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하여
내 기준 올해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년 말에 개봉한 아바타도 기대하고 봤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처럼 3번 볼 정도는 안되는 것 같다. 바빌론의 감독은 라라랜드, 위플래쉬로 유명한 데미안 샤젤 감독으로, 영화의 주된 내용은 20세기 초반 할리우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영화사적 과도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 내용은 유튜브나 타 플랫폼에서 다들 보셨을거라고 생각하고, 느낀 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다. 영화를 보고 쓰는 느낀 점이니 어쩔 수 없이 스포일러가 되므로 아직 관람하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
극 중 영화 평론가이자 “가십”기자인 엘리노어가 인터뷰 도중 새로운 트렌드인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에게 물어본다. “Do you miss the silence?” 무성영화가 그립냐고 말이다. (잭의 대답은 “No.”)
바빌론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 할리우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과도기를 배경으로 한다. 무성영화는 초기 영화의 형태로 배우의 대사와 배경 음악 없이 영상으로만 이루어진 영화를 말한다. 대사와 배경 음악은 자막과 밴드가 직접 연주하는 음악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와중 1927년 10월 6일, 영화 역사에서 유성영화의 시작을 알린 알 존슨의 “Jazz Singer”가 개봉된다. 그동안 영상과 대사, 배경 음악을 따로 보고 들었던 관객들에게 영상과 소리가 함께하는 영화는 그야말로 혁명이었을 것 같다.
바빌론에서도 “Jazz Singer”를 보며 관객들이 열광하는 장면이 나온다. 잭이 보내 “Jazz Singer”의 시사회를 간 매니가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들을 보고 뛰쳐나와 잭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모든게 변할거라고 얘기한다.
바빌론에서 이 변화(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는 핵심이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성공적으로 변화에 적응하는 등장인물들의 스토리로 흘러갈 텐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슬픈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그래도 페이와 시드니는 잭과 넬리, 매니와 달리 나쁘지 않은 결말을 맞이한걸지도 모른다.)
극 중 잭 콘래드는 줄곧 변화를 제창하는 인물이다. 할리우드에 처음 왔을 때 있었던 “배우와 개 출입금지”라는 식당과 카페의 규칙을 바꿀만큼 배우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는 썩은 고인물들 때문에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말하며, 그들이 향수하는 과거를 찍는데만 머물러 있다고 그들이 찍는 사극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형식을 재정립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심지어 자신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변화가 찾아왔을 때조차도 그 변화는 거스르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몸소 실현시키기도 한 인물이 유성영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는 힘 없이 휩쓸리고 만다. 두 편의 유성영화에서 흥행에 성공시키지 못하고 다른 배우들이 기피하는 역할을 맡는 배우의 신세가 된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문득 드는 생각은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저런 센세이셔널한 변화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다. 나는 가끔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너무 많이 발전해서 새로운 시장, 새로운 변화를 만들기에는 너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너무 발전되어 있어서, 너무 좋은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드는 기만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런 세상에서 우리(보통의 사람들)가 상상해 보지도 못할 변화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과연 그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람들은 급격한 변화를 팔 벌려서 환영하고 마냥 반기지만은 않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유럽의 러다이트 운동은 당시 나타난 새로운 기계문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이 배경이 되어 일어난 운동이다. 기계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현재의 우리로서는 말도 안되는 소리 같기만 하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새로운 문명이 우리를 위협하는 현상은 현재에도 종종 생기고는 한다. 요즘 화제인 챗GPT와 AI가 그리는 그림들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챗GPT가 코딩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논문도 쓰고, AI가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뭐 다 해버린다면 나는 이제 뭘 해먹고 살아야하나. 진짜로 머지않은 미래에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나야 될 것 같다.
다시 두 문단 전으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정말 상상할 수 없는 변화들이 일어난 후, 아주 먼 미래에는 지금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살았던 거지?”라고 말이다. (부모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스마트폰 없이 살았지?) 먼 미래에는 우리가 모르는 아주 당연하게 실행되고 있을 수 있는 것들이 현재는 실현이 안 되어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따끔 ‘진짜, 전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그런 변화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고는 한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는 변화니까. 그래도 이런 미래에 대한 간헐적인 막연한 상상들이 갑작스러운 변화를 조금이나마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있다. 잭처럼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적어도 어설프게 서핑 정도는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