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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현 Jul 19. 2024

인류의 자존심

신의 한 수

  

신의 한 수

중앙 흑 사이로 끼운 ‘백(이세돌)’의 묘수(제78수). 대국 현장을 참관했던 중국의 '구리' 9단(당시 세계 1위)은 이 수를 두고 "신의 한 수"라며 감탄했다. 그전까지 빈틈없이 대응하며 매우 유리하게 국면을 이끌었던 ‘흑(알파고)’는 이후 악수를 남발하며 스스로 무너졌다.


이세돌의 '신의 한수' 백 제78수


  - 2016년 3월 16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구글과 대한민국 프로 기사 이세돌 9단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Google Deepmind Challenge match) 제4국 '요약평' 참조-






  우리 회사는 지난 5월에 “교실 밖 교실을 만나다”라는 주제로 「Y 교육박람회」를 개최했다. AI로봇 교사, 디지털 교과서 등 인공지능 기반 미래첨단 교실의 각종 모델들이 다양한 현장체험 형태로 기획되었다.


  비록 우리 부서에서 주관하사업은 아니었지만 내가 하는 업무와 많은 연관성이 있기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커다란 기대를 받았던 것은 야외 특설무대에서 진행하는 ‘스타멘토를 만나다!’에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한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바둑 중계방송 보는 걸 재미있어했다. 바둑은 왠지 서로가 자신의 기하학적인 예술 솜씨를 배틀 형식으로 겨루는 경기 같았다.


  특히 기사들의 한 수, 한 수마다 그 의미를 부여하고 무척이나 유식하게 들리는 용어를 써가며 복기하는, 정장을 입은 해설가의 멘트가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내용도 잘 모르면서 그냥 고개를 끄떡이며 방송을 보곤 했다,


  “우상귀에 날일자(日)로 젖혔네요.”

  “백이 이쪽으로 붙여 끊으려 해도 흑이 이렇게 받아버리면 오히려 백 한 점이 갇혀 잡혀 버리죠.”


  조남철 - 조훈현, 서봉수 - 유창혁 - 이창호 - 이세돌로 이어지는 한국 바둑계의 전설들. 요즘은 한국 바둑이 쇠락기에 접어들었지만 신민서 정도가 나름 고군분투하는 모양이다.


이세돌 대 알파고 5국 바둑 중계 장면


   행사장에서 본 이세돌 9단은 예전 방송 등에서 보았던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승부사의 모습은 옅어지고, 대신 얼굴에 볼살이 좀 붙어 한결 편안한 인상으로 시종일관 여유로움을 잃지 않았다.


  2019년에 현역에서 은퇴하고 유망주 교육을 위한 바둑 학원 운영과 각종 강연에 더해 최근에는 보드게임 개발자로까지 활동하는 등 다방면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머리엔 알파고로 각인된 인공지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보였다.


   인터뷰 중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AI 기술 개발이 윤리적인 시각을 반영해 공공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특히, AI 기술 발전이 없다면 인류는 굉장히 암울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며 AI 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쩌면 그의 인생은 알파고와의 대국 전과 후로 송두리째 바뀌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2024 Y교육박람회 야외 특설무대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이세돌 9단




  바둑기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에서 개발한 바둑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알파고(AlphaGo)'를 이긴 유일한 인간이며, 그때 그 제78수는 "신의 한 수"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이세돌이 유일하게 알파고를 이긴 4국 전후 사정을 좀 살펴보면, 5번기 중 내리 3경기를 패했고 정황상 4국도 알파고에게 초중반까지 대국의 좌상변과 중앙을 다 빼앗기고 있었다. 알파고가 차지한 영역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세돌 9단은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이세돌의 '신의 한수' 백 제78수

 

  이세돌은 알파고가 차지한 공간을 줄이고자 흑의 중앙에 과감히 침투한다(제70수). 흑은 그 정도까지는 용인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의 중앙에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하게 테두리를 친다(제71수).


  그런데 여기서 이세돌은 알파고의 영역 크기를 줄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상단 중앙에 '포로'로 잡혀있는 백의 제44수와 제46수를 살려내 상단 중앙을 백의 영역으로 만들려는 계획이었다.


  이세돌은 좌상변의 성벽을 견고하게 다지면서 포로들과 긴밀히 연결하려 시도하였는데(제72수, 제74수, 제76수) 알파고는 그때까지 승률이 70%를 넘고 있었기에 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것 같았다.


  이세돌은 문제의 '제78수'를 두기 위해 남은 시간의 거의 전부인 7~8분 정도를 온전히 소비하면서 고도의 집중력으로 고민을 거듭했다. 당시 현장의 수많은 다국적 해설진들은 백이 이길 수가 보이지 않는다고 침울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문제의 그 ‘신의 한 수’를 두자 해설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세돌의 착수에 사람들은 짙게 드리워진 어둠 속을 뚫을 한 줄기 빛을 기대하게 되었다. 그렇게 판도가 바뀌자 인공지능임에도 알파고는 마치 당황한 바람에 실수를 하듯 엉뚱한 수를 두었고, 결국 180수 만에 돌을 던졌다.

