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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Dec 19. 2023

최애의 북(Book)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

이 책은 메시아의 신화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점령한 행성을 에너지 생산 기계로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책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의 작용을 꿰뚫어 보아야 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예언과 그런 예언의 함정을 조사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의식 확장제를 등장시켜 그런 물질에 의존하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얘기해 주어야 했다.
식수는 석유와, 날이 갈수록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물 그 자체에 대한 비유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와 사람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생태 소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항상 각각의 층들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했다.


-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지(전 6부)》 제5부 「듄의 이단자들」 "[듄]을 쓰고 있을 때"를 발췌 인용


「듄」은 역사상 최고의 SF 중 하나로 평가된다.


  「듄」은 역사상 최고의 SF 중 하나로 평가되며, 특히 듄 시리즈의 1부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의 장편 소설 부문에서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작품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또한 당시 SF 소설의 3대 거장들이라고 불렸던 ‘로버트 하인라인’과 ‘아서 클라크’도 듄을 극찬했다. 듄 신장판 소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이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HBO 「왕좌의 게임」등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서브컬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고전.




  듄을 또 읽었다. 아마 여덟 번째쯤일 것 같다. 책들 중에는 한 번 읽고 나면 더는 손이 잘 안 가는 게 있는가 하면, 어떤 책들은 읽고 나서 또 만나고 싶은 감정을 유발하는 것도 있다. 전자가 대표적으로 ‘로마제국쇠망사’이고 후자의 경우는 사실 여러 책들이 있다.


  나는 기질상 새로운 책들을 접하기보다는 읽고 좋았던 책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면서 음미하는 스타일이다. 그중에서도 「듄」은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아끼는 책이다.


  도서관에서 빌린 듄을 읽고 책이 정말 좋다고 친한 지인에게 했었는데 그 말을 귀담아 두었다가 내 생일 때 선물로 보내 주었다. 내 책이 된 듄을 읽고 또 읽었다. 책에 줄이 그어지고 내 손의 흔적이 쌓이면서 애정은 점점 깊어갔다.





  책이란 것이 그에 담겨있는 '내용'이 당연히 가장 중요하겠지만, 나는 그 책이 나에게 주는 '이미지' 또한 중시한다. 양장본 하드케이스에, 책 두께는 약 600페이지 정도 되는 무게감이 느껴지며, 고급스럽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내 안목을 확 끄는 표지 디자인이어야 한다.


  표지만큼이나 '내지'도 중요하다. 미색의 인쇄지에 어떻게 편집했느냐가 책의 퀄리티를 좌우한다. 너무 빡빡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휑하지도 않은 짜임새에 여백의 공간에도 장인의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책 향기'를 좋아한다. 책마다 향기가 조금씩 다르다. 아마 출판사마다 사용하는 잉크나 내지가 다르기 때문일 게다. 새 책의 향기는 매우 유혹적인 반면 소장하고 많이 애독할수록 은은하게 퍼지는 시간의 응축성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듄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SF 전문 출판사인 “황금가지”에서 펴냈는데 고풍스러운 디자인에 황금색으로 치장을 했다. 아기의 살결 같은 부드러운 내지에서 풍기는 나무의 숨결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내 서재에 나란히 꽂혀 있는 여섯 권의 책을 보노라면 한 편의 고전주의 명화(名畫)를 보는 기분이다.  


여섯 권의 책을 보노라면 한 편의 고전주의 명화(名畫)를 보는 기분이다.  





  듄 시리즈는 참으로 특이하다. 이 책도 여느 SF와 같이 먼 미래를 배경으로 은하 수준의 범위에서 항성들 사이의 전쟁도 벌어지고 많은 등장인물 간의 대립과 반목이 펼쳐진다. 나도 처음에는 워낙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느라 줄거리와 인물들을 파악하기에 급급했었다.


  그러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으면서 점점 이 책에서 다른 책들과는 다른 느낌을 발견했다. 장면은 혈투의 상황인데, 내용은 노자의 ‘도덕경’이나 자사의 ‘중용’, 아니면 성경의 ‘잠언’을 보는 느낌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나에게 던져 준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불편하거나 뭔가 걱정이 있을 때면 나는 듄 시리즈를 펼쳐 본다.  이미 전반적인 서사는 꿰뚫고 있기에 1권부터 읽을 필요도 없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한 권을 골라 임의로 펼쳐 읽기 시작한다. 그러면 내 상황에 맞게 좋은 조언을 해주는 문장을 만난다.


  지난번에는 별 관심 없이 지나쳤던 문장이 그날따라 깊은 울림과 함께 내게 느낌표를 던진다. 어떤 날은 주인공과 대립하는 악역의 인물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의 심정이 내게 전해진다. 사실은 내가 바로 그 악역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1부에서 최고의 악당으로 나오는 하코네 남작으로 등장하는 '스텔란 스카스가드'


  듄 시리즈에 대한 줄거리나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 다룬 바가 있어 이번에는 언급하지 않겠다 [2022.8.22. 에 포스트 한 '책들의 꿈꾸는 여행(2)-상' 참조 ]. 여기에서는 그간 내게 많은 힘이 되거나 삶의 지혜를 주었던 문장들을 고르고 고르고 또 골라 몇몇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시리즈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언급되며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마음의 평정을 찾고자 시도하는 베네 게세리트의 '공포에 맞서는 기도문'이다.


