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소도시 브뤼허
앤트워프 중앙역에는 Alto라는 간이 카페가 여러 개 있다. panos도 많지만 나는 커피가 주목적이기에 거즌 Alto를 이용했다. 이 날도 커피와 와플을 사서 출발한다. To Brugge
벨기에 도시들을 연결하는 IC 기차를 타고 가는 길. 기차 창문이 깨끗하면 이렇게 이쁜 풍경을 마음껏 볼 수 있지만 기차가 오래된 기차일 경우 99% 확률로 창문도 깨끗하지 않기 때문에 풍경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도 브뤼허 가는 기차 창은 깨끗했고 날도 좋아서 깨끗한 창으로 맑은 하늘과 초록 풀밭, 그 위의 집들을 마음껏 감상했다.
브뤼허 센트럴 역을 나오면 보이는 풍경. 영화에서 볼법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낮은 집들 옆에는 도로들이 있지만 전혀 복잡해 보이지 않는다. 도로 위에 가만히 있어도 안전할 것 같은, 그만큼 평화로운 마을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진을 보면 위의 말이 이해가 더 잘 갈 것이다.
사랑의 호수 가기 전에 본 벤치. 저 벤치를 보자마자, 좋은 봄날 저곳에 앉아있는 노부부를 상상했다. 지금 보다 더 생생한 풀밭, 반짝이는 물 위를 보고 있는 누군지 모를 그들이 떠올랐다.
추위를 뚫고 피어난 꽃 한 송이. 혼자 외롭진 않니? 아님 홀로임을 즐기고 있는 거니.
사랑의 호수. 어디서 봐야 정면일지 고민하며 이리저리 움직였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막상 사진을 찍을라 하면 정면이 아니라도 그냥 찍게 되고 사진을 보고 아쉬워하고 다음에는 정면에서 찍겠노라 다짐해도 또다시 그때가 돌아오면 그냥 찍게 된다. 생각보다 나는 사진에 열정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 이곳에서 외국인 3명이 자신들을 사진을 부탁했고 열정적으로 찍어드렸다. 내 사진은 아니지만 내 손을 거쳐 그들의 사진을 남기기에 절대 대충 찍을 수 없다. 잘 나온 사진을 보는 그들에게 소소한 행복을 주고 싶었다. 그들도 엄마와 김물의 사진을 찍어줬는데 다들 알 것이다. 외국인 특유의 위에서 아래로 찍는 vibe.. 그래도 고마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딜 가서 사진을 찍든 인물이 중심인데
'멋진 풍경에서 최대한 멋진 모습을 한 나를 담아야지!'
외국인들은
'이런 멋진 곳에 내가 왔다니. 풍경이랑 한 카트 함 찍어봐? 행복한 나를 담아봐?'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사진 속 나와 엄마의 신체 비율은 만족스럽지 않지만 스티커 속에 감춰진 우리의 표정은 만족스럽다. 그때의 우리가 잘 묻어난다.
저런 집에 사는 사람들의 하루 일과가 궁금해졌다. 일어나면 눈앞에 멋진 자연이 있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아마 매일 봐서 별로 감흥이 없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감흥이 없는 것도 많이 보았다는 증거이고 자연 속에 사는 행복을 이미 너무 잘 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들은 일어나 테라스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우리랑 비슷하게 아침에 늦잠을 자서 빵 한쪽을 물고 급하게 출근을 할까. (사실 나는 빵을 물고 급하게 출근하진 않는다. 그저 바쁜 현대인을 떠오르니 생각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브뤼허에서는 말을 타고 다니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 말 냄새가 난다. 그리고 말굽을 자세히 이번에 처음 봤는데 잘못 맞으면 왜 죽는지 납득이 갔다. 어마무시한 크기와 육안으로도 느껴지는 말굽의 단단함..
김물 어머니가 한 말이 웃겨서 이곳에 남겨보자면
"저 말 타고 센트럴 역까지도 데려다 주나?"
"엄마 그러면 도로 위에서 저 마차 타야 하는데?"
"ㅋㅋㅋㅋㅋㅋ"
거위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 너 왜 잠수해? 맛있는 거 있어?"
" 지금 대박이야. 얼른 들어와"
" 나도 할래 그럼"
거위 친구들이 참 많다. 고운 털을 가진 거위들이 저렇게 나와 있으니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꼭 물 위에 떠다녀야 할 것 같은 그들이 저렇게 흙에 풀썩 있으니 "동물들 사는 거 다 똑같네"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겠는가.
볼 때마다 놀라운 초콜릿. 벨기에 초콜릿이 아무리 유명하다지만 이렇게 가게가 많다니. 맛도 다 다르다. 초콜릿이 그냥 간식이 아니라 하나의 음식인 느낌이다. 맛도 모양도 다 달라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는 음식.
Bavet라는 스파게티 전문점에서 식사를 했다. 앤트워프 집 앞에서 있는 곳인데 늘 궁금하기도 했고 먹을 곳이 마땅치 않아 간단히 먹을라고 들어간 곳인데 양에 압도당했다. 족히 3인분은 되는 양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안나는 양에 엄마와 나는 두 팔 들고 식당을 도망치듯 나왔다. 사실 음식양을 볼 때부터 물렸다.
'양은 적당히'
브뤼허 흐로터 마르크트 광장.
브뤼셀 그랑플라스에 비해서는 덜 화려해도 중간중간에 끼어있는 붉은색 덕에 오히려 아기자기한 느낌이 들었다. 사실 여행 중간쯤 되니 하도 많은 광장을 봐서 이젠 큰 감흥은 없다. 적응의 힘은 참 무섭다..
구글 지도에 TimeScope을 검색하고 찾아간 곳. 겐트 느낌이 날까 싶어서 가보았는데 겐트보단 수수한 느낌이 드는 운하였다. 석양이 질 때쯤 가서 운이 좋게도 파스텔 톤의 하늘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저 멀리 지고 있는 태양이 완전히 들어가면 어둠으로 깔릴 이곳의 풍경은 그리 궁금하진 않았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이곳의 풍경만을 기억하고 싶었다.
여행은 순간의 기억들인데, 그래서 그런지 태양의 움직임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내가 만약 10분만 더 늦게 왔어도 어둠으로 깔린 운하를 봤을 텐데 그럼 지금처럼 이곳을 기억할까, 혹은 낮 일찍 와서 맑은 하늘과 있는 운하를 봤더라면 과연 저때와 같은 시야로 바라보았을까.
모든 것은 우연으로 이루어지고 각자의 우연은 다 다르기에 내가 기억에 남으면 그곳이 바로 나의 장소다. 나를 담은 장소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