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의 집중력을 가져가 버렸나
나이가 들고 보니 집중력이 정말 많이 떨어진다. 집중력과 기억력이 해가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소실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사람들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고, 외워도 금세 까먹는다. 얘기를 하다가 고유명사가 생각나지 않는 것도 몇 해가 지났다. "걔 있잖아. 저번에 티브이 거기 나온 애'라고 하는 우스갯소리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한때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하던 나는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이라는 시간 도둑이 가져가 버렸을까?
'도둑맞은 집중력'이란 책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나의 집중력은 한 해가 다르게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글을 쓸 때도 깊이 있는 긴 글을 잘 쓰지 못한다. 논술 만점 받던 나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논지도 빈약하고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건지 횡설수설하면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늘어놓다가 허무하게 끝난다. 그래도 뭐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쓰지만, 스스로도 부족함을 느껴 부끄러울 뿐이다.
글쓰기도 그렇지만 일상생활을 하거나 특별한 모임이 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딴생각을 하다가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질문을 한다. 서류도 자세히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 대충 보고 실수를 한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찾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 다른 사람이 말해줘서 알게 되기도 한다. 줌으로 하는 회의나 모임에서도 혼자만의 생각에 빠지거나 멍 때리다가 내 차례가 오면 대충 대답하거나 살짝 주제에 빗나가는 말을 한다.
학창 시절 때 좋아했던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 친구 헬렌이 된 것 같다. 헬렌은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듣다가 고향 노섬벌랜드를 흐르는 시냇물을 생각하기도 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그때 '노섬벌랜드를 흐르는 시냇물'이라는 표현에 반해서인지 아직도 그 구절이 떠오르는데, 그와 달리 나의 단기기억력은 점점 쇠퇴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성인 ADHD까지는 아니라고 위로를 해본다. 피할 수 없는 갱년기의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실수를 하거나 옛날의 자신과 비교하노라면 서글퍼진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긴장이 오래가지 않는다. 소리쳐 부른다고 나의 집중력과 기억력이 돌아올 때는 지났다.
이제는 뛰어난 기억력이나 날카로운 비판력보다는 세월이 나에게 준 약간의 여유와 너그러움, 연륜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수줍은 아가씨가 조금 뻔뻔스럽게 따지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도 거는 아줌마가 되었다. 몸매처럼 마음도 두리뭉실해져서 그렇게 조연의 삶을 살아간다. 그렇게 아줌마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