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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알쫑알 대는 사람 May 29. 2023

콩 심은 데, 콩 난다


“콩 났어! 콩이 났어!


호들갑이나 드라마틱한 감정 표현을 기대하기 좀처럼 어려운 엄마가 연휴라 늦잠을 즐기는 딸내미 방문을 박력 있게 열어 선 채 외치는 소리다. 


읭?


“큰일 났다고?!


잠결에 잘못 듣고는 3초 만에 '벌떡' 일어난 눈 앞을 가득 채운 초록. 초록? 이게 지금 이렇게 다급할 일인가 싶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는데, 뒤이어 찾아온 대사. 


“콩이 났어.”


화분에 새싹도 나고 꽃도 피고 지고 뭐 당연지사이건만하고 감흥 없던 찰나, 웬 콩?! 자세히 살펴보니, 작은 꽃 옆에 '빼꼼' 고개를 내민 새싹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리 봐도 여기 있을 친구가 아닌데 하며 살펴보니, 동화책 <잭과 콩나무>에서나 본 적 있는 듯한 콩 새싹이다. 화분 내 전체 지분의 9할은 차지한 듯한 분홍 꽃들 옆에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찾아내기도 힘들 아주 작은 공간에 고개를 내밀었다. 


'빼꼼' 


의외의 발견은 대부분 귀엽기 마련인데, 이 작은 초록 생명체는 귀여워도 몹시 귀엽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슈퍼 당당’ 하달까.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콩 심은 데 콩이 났단다. 정확히 말하면 콩 던진데 콩이 난 거지만. 돌잡이 조카가 엄마가 흘린 콩알을 주어 들고는 한참 구경하더니, 엄마 품에 안긴 채 베란다로 ‘홱' 집어던졌었단다. 꽃 화분 속에서 남의 집 살이 하며 햇빛이며, 바람이며, 물을 더부살이로 얻어먹으며 그렇게 열심히 싹을 틔워 냈을 생각을 하니 이 작은 생명체가 몹시 대견하다. 늦은 아침 침대에 누워 만난 뜻밖의 생명의 신비에 한번, 콩 심은 데 콩 나는 이 놀라운 광경이 새삼스럽다. 


이 작은 씨앗도 제 자리에서 제 할 일 다 하는데, 더 이상 꿈속을 헤맬 일이 아니다 싶어 서둘러 침대를 나서 본다. 


콩 새싹을 봤더니 콩국수 생각이 간절한데, 오랜만에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셨단다.


오늘 점심은 콩국수. 


역시 콩 심은 데 콩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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