알파고는 마치 당황한 바람에 실수를 하듯 엉뚱한 수를 두었고 결국 180수만에 돌을 던졌다.(한국기원 홈페이지)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크게 세 가지 구성 원리로 작동된다. 먼저 ‘정책망(Policy Network)’에서 고수들의 경기(기보)를 모방하여 학습을 한다. 다음으로 ‘가치망(Value Network)’은 판의 각 부분을 평가하고 특정 부분의 승리 확률을 계산한다. 세 번째 ‘트리 탐색(Tree Search)’에서는 여러 변화도를 그려내면서 다음 수를 예측한다.


  실제 대국이 진행되면 먼저 ‘정책망’이 모양을 읽어서 대국에 유리한 부분을 찾아내 각 변화도를 ‘트리형태’로 만들어 ‘가치망’에 전달해서 특정 변화도의 승률을 얻어낸다. 알파고는 순간순간의 승률 극대화를 모색할 뿐 전체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길 수 있었던 계기가 된 제78수가 나올 확률은 0.007%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1,200개가 넘는 CPU가 연결되어 초당 10만 가지 계산을 할 수 있었던 알파고가 거의 예측하지 못한 '의외의 수'를 인간이 찾아낸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핵심이다.


알파고의  ‘가치망(Value Network)’


  지금이야 알파고에 이긴 유일한 바둑 기사로 이세돌 9단이 기억되지만, 초기 대국에서 잇따라 3패를 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었다. 이세돌 9단 본인은 물론 바둑계에 몸담고 있는 대부분의 커뮤니티에서 인공지능이 바둑으로는 아직까지는 인간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파고는 인류가 인공지능에 대해 진정으로 경각심을 갖게 한 최초의 사건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매일 인공지능(AI)을 접하고 살아간다. 구글 검색을 이용하거나 시리(Siri)에 질문을 할 때마다 AI를 사용한다. 스마트폰 '갤럭시 24'에 이어 올해 하반기 출시되는 '아이폰 16'에도 AI가 탑재된다.  


  AI는 우리 일상을 혁신적으로 바꾸고 있다. 예전에는 공상과학 소설 또는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AI가 이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의료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한 진단 시스템이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제공해 환자의 치료 효과를 높이고 있고, 금융 분야에서는 AI가 금융 사기를 예방하고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게다가 수 년내에  'AI 에이전트(비서)' 시대열린다고 한다.  AI 에이전트는 필요할 때 직접 여러 개 응용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호출하고 그것을 활용해 복잡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나의 한 마디 지시에 따라 내 일정과 동선을 파악해 기차나 항공권을 자율적으로 예약하거나, 우리 집 각종 물품의 재고나 교체주기를 파악해 가격비교 등을 통해 내 취향에 맞는 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는 작업 등도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AI의 최종 목표는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인공일반지능)에 도달하는 것이다. 흔히 '강인공지능'이라고도 하는데, 특정한 조건하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약인공지능'과 달리 모든 상황에 일반적으로 두루 적용할 수 있는 AI를 말한다.


  AGI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꽃꽂이도 남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워서 한다든가, 방범 업무를 경찰에게 인수인계받아서 학습하여 현장에 투입되는 것도 가능하다.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의 인공지능 비서 "자비스"


  AGI의 판왕은 아마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인공지능 비서 "자비스(J.A.R.V.I.S.)" 정도라고 생각하면 쉬울 듯하다. 그 성능은 실로 놀라운데, 토니의 저택 관리나 비서 역할은 물론, 해킹과 아이언맨의 전투마저 보조한다. 심리적인 부분도 추론할 수 있는 상당히 고등하고 능동적인 인공지능이다.


  이정도의 AGI가 물리적 '육체'를 갖게 된다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오는, 육체를 갖고 자비스와 전혀 별개의 인격으로 탄생한 '비전'을 인간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나오는 인공지능 '자비스'가 육체를 얻으면서 탄생한 캐릭터 "비전"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국 전 인터뷰에서 “알파고가 바둑의 아름다움, 인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바둑의 가치는 계속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동화 같이 순수한 생각과는 달리 지금의 현실은 꽤나 착잡하다.


  어느 한국기원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스스로 연구해서 최적의 수순을 찾아가기보단 AI 프로그램에 먼저 물어보고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는 프로기사들이 많아지고 있다”라며 우려했다.


  우리 인간은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주체여야지 인공지능의 가공할만한 능력에 전적으로 기대며 살아가는 객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이세돌 9단의 인간적 창의성에서 나온 신의 한 수가 알파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처럼, 인류를 지키기 위한 공학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인문학적인 매우 심도 있는 논의와 고찰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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