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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Apr 23. 2023

멋진 신세계

곧 보게 될 미래의 어느 세계


세계는 이제 안정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 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그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당신이 창밖에 던져버렸어요, 야만인씨. 자유 말입니다!”그가 웃었다.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중에서 -

 


  여기 멋진 신세계가 있다.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보게 할 만큼 매혹적인 낙원 같은 곳이다. 이 세계에서는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갖가지 근심과 걱정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행복한 이상적인 세상이다.


  이곳에서는 자녀 육아로 인한 삶의 고통이나 얽매임이 없다. 사회가 책임지고 모든 아이들을 양육한다. 아이들은 최고의 전문가들이 만들어 낸 과학적인 육아 프로그램에 따라 충분한 영양 지원과 지속적인 관심 속에서 키워진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저마다의 능력과 개성에 따라 가장 알맞은 교육을 받는다. 물론 국가가 전부 지원한다. 이곳에서는 사교육이란 없다. 빈부에 의한 교육격차 같은 개념은 상상할 수도 없다.


  이 세계에서는 취업 걱정도 없다. 이미 국가에서 육아와 교육을 통해 국민들의 성향과 능력에 맞는 일자리를 준비해 두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이미 내가 하고자 했던 직장이다 보니 업무에 대한 불만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겪고 있는 연애, 결혼, 자녀 등에 대한 고민들도 신세계에서는 모두 국가에서 해결해 준다. 이곳에서는 결혼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모두가 자유연애이며 가족이라는 구속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국가에서 주는 ‘소마(soma)’라는 획기적인 약을 통해 국민들은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으며 행복한 삶을 산다. 나이가 들어도 젊음을 유지하게 해주는 이 약을 복용하면서 각자가 원하는 삶을 충분히 살다가 아픔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다.


  너무나 환상적이지 않은가? 꿈에서라도 한 번 이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싶지 않은가?



 

  멋진 신세계」는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 발표한 SF소설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한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관리, 지배하고 인간의 출생과 자유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이 세계의 지향점은 오직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뿐이다. 굶주림, 실업, 가난이 없는 안정적인 사회를 이룬 대신 가족, 낭만, 예술 등의 가치는 극단적으로 배척한다.


9년 전쟁 이후에, 그때부터 과학이 처음으로 통제를 받기 시작했지. 그때는 사람들이 식욕까지도 통제를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으니까. 조용한 삶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좋다는 식이었어. 우리들은 그 후부터 통제를 계속해왔어. 물론 그것은 진실을 위해서는 별로 좋은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행복을 위해서는 아주 좋은 일이었어. 인간은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필연적으로 대가를 치러야 해. 행복은 대가를 치러야만 성취할 수 있다고. 자네들은 지금 그런 대가를 치르고 있어.

-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


  작중에서 대전쟁(일명 '9년 전쟁') 이후 거대한 세계정부가 들어서, 모든 인간은 인공 수정으로 태어나며 이를 통해 세계 인구는 20억 명 정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수정란과 태아 상태일 때부터 체계적으로 약물과 호르몬을 주입하여 아이들의 계급을 분리, 그에 맞게 시험관에서 배양한다.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은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진다.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그들의 지능에 따라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지가 결정되어있다. 사람들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5개 계급으로 나뉘는데 모든 것이 계획 하에 구성된다.


  성장하는 동안에도 계급에 맞는 적절한 자극과 세뇌를 통해 자신의 계급에 만족하며 자신의 계급 이외의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도록 철저한 교육에 의해 길러진다.    


  노화도 겪지 않고, 책임도 도덕도 없이 문란한 자유연애를 하고, 정신적인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쾌락과 만족감뿐이다. 정해진 노동 시간 이외에는 단순한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들로 꽉 짜여 있다.


  혹 불쾌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항상 소마라는 가상의 약을 통해 즉각적인 쾌감을 경험한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사고할 능력을 빼앗는다. 때문에 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하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허상이다.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이 세상에 없는 곳이다. 유토피아가 결국 인간의 순수한 의지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이상향이라면, 인간의 자유의지가 빠진 천국은 가치가 없다.


 

  아무 고통이 없고 원하는 게 없으니 불행하지 않지만,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세상. 우리에게 소마는 어떤 의미인지 물어본다.


  우리들이 쉽게 구하고 싶은 소마와 그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종교와 예술, 경제와 과학, 소비하는 사회. 의문을 가지지 않는 이들의 행복이 과연 진실할까?


  게다가 이 멋진 신세계가 단순한 허구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지금도 뇌 데이터 저장이라던지, 인간 DNA 복제 연구, 음식을 대신하는 알약, 인간 수명 연장 등 많은 부분들이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연구되고 있다.


  조작을 통해 태어나는 인간들, 그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학과 시스템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획기적인 과학기술은 극소수의 부와 권력에게만 열려있고 나머지 절대 다수는 도태되는 사회. 내 생에는 그런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책의 내용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다시 한 번 행복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가치에 대해서, 지금 내 시간과 상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먼 미래에 우리는 어떤 신세계를 만날까? 생각하며 분별하는 힘이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삶의 토대가 될 것이다.





 

  참으로 화창한 날이다.

 

  햇살은 더없이 포근하고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다. 거리의 은행나무에서는 아기의 손톱 같은 새순이 돋아났고 꽃밭의 이름 모를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려 처음 본 세상을 눈에 익히고 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남은 시간, 사무실로 바로 가기 아쉬워 잠깐 밖으로 나왔다. 삼삼오오 다들 무리지어 거리를 걷고 있다. 회사 근처 커피전문점들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젠틀한 커피향이 유혹적으로 아름답다.


  행복하게도 회사에서 길 하나 건너면 근사한 공원이 나온다. 공원에는 이미 이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러 나온 사람들로 붐빈다. 산책길을 걷고, 벤치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만개한 철쭉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아이들.


  이 얼마나 '멋진 신세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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