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
이 책은 메시아의 신화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인간이 점령한 행성을 에너지 생산 기계로 보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 책은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정치와 경제의 작용을 꿰뚫어 보아야 했다.
이 책은 절대적인 예언과 그런 예언의 함정을 조사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이 책은 의식 확장제를 등장시켜 그런 물질에 의존하면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얘기해 주어야 했다.
식수는 석유와, 날이 갈수록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물 그 자체에 대한 비유가 되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와 사람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여러 가지 함축적 의미를 지닌 생태 소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쓰면서 항상 각각의 층들을 주의 깊게 감시해야 했다.
전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이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HBO 「왕좌의 게임」등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 음악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 서브컬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고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예언과 예지력. 대답이 발견되지 않은 질문들을 앞에 두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시험할 수 있을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실제로 ‘파도 형태’(무앗딥이 자신의 환영을 가리켜 한 말)에서 본 예언과 예언자가 예언에 맞게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 이 두 가지가 각각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예언자가 정말로 미래를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그가 보는 것은 약점을 나타내는 선, 즉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사람이 칼질 한 번으로 보석을 박살 내듯이 예언자가 말이나 결정을 이용해서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릴 수 있는 단층이나 쪼개진 틈인 걸까?
- 듄 시리즈 제1부 -
대모님이 정말로 원했던 것은 벌레들을 거의 전부 없애는 것이었지요. (중략)
그들은 우리를 굴레에 가둬놓고 있는 예언의 힘이었습니다. 폭군의 의식이라는 진주알들이 그들의 힘을 증폭시켰죠.
그는 사건들을 예언한 게 아닙니다.
그 사건들을 만들어낸 겁니다.
- 듄 시리즈 제5부 -
법률 용어가 난해하고 복잡해진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가하고 하는 폭력을 우리 자신에게서 감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서 인생의 한 시간을 빼앗는 것과 목숨을 빼앗는 것 사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에서 그의 에너지를 소모시켰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중략)
다른 사람에게 힘을 행사하는 행위의 뒤에는 항상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생각이 남아 있다.
"나는 너의 에너지를 먹고 산다"
- 듄 시리즈 제2부 -
도덕적 목적이지... (중략)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러한 원칙들의 지침을 따른다면 이 우주는 더 나은 곳이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정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의는 법에 의존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변덕과 편견에 항상 굴복하는 변덕스러운 정부(情婦)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 그것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미치는 개념인 '공정함'의 문제였다. 판결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 판결의 공정함을 느껴야 했다. (중략)
공정해지기 위해서는 합의와 예측할 수 있는 항상성,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위계질서 속에서 위와 아래 모두를 향한 충성심이 필요하다.
- 듄 시리즈 제5부 -
나는 우주 전체에서 변화하지 않고 가차 없는 '자연의 법칙'을 본 적이 없다. 이 우주는 때로 잠시 존재하다 사라지는 의식에 의해 법칙으로 인식되는, 변화하는 관계들을 제시할 뿐이다. 우리가 '자아'라고 부르는 이 육체의 감각 중추는 무한의 불꽃 속에서 시들어가는 하루살이와 같다. (중략)
'절대'에 꼭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그것의 적절한 이름을 사용해야 한다.
'덧없는 것'이라고.
- 듄 시리즈 제4부 -
관찰자로만 자신을 제한한다면, 자기 인생의 중요한 점을 항상 놓치게 된다. 삶의 목적을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한 최고의 삶을 살아라. 삶은 하나의 게임이며, 사람들은 그 안에 뛰어들어 그 게임을 철저하게 하면서 게임의 규칙을 배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게임에 계속 놀라며 당황하게 된다.
게임을 하지 않는 자들은 자주 칭얼거리면서 행운이 항상 자기들을 그냥 지나가 버린다고 불평한다. 그들은 스스로 행운을 어느 정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 듄 시리즈 제6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