의 호흡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하고 스태프들의 실력이 성장함에 따라 <헤어질 결심> 속에서 이뤄진 모든  요소는 조직적 세공술의 정점에 이른다. 거기에는 한 치의 어긋남 없이 모든 스태프가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 두 개의  키보드가 하나의 본체에 연결된 것처럼 하나로 뭉쳐진 여러 손발처럼 보인다. 이게 영화 속에서 느낀 매끈함의 정체이다.



유일하게  이질적이고 눈에 띄는 것은 촬영이다. 감각적인 촬영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그 앵글이, 프레이밍이, 렌즈가  이전과 다르다. 이는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온 정정훈 촬영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남한산성>,<밀정>으로 유명한 김지용 촬영감독이 합류했기 때문이다. 물론, 촬영감독은 이야기를, 감독의  생각을 구현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개인의 고유한 스타일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촬영감독도 많다. 하지만,  카메라를 잡는 게 사람인 이상 자기 손에 익숙한 샷이나 앵글이나 사이즈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세세한 차이가 합쳐져서 구별되는  특징이 되기도 한다.



이런  감독과 스태프들 간의 호흡이 날이 갈수록 발전한다는 것은 <아가씨> 때 류성희 감독이 벌컨상을 수상하면서 입증한다.  류성희 감독 자체도 실력 있는 미술감독이지만 많은 작품 중 <아가씨>로 받았다는 것 자체가 감독과 함께 작업해오는 동안  그 소통 방식과 합에서 탄탄한 관계를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이 스태프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면서 스태프들의 실력이 다른 영화보다  더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때문에, <헤어질 결심>에 흔히 얘기하는 배운  변태적인 순간이나 요소가 있다면 그건 박찬욱이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스태프들이 모두 배운 사람이어서 가능했을 것이고 이런 점이  영화 속에 선명하게 드러날 때 각 스태프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다.





수월함


앞서  얘기할 때 두 가지 감각에 대해서 얘기했다. 매끈하고 수월하다. 매끈함이 스태프들과의 합에서 온다면, 수월함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차례이다. 이 감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박찬욱 감독의 이전작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영화에서  어떤 것을 느꼈고, 이런 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비교하면서 감각의 정체를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 매끈하고 수월하다는 걸 느낀 건 <헤어질 결심>이 처음이 아니다. 장편 영화 기준으로 이전 작인  <아가씨>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전작인 <스토커>에도 느꼈었다.



<박쥐>까지의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늘 불쾌하고 불편하고 꺼끌거렸다. 물론, 이런 감각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자극적인 설정과 선정적인 장면,  폭력적인 이미지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이런 장면을 제외하고서라도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래서 오랫동안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일이 꺼림직했고, 망설여졌다. 그런데, 그다음부터 영화는 어느 순간 그런 에너지를 상실한다. 무미건조하거나 보기  수월해진다. 그 변화 이전의 특징이 무엇이었을까 고민했을 때, 그 이전의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자신의 조각을 담은 것이라고  느낀다. <복수는 나의 것>, <친절한 금자 씨>,<박쥐> 모두 박찬욱 감독이 충무로에서 무명  감독일 때 모조리 거절당한 시나리오이고 아이디어이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한 갈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성사되지 않은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에너지의 강도는 세진다. 이런 갈증은 영화 속에 짙게 남아서 찐득하고 찝찝한 감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박쥐  각본집의 서문에 정서경 작가는 <박쥐> 이후 박찬욱 감독이 많이 흔들리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작품이  감독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게 됐고, 자신을 작품 속에 깊게 남기는 모습을 존경한다고 한 적이 있다. 실제로 박찬욱은  자신의 최고작이 <박쥐>라고 생각하고, 가장 오랫동안 품은 아이디어라고 한다. 그렇게 <박쥐>를 기점으로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털어낸 박찬욱 감독은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다수의 작품이 앞과 뒤가 구분되는 서사를 가진다. 주로 1막에서는 익숙한 장르 영화의 설정과 캐릭터를 끌고 와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중간의 사건을 통해 방향을 선회하며 클리셰를 비틀고, 2 막을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박찬욱 본인도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탐험가적 성향에 걸맞게 익숙한 곳에서 출발해 다른 길을 거쳐서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도착하길 바란다. 이런 서사적 취향이 극단적으로 반영된 경우는 <친절한 금자씨>이다. 영화의 시작에서  2막에서 벌어질 사건을 예측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돌이켜보면, 이런 방식은 박찬욱의 특징이라고 할 만하다.



동시에,  이런 서사 전개 방향이 박찬욱 감독의 행보와도 연관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으로 시작한 그는 그 이후에 여러 활동을  하면서 더욱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있다. 그는 한국 영화계에 있는 모든 감독 중 가장 활발하고 다양하게 활동한다. 각본집을  내고, 사진전을 열고, 뮤직비디오를 찍고, 꾸준히 단편 영화를 찍고, 외국 영화를 찍고, 외국 드라마를 찍고, 외국 드라마의 쇼  러너를 하고, 제작사를 차려서 제작을 한다. 특히나 <박쥐> 이후에 이런 작업은 더욱더 다양화된다.  <박쥐>까지가 그가 충무로에서 고생하면서 자신이 가진 바탕을 활용해서 작업을 한 시기라면, 그 이후부터는 제한 없이  새롭고,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고 시도한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나 일상을  질료 삼아서 창작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감독이고, 작품과 자신이 멀수록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하는 감독이다.



