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아파트에 살어리랏다
말 그대로, 나는 서울의 어느 임대 아파트에 살았다.
15평이라고 소개된 집이지만, 사실은 좁은 베란다와 안방과 거실을 겸하는 방 하나와, 침대 혹은 책상 하나만 넣으면 꽉 차는 관 짝 같은 작은 방 하나가 있는 실평수 약 8평의 조그마한 집이다.
'8평이라니, 더 좁은 원룸에서 사람이 사는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시 소개해 보자.
그러니까, 나는 그곳에서 부모님과 나, 이렇게 셋이 8평의 집에서 살았다. 20년 넘게.
2001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살았으니, 나름대로 동네의 토박이인 셈이다.
20년 넘게 나는 집과 함께 자랐다.
이제 그 집은 낡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벽지 교체를 해도, 난방 방식을 교체하는 공사를 해도, 노후화된 싱크대를 교체해도 그 집은 이제 낡아버렸다. 그리고 나는 훌쩍 커서 이제는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그곳에 추억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달콤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나는 그 집을 미워했다.
나는 2022년 5월 초에 임대 아파트를 나가서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이 집에서 이렇게 오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여 이사를 하게 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결혼을 할 줄은 몰랐다. 이것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스무 살이 되면 이 집을 나가 대학교 근처에 집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돈이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학교를 다니고 26살에 첫 직장을 얻게 되었을 때는 막연하게 직장 근처에 작은 원룸이라도 얻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냥, 그때도 돈이 없었다. 집 때문에 빚을 낼 형편도 아닌 것 같았고. 학자금 대출받은 것도 갚아야 하고,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돈을 허투루 쓰는 타입은 아니었으나 그냥 한두 푼 모으다 보면 언젠간 독립을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목돈이 없다, 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근근이 버티며 살아왔다.
내 삶에는 결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그 이후에는 돈을 왕창 벌어 원룸이나 자취방이 아닌 거실과 방이 분리된 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서울의 방값은 너무 비싸 그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임대 아파트에 살게 된 이후 나에게는 '임대 아파트 거주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은 그곳을 나와 산지 7개월가량이 되었다. 이제 나는 집을 갈 때, 임대 아파트의 입구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야 '평범한 사람'이 된 것 같다. 더 이상 나를 '임대아파트에 살지만 얘는 유능한/뭔가 다른/좋은 애야'라는 식의 답을 얻기 위해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실이 나를 퍽 행복하게 한다.
지금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온 날, 이렇게 큰 집에 2명이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거실에서 대자로 누울 수 있다.
나를 위한 침대가 있고, 내가 원할 때까지 어두운 공간에 누워있을 수 있다.
샤워를 할 때, 통돌이 세탁기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목욕하지 않아도 된다.
놀랍도록 소소한 행복인가? 하지만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나름대로 화목한 편이었다. 가족마저 불화했다면 어떻게든 떠났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적응하느라 조금 힘들었어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었다. 내가 이런 글을 쓰겠다고 하니 가족과 친구들은 놀라는 기색이었다.
"너는 이곳에 사는 것에 콤플렉스가 없는 줄 알았어."
"그렇게 힘들었었어? 그런 걸 초월해서 살아가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지."
하지만 둘 다 땡이다, 땡. 나도 그저 그런 보잘것없는 사람이다.
'그 아파트, 엄청 가난한 사람들만 살잖아요. 나라에서 지원받는 사람들. 한부모 가정이나 독거노인 같은 사람들 말이에요. 이상한 사람들도 참 많다던데. 그쪽 길을 걸어가다가 어떤 미친놈이 얼음을 던져서 병원 간 사람도 있대요.'
내가 그 아파트에 산다는 것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은 아파트를 손가락질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그 대화에 낀 나는 당연히 그곳에 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대화였다.
'임대 아파트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그냥 넘겨짚어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저도 거기 살아요.'
라고 대응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나는 이런 대화에 끼면 무시받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대응했다.
침묵하고. 웃는다. 그리고 "예, 그렇군요."라고 말한다.
남일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렇게 대응하기를 십수 년째 계속해왔다.
스스로의 마음속으로는 '나는 여기 살지만 여기 사는 사람들과 달라' 하고 동족 혐오를 해왔을지도 모른다. 아니,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웠을 테니까.
