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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론도 Sep 25. 2024

아들에게 가르쳐 준 이별

긴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를 축복하며..



아들이 애완 돌이라며 애지중지 아꼈던 작은 돌멩이 하나가 있었다. 누나가 먼저 동글동글한 돌멩이 하나를 지니기 시작했었는데 그게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다. 아들도 어느 날 집 근처에서 주워 온 손톱만 한 돌멩이 하나를  그때부터 애지중지 아끼기 시작했었다. 누나랑 같이 돌 이름도 지어주고 꼭 살아있는 것처럼 대해줘서 나조차 신기하게 바라봤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세면대에서 돌멩이를 목욕시키겠다고 둘이 시끌벅적하게 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울상이 되어 나오는 아들의 얼굴을 보고 왜 그러냐고 물었었다. 윌슨(아들의 작은 돌멩이 이름)이 세면대 배수구로 들어가 버린 거였다. 아들은 슬퍼서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눈물을 글썽거렸다.

 

자기 실수로 윌슨이 배수구로 빠져버렸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무거운 표정을 지었었다.


돌멩이 하나에 주는 사랑이 예뻐서, 보고 있으면 나까지 미소가 지어졌었는데 슬픈 표정을 보니 마음이 쓰였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줄까 해줄 말을 고르다가 타로를 꺼냈다. 평소 아들의 고민 상담을 타로로 해주곤 했었다. 타로로는 자신도 모르고 지나치는 무의식을 볼 수 있기에 아들의 마음을 그렇게 함께 읽어주곤 했었다.

아들이 윌슨을 잃고 슬퍼하던 그날도 나는 위로할 방법을 찾다가 타로를 꺼냈었다. 윌슨이 배수구에 빠져서 마음이 어떨지, 앞으로의 여정은 어떻게 될지 한번 보자고 말이다. 타로에서 보이는 대로 나는 아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었었다.


"윌슨이 여행을 떠났나 봐. 원래 배수구로 흘러 들어간 물은 긴 여행을 떠나. 그렇게 어딘가로 흘러 들어가거든. 윌슨도 그렇게 물을 따라 여행을 떠난 모양이야. 돌은 산이며, 들이며, 길이며 자연이 집이니까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까? 이번에 아들 덕에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걸지도 몰라."


"아들아, 이건 슬퍼할 일이 아니라 가고 싶은 길을 떠난 윌슨을 축하해 주고 응원할 일이야~ 아들이 좋아하는 고래상어도 수조 안에 잡아넣고 아무리 사랑을 준다고 원래 살던 바다에서보다 행복할까? 고래상어가 바다에 살면 더 행복한 거잖아. 윌슨도 더 행복한 곳으로 그런 여행을 떠난 거래. 정말 사랑하면 행복을 빌어주는 거야. 내가 행복해지려고 내 곁에 가둬두지 않고."


"타로로 보니까 윌슨이 슬프지 않대. 오히려 행복해 보여. 집에 있는 동안 아들한테 사랑 듬뿍 받아서 고맙대. 그러니까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래. 덕분에 여행 떠나게 되어 좋아하는 것 같아. 그러니 슬퍼하지 않아도 되겠어. "


타로에 나온 그림대로 아들에게 해줬던 이야기였다. 그림에 그렇게 보이니 아들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믿든 안 믿든 그건 아들의 선택이지만, 그렇게 속상해하는 아들을 다독이며 지나갔던 일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 일을 잊어갈 때쯤 우리 가족은 첫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뜨거운 여름 볕에 지칠 대로 지쳐서는 그늘에서 잠시 쉴까 하고 머물렀다. 하도 걸어서 힘든 아이들이 길가에 쭈그려 앉아 돌멩이를 주우며 놀고 있었는데 다급히 아들이 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 이것 봐 윌슨이 여기 있었어!!"


아들이 흥분된 목소리로 나에게 달려와 움켜쥔 손을 펼쳐 보였다. 작은 손바닥 가운데에는 손톱만 한 작은 돌멩이 하나가 있었다.


"아들아, 엄마 말이 맞지? 그때 배수구에 빠져서 죽은 게 아니라 여행을 떠났다고 했잖아. 여기에 와있었네. 경치도 좋고, 너무 예쁜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나 봐."


아직은 순수하게 엄마 말을 믿는 나이라 아들은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었다. 그러고는 집으로 데려가자는 말이 나왔다가 이내 있던 곳에 놔두고 자리를 떠났었다.


전 같았으면 반가워서 집으로 가져왔을 텐데 아들은 거기 있어야 윌슨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대로 놓아두고 길을 떠났던 걸 보면. 그렇게 내 욕심이 아닌 상대방의 행복을 빌어주는 진짜 사랑을 배워가는 거려니 마음이 흐뭇했었다.


얼마 전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시댁으로 다급히 내려갔었다. 평소 몸이 안 좋으셨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몰랐다며 아들은 또 슬퍼했다. 추석 명절 내내 함께했던지라 더 그랬던 모양이다. 너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봐서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별이라는 건 언제나 아쉽고 슬프다. 윌슨과는 또 달리 이번엔 함께했던 할아버지와의 이별이니 더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다.


아들을 안아주며, 나도 울컥하는 마음에 하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뱉었었다.


할아버지도 윌슨처럼 여행을 떠나신 거라고. 살아계셨을 때 너무 아프고 고생하셔서 편한 곳으로 여행을 가신 거라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윌슨처럼 행복하게 지내고 계실 거라고. 그러니 윌슨처럼 우연히 어딘가에서 또 만날 날이 있을 거라고. 할아버지가 먼저 떠나신 것일 뿐 우리도 언젠가는 모두 떠날 여행이라고. 그러니 편히 행복하시길 빌어드리자고.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해줘야 할 마음이라고 말이다.


언젠가는 아들도 이해하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겪는 가족의 죽음을 나는 그렇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죽음이 너무 무섭고, 슬프지 않게.


언젠가 엄마나 아빠가 떠날 때도, 사랑하는 누군가와 이별할 때도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라면서. 행복한 여행을 떠난 거라 스스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스스로를 탓하거나, 오랫동안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아이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이별을 그렇게 배우기를 바랐다. 사랑했던 이들이 곁을 떠난다고 영원히 못 보는 건 아니라고. 언젠가 또 다른 공간에서 만날 날이 있을 테니까 먼저 간 사람의 행복과 평안을 빌어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가끔 생각나면 추억하고, 눈물 나면 울기도 하면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마음으로 함께하는 연습을 해보자고.

나는 아들에게 죽음이라는 이별도 그렇게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먼저 떠난 모든 이들의 다 같은 마음일 거라 여기며.




남프랑스 여행 중 만난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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