<박쥐>  이후에 선택한 작업은 자신이 쓰지 않은 이야기, 자신이 살아본 적 없는 환경에서 진행되는 <스토커>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고갈되었을 때, 남의 이야기로 시작했고, 스태프들과 합이 잘 맞을 때 처음 보는 스태프들과 일하러 외국으로 갔다. 그는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고 예측하지 못한 순간을 받아들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이 쉽지 않은지 반작용처럼 한국에서 장편  영화를 찍을 때는 다시 익숙한 스태프들과 작업을 하게 된다. <아가씨>는 이전에 같이 작업한 스태프를 총출동시킨  작품이고 '핑거 스미스'라는 원작에서 출발해서 다른 곳에 도착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즉, 박찬욱 감독은 <박쥐> 이후  새로운 이야기와 새로운 환경이라는 변주를 주었고, 거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새로운 이야기와 익숙한 환경이라는 구조로 치환하여 영화를  만든다. 그다음, 다시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환경, 새로운 매체인 <리틀 드러머 걸>을 찍는다.



<헤어질  결심>은 그 작업의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리틀 드러머 걸>을 제작하던 과정 중에 시작한  프로젝트이고, 그때 당시에 받은 느낌이나 감정이나 정서가 고스란히 작품에 녹아들어있다. 박찬욱 감독은 익숙한 이야기, 익숙한  환경, 익숙한 매체로 다시 돌아오며 이전의 프로젝트에서 받은 고통이나 고생을 희석한다. <헤어질 결심>의 플롯은  난해하지 않고, 주인공들의 감정은 생각보다 명료하며, 구현된 영화는 이전의 박찬욱 영화의 클리셰(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지점에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상업적, 대중적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 이전의 영화들이 흥행하지 못했을  때, 그 지점이 어떤 예측 불허함, 낯섦, 자극과 폭력 때문이라고 여긴다면 그런 것을 제거했을 때는 반대로 대중에게 먹힐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실제로,  <아가씨>의 경우에는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고, 서사는 친절해지고 예측 가능해지고, 영화 속 이미지는 이전의  박찬욱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 섬세해졌다. 그 결과 400만 정도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고 열성적인 팬층도 확보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헤어질 결심>은 더욱 예측 가능하고, 선정성도 줄이고, 익숙한 이미지로 채웠다고 생각한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사태의 간극은 관객과 창작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벌어지는 줄타기에서 비롯된다. 관객은 <박쥐> 이전의 박찬욱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그 불편함을 기억하고 있고,  어렵다고 느낀다. 반대로 박찬욱 감독은 자신이 한없이 홀가분한 상태이고, (관객에게) 익숙한 방식의 영화이고,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사이에서 <헤어질 결심>은 자신이 이른 경지를 다수에게 선사하지 못한다.






박해일과 탕웨이


더해서,  <헤어질 결심>이 그래서 뻔하기만 한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 또한, 예측하지 못한 곳에 간다. 그건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정서경 작가가 탕웨이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 박찬욱 감독이 박해일을 상상하며  형사 캐릭터를 구축했을 때, 그리고 실제로 캐스팅이 성사되어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었을 때 이 영화는 두 배우를 위한 영화가  된다. 때문에, 이 영화의 익숙한 곳에서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우리가 아는 박해일, 탕웨이의 얼굴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모르는 박해일, 탕웨이의 얼굴에 도착했을 때 그 빛을 발한다.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것은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내뱉는  뻣뻣하고 우스꽝스럽고 세련된 말과 탕웨이가 보여주는 우아하고 영리하고 개구쟁이스러운 행동이다.



이  영화를 상징과 대비를 통해 해석하고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실 잘 말하는 일은 어렵다) 이 영화 속에서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과 유사성을 찾아 비교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실 어렵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유사성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 영화 속에서 박찬욱 감독의 변화와 진화를 지적하고, 이전의 영화와 연결 지어서 박찬욱 감독의 사랑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건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봐야 하는 것은 엔딩이 아니라, 상징이 아니라,  색이 아니라 배우의 얼굴이고 말이고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계산과 본능 사이에서, 그리고 타고난 기질과 설계 사이에서  마법이 벌어지는 순간을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 이 영화에서 박찬욱 감독의 의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칸에서 감독상 대신 배우들이  상을 받았어야 한다는 말도 이런 생각에서 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난 감상에서 박찬욱이 두드러질수록 영화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알던  박찬욱은 점점 더 흐릿해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쥐>까지의 박찬욱을 잊을수록 우리는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을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고, 그가 하는 활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박찬욱 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짙어서 영화 보기를 망설이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 선입견을 내려놓고 보기를 권한다.


영화는 상당히 가볍고 대중적인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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