원래 임대아파트에 살았던 기억은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 와서 가구 하나 없는 집을 돌아보며
이제 나도 친구들 집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문을 열면 소파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고 식탁이 있는' 그런 집에 사는구나. 이제 됐다. 전의 기억은 다 잊어버리자. 상저 입었던 것도, 분노했던 것도 까먹어버리자 생각했다.
하지만 올해 6월, 국제도서전에서 SF에 대한 세션의 연사가 되어 토크 사전 질문지를 이메일로 받아 나름대로 답변을 궁리하고 있을 때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있었다.
질문지의 문항 중 하나는 '한국 SF에 대한 매력은 무엇일까요?'였다.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면서 나의 사례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지 생각했다.
'저 같은 경우는 SF를 쓰면서 차별이나 빈부 격차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편입니다...'까지 썼는데, 문득 '근데 어째서 차별이나 빈부 격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일까?'라는 의문이 일었다.
그러게, 왜 하필 그것이었을까? SF소설로 말할 수 있는 건 아주 많은데.
나는 깜박이는 커서를 앞에 두고 3초간 생각했다. 오래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 그것은 제가 임대 아파트에 거주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뉴런이 행하는 대로 이렇게 적었다. 내가 소설을 쓰는 주요 동력원 중 하나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임대아파트 거주 경험 때문이라니.
그만 인정해야 했다.
임대 아파트를 싫어하지만, 좋은 싫든 나는 그 경험을 마음 깊이 아주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이렇게 질문지를 작성하고 나니 걱정이 되었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자신이 임대아파트에 거주한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어색한 반응을. 갑자기 안쓰럽게 지켜보거나, 사업/주식이 망했나? 하고 갸우뚱하거나, 가정사가 복잡한 건 아닐까 하고 곰곰이 따지는 사람들의 표정을 나는 많이 보았다.
이번에 이 세션에서도 이 이야기를 하면 청중 중 이렇게 바라보는 사람이 생기는 건 아닐까? 갑자기 나를 동정 어린 눈으로 쳐다보거나 업신여겨버리면 어떡하지? 여러 작품을 쓴 SF작가가 아니라, 그냥 '아 그 임대아파트 사는 가난한 작가~'라고 나를 기억하면 어쩌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거기에 살고 있지 않잖아. 그리고 너보다 어린 사람들이 자신이 임대아파트 주민이라는 것에 낙담하고 있을 때 네 이야기를 들으면 어떻겠어? 오히려 괜찮지 않을까? 네가 먼저 손을 들어. 여기 있고, 잘 살고 있다고.'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 세션은 무사히 끝냈다. 조마조마한 나는 혹시 이야기를 괜히 꺼냈나 하며 인터넷 검색창에 혹시 그 세션에 대해 누군가 리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몇 번이고 검색했다.
'제발 힘든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말은 하지 말아 줘!!!!'
며칠 후 그 세션에 대한 리뷰가 올라왔다. 가슴이 두 방망이질 쳤다.
그러나 그 리뷰에서는 임대아파트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앗, 괜찮았나. 괜찮았던 건가?'
어쨌든 다행이었다.
생각해 보니 임대아파트 사람들이 차별과 혐오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뉴스에서 꽤 들어왔지만
실제로 그곳에 산 사람의 진지한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불쑥 찾아왔다.
그렇다면.... 조금만 더 글로 써 볼까. 괜찮다면 사람들이 보는 장소에 공개해도 될까?
내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브런치에 글을 쓸지 말지, 쓴다면 필명을 따로 써야 할지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본명으로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브런치에는 예전에 한번 탈락한 경험이 있어 이번에도 또 탈락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앞섰다.)
필명과 본명 중에 무엇을 택할지 고민이 많았다.
에세이에서 보이는 나의 모습이 내가 쓰는 소설과 연관 지어 소개되지 않길 바랐다.
그러니 '역시 필명으로 쓰는 게 낫겠지?' 싶었다.
그러나 내 파트너는 달랐다. "과거의 경험인데, 털어놓아도 상관없지. 괜찮을 거야."
그 답변을 듣고 생각했다. 그냥 실명으로 도전해 보기로.
6월의 세션에서처럼 한번 더 부딪혀 보기로.
지금도 두렵긴 하지만 시작은 한번 해보기로 한다.
2001년의 초등학생이 10대 시절을 거쳐 20대와 30대 초를 임대아파트에서 지낸 그 경험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