   이 책을 읽어 본 사람은 비슷한 느낌이겠지만 나는 이 구절을 처음 접했을 때 그 표현과 의미에 완전히 심취해서 바로 사무실 책상에 붙여 놓고 자주 따라 읽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의의 모습에 찬 '폴 아트레이데스'




  다음으로는 듄의 핵심 키워드인 '예언'에 관한 글을 들어보자. 이 책에서는 미래를 볼 수 있는 신과 같은 능력인 예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그런 면에서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들의 예언에 대한 태도와 상반된다.


예언과 예지력. 대답이 발견되지 않은 질문들을 앞에 두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시험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실제로 ‘파도 형태’(무앗딥이 자신의 환영을 가리켜 한 말)에서 본 예언과 예언자가 예언에 맞게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 두 가지가 각각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예언자가 정말로 미래를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보는 것은 약점을 나타내는 선, 즉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사람이 칼질 한 번으로 보석을 박살 내듯이 예언자가 말이나 결정을 이용해서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단층이나 쪼개진 틈인 걸까?  

- 듄 시리즈 제1부 -


대모님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벌레들을 거의 전부 없애는 것이었지요.  (중략)
그들은 우리를 굴레에 가둬놓고 있는 예언의 힘이었습니다. 폭군의 의식이라는 진주알들이 그들의 힘을 증폭시켰죠.
그는 사건들을 예언한 게 아닙니다.
그 사건들을 만들어낸 겁니다.  

 - 듄 시리즈 제5부 -


베네 게세리트 대모에 의해 퀴사츠해더락 여부를 시험 받는 폴 아트레이데스




  이 책은 자주 '법과 정부'에 대한 그 이면적 속성을 지적한다. 고개가 끄떡거리다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란스럽다.


법률 용어가 난해하고 복잡해진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하고 하는 폭력을 우리 자신에게서 감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인생의 한 시간을 빼앗는 것과 목숨을 빼앗는 것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에서 그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략)
다른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는 행위의 뒤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생각이 남아 있다.
"나는 너의 에너지를 먹고 산다"  

- 듄 시리즈 제2부 -


도덕적 목적이지...  (중략)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원칙들의 지침을 따른다면 이 우주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정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의는 법에 의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변덕과 편견에 항상 굴복하는 변덕스러운 정부(情婦)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 그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미치는 개념인 '공정함'의 문제였다. 판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판결의 공정함을 느껴야 했다.  (중략)
공정해지기 위해서는 합의와 예측할 수 있는 항상성,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위계질서 속에서 위와 아래 모두를 향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 듄 시리즈 제5부 -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레토 공작'과 그의 멘타트인 '하와트', 그리고 그의 가신 '거니 할렉'




  예언과 종교와 살육이 계속되는 삶 속에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가치관을 가지는가? 당신은 자유의지를 믿는가? 삶의 주체는 누구인가?"


나는 우주 전체에서 변화하지 않고 가차 없는 '자연의 법칙'을 본 적이 없다. 이 우주는 때로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는 의식에 의해 법칙으로 인식되는, 변화하는 관계들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이 육체의 감각 중추는 무한의 불꽃  속에서 시들어가는 하루살이와 같다.  (중략)
'절대'에 꼭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것의 적절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덧없는 것'이라고.

 - 듄 시리즈 제4부 -


관찰자로만 자신을 제한한다면, 자기 인생의 중요한 점을 항상 놓치게 된다. 삶의 목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최고의  삶을 살아라. 삶은 하나의 게임이며, 사람들은 그 안에 뛰어들어 그 게임을 철저하게 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배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게임에 계속 놀라며 당황하게  된다.  
게임을 하지 않는 자들은 자주 칭얼거리면서 행운이  항상 자기들을 그냥 지나가 버린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스스로 행운을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 듄 시리즈 제6부 -


삶은 하나의 게임이며, 사람들은 그 안에 뛰어들어 그 게임을 철저하게 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배운다.




  듄 원작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영화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았다. 그러나 1부만 하더라도 무지하게 내용이 많고 세계관이 심오해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많은 시도 끝에 1984년 '데이빗 린치' 감독이 만든 영화가 개봉되었지만, 14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과 당시의 CG기술로는 원작의 깊이를 제대로 표현하기에 부족했다.


  2021년 '드니 빌뇌브' 감독이 개봉한 영화는 원작 1부의 전반기 내용만을 파트 1으로 제작되었다. 결과는 호평 일색이었다. 나도 아이맥스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전율을 느꼈다.


  서사를 전달하기에 급급하지 않고 원작의 의미를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한스 짐머'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지구에는 없는 소리"를 만들고자 한 장인의 열정이 돋보였다.


  그러나 원작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많다. 원작에는 영화로 보여주지 못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장면들이  많기 때문이다. 


듄 파트 2  영화 포스터


  내년 2월에 파트 2가 개봉된다고 한다. 아마 파트 2가 더 흥행이 될 것이다. 파트 1이 '몸풀기' 정도였다면 파트 2는 '실전' 수준이라서 보다 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할 테니까  말이다.


  파트 2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벌써 내 머릿속에서 필름이 돌아가고 있다. 내 머릿속 장면과 실제 영화가 어떨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을 준다.


  원작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자 한다면 나중에라도 꼭 원작을 보길 제안한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영화 '듄'을 보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원작을 보라. 6부 전체가 버겁다면 4부까지라도. 그것도 어렵다면 3부까지만이라도 제발 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영화 속에 '숨어있는 1인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느끼는 듄 시리즈의 멋을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다

  

  그리고,


  왜 내가 이렇게 듄 시리즈에 푹 빠져있는지 내 맘을 알려주고 싶다!


  내가 느끼는 듄 시리즈의 멋을 누군가와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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