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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 Jan 17. 2023

왜 이리 포근한 걸까?

겨울비 내리는 주말 아침.

부윰하게나마 익숙했던 희뿌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토요일 아침이다

새벽 6시 30분. 알람은 대전 서비스 센터 방문 예약을 알려준다

베란다를 보니 추적추적 겨울비가 을씨년스럽다

밤 새 따스히 늘어져 있던 살갗에 찬 비가 떨어져 움츠리 듯 온몸에 한기가 들이친다.

5분만 더.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왜 이리 포근한 걸까?

겨울비 내리는 주말 아침.

이불속 포근함에 겨워 다시금 잠을 청하며 그날의 포근함을 기억해 본다




축축하고 시린 기운만이 가득한 텐트 안.

밤 새 떨며 뜬 눈으로 지새운 몸은 마치 내 몸이 아닌 양 뻣뻣하기만 하다

베개 삼아 뒤통수에 놓았던 1.2리터 물통이 얼음으로 꽝꽝이다

뒤통수의 체온도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는 역 부족이었나 보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이 자칫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될 뻔했던 겨울산의 하룻밤이었다


그날.

나와 친구 셋은 680 고지의 산에 올랐다

이십 대의 마지막밤을 같이 지내며 삼십의 시간을 계획하고자 한 달 전 술자리에서 의기투합된 약속이었다

겨울 산에서의 잠은 처음인지라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하지만 그만큼 설레임도 컸다

친구 중 한 명은 해외 등반까지 다닐 정도의 베테랑이었다

텐트 및 각종 장비는 베테랑 친구가 준비하기로 했고 우리는 그 친구의 조언데로 집에서 가장 두꺼운 옷만 준비하였다

먼저 바닥의 냉기를 차단할 마른 낙엽과 갈비등을 긁어모아 잔뜩 깔았다

그 위에 긴 밤을 지새울 텐트 한동을 설치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허연 입김으로 텐트 스킨에 눈꽃이 피기 시작하였

거세지는 칼바람은 얇디얇은 텐트를 찢어 버릴 듯 사정없이 흔들었고 그 흔들림을 따라 천정에 핀 눈꽃들은 랜턴 불빛으로 바스러지며 우리의 정수리 위를 허옇게 뒤덮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십 대 마지막 밤은 달큰한 술 내음과 눈꽃의 시림으로 뒤 엉킨 채 저물고 있었다

기계. 공구 회사의 오너가 되겠다는 놈, 중기회사 오너가 되겠다는 놈. 국회로 가겠다는 놈, 은행장이 되겠다는 놈.

렇게 네놈은 각자의 다짐을 겨울산에 묻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눈동자에 차디찬 눈물이 맺힌다

여긴 어디?

등골의 시림에 집이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수다의 끝을 마치지  못한 채 잠이 들었나 보다

술 내음 따라 퍼졌던 온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갑자기 떨려오는 몸은 주체할 겨를도 없이 이불속을 파고든다

하지만 이불속은 따뜻함 대신 냉기로 가득하다

시린 어둠 속. 아침을 기다리기엔 너무 먼 시간이다

이 상태로 아침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듯 따스함에 대한 희망은 아주 먼 저편에 놓인 듯 까마득했다

일단은 체온을 유지해야 했다

기계. 공구 회사의 오너 놈은 전문가답게 침낭 속에서 잘 자고 있다. 우리는 얇디얇은 이불인데 써글~~~

저만 믿고 따라오라던 놈이 저만 따스히 잘 자고 있으니 육두문자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불을 꽁꽁 싸맨 체 내 옆에서 자고 있던 국회로 가겠다던 놈을 껴안았다

조금의 체온은 느껴졌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의 혹독함에 이리저리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

1분을 같은 자세로 있을 수가 없었다

바닥에 닿는 부위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고민 끝에 이불을 돌돌 말아 도롱이처럼 웅크렸다

그나마 바닥 냉기가 덜 올라왔다. 서걱서걱한 살 얼음이 살짝 핀 1.2리터 물통을 베개 삼아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너무나도 생생한 냉기에 잠은커녕 뜬 눈으로 아침이 밝기만 소원하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렴풋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희미한 여명의 빛이 텐트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침이 밝아온다는 기쁨도 잠시 온몸은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고 뻣뻣했다

그리고 머리는 왜 그리 무겁던지... 베개 삼아 베었던 1.2리터 물통이 얼음으로 꽝꽝이다

그때 국회로 가겠다던 놈도 어기적 거리며 깨어날 준비를 한다

한참을 삐걱거리며 관절을 돌린 뒤에야 일어났다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침낭 속에서 고요히 자고 있는 놈을 깨웠다

그놈은 일어나며 우리에게 "잘 잤냐?"라고 물어왔다.

우리는 대답 대신 그놈을 침낭에서 꺼 집어내 버너에 커피물부터 올리게 했다

그놈이 가솔린 버너에 불을 붙이는 동안 침낭에 몸을 넣어보았다


왜 이리 포근한 걸까?


그놈 체온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인지, 아님 침낭 스펙이 좋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진짜로 포근했다

밤 새 덜덜 떨어 새파랗게 질렸던 몸은 마치 노천탕의 바닥으로 벌겋게 녹아내리는 듯 가라앉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이런 포근함을 언제 느껴보았을까?

군대 혹한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그날의 포근했던 기억은 훗 날 나를 자연에서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만든 계기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침낭 속에서 포근히 잘 잤던 그놈이 끓여낸 커피와 죽일 놈, 살릴 놈의 수다로 밤새 시렸던 스물의 마지막을 녹여 내리며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오른 등산객들의 추위를 녹여 줄 뜨끈한 곱창전골 한 솥과 커피를 준비한다



뜨겁던 청춘의 여름은 그렇게 식어갔나 보다

세상 모든 게 만만해 보이고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스무 살의 가슴은 점점 더 냉정해지는 서른 초입의 머리에 횡보의 발걸음을 조금씩 다듬어 갈 것이다


내일의 따스함을 알기에 오늘의 시림을 견딜 수 있었던 것처럼...


겨울비 내리는 주말 아침.

이불속 따스함이 더욱더 포근하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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