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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k Jan 05. 2023

안 신선한 냉동 해산물


전날 일찍 자서 그런지 일찍 일어났다. 그렇다고 너무 일찍은 아닌 오전 10시쯤. 몸에 정신이 안 차려진다. 침대에서 반쯤 감은 눈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내가 일찍 자는 동안 남들이 어떻게 사나 구경했다. 게시글을 내리다 보니 누군가가 돈까스 먹는 걸 올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3순위 안에 꼭 드는 음식을 보니 나도 오늘 꼭 돈까스를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12시쯤 일어나서 감지 않은 떡진 머리와 다 늘어난 트레이닝복, 5년 넘게 나와 함께한 쪼리를 찍찍 끌고 집 앞을 나섰다. 포장해서 자취방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다행히도 개강 전이라 사람이 없었다. 이 정도라면 눈치 안 보고 혼자 밥을 먹어도 괜찮겠다 싶어서 가게에 모습으로 들어갔다.


등심 돈까스를 먹을까 아니면 칠리 해물 스파게티 돈까스를 먹을까 고민을 했다. 칠리 해물 스파게티 돈까스는 등심 돈까스에 비해 2,000원 가량 비싼 대신 다양한 구성의 돈까스와 매콤한 스파게티가 같이 나온다. 2000원이 아깝기도 하고 첫 끼니에 너무 많이 먹기도 그래서 그냥 등심 돈까스를 주문했다. 3년 만에 다시 맛보았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집에 와서 침대에 누워 또다시 빈둥거렸다. 배가 불러서 그런가 눈이 스르르 감겼다. 1시간 정도 낮잠에 거하게 취한 뒤 일어나서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자취방에서 버스 타고 10분 정도 가면 시장이 있다. 시장 구경과 자취방에서 쓸 물건 몇 개가 필요했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니 엄청 큰 시장이 나왔었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그릇가게가 하나 보였다. 지금까지 자취방에서 컵이랑 접시 없이 밥을 먹어서 작은 컵 하나와 접시 하나를 샀다. 수저도 없어 항상 학교에서 쓰는 조리 도구로 밥을 먹었는데 수저도 한 벌 샀다.


 "냉동 새우 2박스 만 원! 냉동 새우 2박스 만 원!”


집에 가려구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는데 큰 소리가 들렸다. 평소 새우를 좋아하는 나는 홀린 듯 그 자리에서 사장님에게 계좌이체를 했다. 집에 들어와 정리를 하려고 보니 좁은 냉동실에는 3키로 닭가슴살이 냉동실을 지키고 있었다. 억지로 한 박스를 꾸역꾸역 넣고 나니 남은 한 박스가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한 박스는 그냥 빠른 시일 내로 다 먹어치우기로 하고 냉장실에 꺼내 놓았다.


냉장실에 새우가 다 녹을 때쯤 배가 고파졌다. 저녁으로 뭘 먹을지 냉장고를 열어 고민했다. 새우만 넣고 파스타를 먹을까 생각했는데 낮에 못 먹었던 해물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다. 항상 그렇다. 뒤돌고 나면 생각이 나고 먹고 싶어진다. 저녁은 해산물 토마토 파스타를 정하고 근처 마트에서 토마토소스 하나를 사기로 했다.


전에 사두었던 냉동 해물믹스를 물에 담가 해동시키고 마트로 향했다. 가장 싼 토마토 소스를 하나 담으니 3,000원 정도 나왔다. 집에 도착해서 냄비에 파스타 삶을 물부터 올렸다. 평소에 짜게 먹는 걸 좋아해서 소금을 넉넉히 넣고 물이 끓자 면을 넣었다. 해산물이 많이 있으니까 면은 조금만 삶았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보다 살짝 덜 익히고 면을 건졌다. 여전히 면을 받칠 체가 없어서 면을 하나하나 건지긴 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면을 다 건지고 냄비에 기름을 조금 둘렀다. 기름에 냉동 해물믹스를 넣었다. 해산물들이 어느 정도 익자 사온 토마토 소스를 반절 정도 붓고 면과 면수 약간을 넣고 잘 볶아주었다. 살짝 덜 익은 면이 소스를 빨아들이면서 알맞게 익자 젓가락으로 돌돌돌 잘 말아 오늘 사 온 그릇에 이쁘게 담았다. 생각 외로 잘 나왔다.


사진을 찍고 한 입 먹었다. 안 신선한 냉동 해산물 바다 내음과 믿음직한 대기업 토마토 소스 맛이 잘 어우러져서 아주 잘 들어갔다. 반절쯤 먹고 알아차렸다. 새우를 안 넣었다는 것을. 면도 조금만 삶아서 다 먹고 나니까 부족했다. 그냥 참고 피시방 갈까 아니면 더 먹을까 고민하다 그냥 더 먹기로 했다. 이 상태면 분명 게임하다가 남들이 시킨 라면 냄새에 홀려 더 먹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파스타를 다 먹고 2차 식사를 준비했다. 냄비를 깨끗이 닦고 냉동 해물 믹스를 녹였다. 해물 믹스가 다 녹자마자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새우를 넣었다. 기름에 새우향이 돌며 새우가 익어갈 때쯤 냉동 해물 믹스를 넣고 파스타 남은 토마토 소스를 다 넣었다. 병에 남은 게 아까워서 물을 조금 넣고 흔들어 싹 비워냈다. 소스가 보글보글 끓자 면 대신 이번엔 즉석밥 반 개를 넣었다. 밥이 어느 정도 다 익자 근사한 해산물 토마토 리조또가 완성되었다.


만족스럽게 먹고 치우고 피시방에 가서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집에 들어왔다. 집에서는 안 신선한 냉동 해산물 냄새가 조금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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