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을 만나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예쁘다. 보고 있으면 그 활기찬 에너지에 나도 물들 것 같다.
나의 젊은 시절, 20대를 돌이켜보면 절망과 고민에 빠져 어두운 낯으로 돌아다녔던 적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 이의 눈에는 나도 꽃다운 사람으로 비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먹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현실과 동떨어진 헛된 꿈만 꾸었고 실질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사회에서 정해진 궤도대로 살아가지 못했고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여기저기 방황하다 교사가 되었다.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 선생만은 되지 않겠다고 하던 내가, 30대에 다시 공부를 해서 교사가 되다니 인생은 정말 아이러니하다. 넷이나 되는 형제 중에 유일하게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은 딸이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은 임용시험에 합격했던 그날이 아닐까 싶다. 엄마와 부둥켜안고 말 그대로 방방 뛰었던 것 같다. 그때야말로 내 인생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성취감에 눈을 빛내며 인생의 당당한 주인공으로 우뚝 섰던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이론과 실제는 달랐고, 시골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교사라는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고 좌절감에 몸부림치며 또다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에 삐졌다. 일반 교사의 틈바구니에서 특수교사는 소외된 비주류였다. 지금은 주류나 비주류나 다 힘들다. 하지만 스트레스에 취약한 인간인지라 세상에 제가 가장 힘든 사람인 것처럼 허덕이며 살았다.
늘 비슷한 일을 해도 시스템이 바뀌고 학생이 바뀌고 관리자가 바뀌고, 늘 초보인 것처럼 일은 쉬울 때가 없었다. 같은 일을 해도 시간이 전보다 더 오래 걸렸고 총명했던 기억력은 안드로메다로 도망가고, 멍하니 있다가 실수를 할 때도 많았다. 시간이 이렇게 연륜보다 주름을 선물할 때, 나는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자리에 선 나를 발견했다. 원거리의 근무지에 출근하기 싫어서 힘들어하고 자주 술병이 나서 누워 계시던 아버지, 자식들 하는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하시던 아버지의 자리에 서니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부모의 자리에 서니 어릴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느껴진다.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이해가 되고 애잔하고 서글프다. 고생도 안 해보고 곱게 자란 엄마가 사 남매 기르며 아버지에게 맞추느라 얼마나 고달프셨을지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다. 이제 거울 속의 늙고 초췌한 모습의 나에게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진다.
아무것도 이룬 것 하나 없어도 부푼 꿈과 젊음의 치기로 부모님께 반항하고 속 썩이던 어설픈 내 청춘. 그때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이라 큰소리쳤다. 지금 내 아이들처럼 '내가 알아서 한다'라고. 작은 아이들이 부모의 뜻을 무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칠 만큼 자랐고, 그에 반해 나는 점점 힘이 약해지고 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삶은 공평한 것인가.
뜻대로 되지 않았던 인생. 그 수고로움과 숱한 고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제자리에서 버텨내셨던 부모님과 과거의 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주변인으로 사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라고.
*덧) 원래 생각했던 방향은 이게 아니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습니다.
나이 듦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제목부터 쓰고 시작했는데 부모님과 세대교체로 넘어가 버렸네요.
그래도 일단은 그냥 발행하겠습니다. 새해에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는 변명이 통할지 몰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