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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주 Mar 02. 2023

Review: Babylon(2022) part2

계급에 대하여

“There’s a lot of beauty in ordinary things. Isn’t kind of the point?” -Final episode, the office


모든 것은 각자만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두가 이런 꽃밭 같은 생각을 하면 좋겠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조차도 모든 것을 동등한 위치에 놓고 아름다움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두개의 사물이 있을 때 그 사물의 우열을 가리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일지도 모른다.

전투 장면 촬영 세트 장 한 가운데 설치된 텐트. 3초 뒤, 저 나무 기둥에 창이 날아와 꽂힌다.

영화 바빌론에서 할리우드 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바우하우스”를 종종 언급한다(대략 3~4번 정도). 유럽에서는 바우하우스가 나왔다는 둥, 술을 마시며 자막 기사에게 대본을 쓰라고 할 때도 “Fu**ing Bauhaus, You know?”를 외친다. 디자인 계열 종사자들은 한번쯤 무조건 들어봤을 법한 바우하우스를 아무 관련도 없을 것 같은 영화에서 들으니 내적 반가움이 조금씩 솟아났다. 언뜻 보면 영화 배우인 잭이 왜 유럽의 미술 학교인 바우하우스를 찾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잭도 우리나라 연예인들처럼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던 것일까?

100년이 지난 바우하우스의 로고. 지금봐도 세련됐다.

바우하우스는 20세기 초,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에 의해 설립된 독일의 국립 미술학교이다. 1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모던 디자인 자체를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으로서 바우하우스를 기억한다. 그만큼 바우하우스는 단순한 교육기관으로 치부하기에는 모던 디자인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의가 크다.


18~19세기 미술의 형태는 순수미술(Fine art=회화, 조각)과 응용미술(Applied art=공예)로 분화되는 계급화가 나타났다. 고급 예술에는 순수미술이, 저급 예술에는 응용미술이 자리 잡음으로서 순수미술은 문화적 권위를 가지고 그 지위를 계속해서 지켜나갔지만 공예는 상대화되고 열등화 되었다. 그러던 와중 당시 산업화는 사회 전 분야에 걸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는데, 이 혁명의 바람은 미술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이 거친 바람 속에서 등장한 바우하우스는 전통적인 수공예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공예는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 연구의 해답을 바우하우스의 세 가지 설립 이념에서 찾아보자. 첫번째는 조형 예술의 통합, 두번째는 장르 간 신분 차별의 철폐, 마지막으로 예술의 기술적 성격에 대한 확인이다. 이 세 가지 설립 이념은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연속적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


앞서 말했던 바와 같이 근대에 이르러 조형예술은 장르별로 분산 고립화되어 문화적 힘을 상실하고 있었고, 그 장르간 신분 차별에 따른 불평등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다다랐다. 회화나 조각은 순수미술이나 고급미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소수 계급층의 감상거리로 전락했고, 공예나 디자인 등은 응용미술 또는 장식미술이라는 이름을 붙여 수준 낮은 천한 예술로 취급했다.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장르 간 신분 차별을 없애고 조형 예술의 통합을 주장하고 “모두 공예로 돌아가야 한다.”며 예술의 기술적 성격을 강조했다.

바우하우스의 교육 과정. 결국 모든 것은 건축으로 귀결된다.

어쨌든 바우하우스의 주된 이념은 “장르 간 계급화 철폐와 통합”이다. 바로 이 점이 잭 콘래드가 바우하우스에 반하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다. 고급(순수미술=회화, 조각)과 저급(응용미술=공예, 디자인)의 결합. 고급(오페라, 뮤지컬)과 저급(연극, 영화)의 결합. 바우하우스의 이념과 얼핏 일맥상통해보이지 않는가?


나는 할리우드 스타인 잭이 가난하고 못 배웠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에 더불어 자신의 직업이 저급 예술로 취급 받아온 탓에 계급적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즉, 잭 콘래드가 영화 속에서 줄곧 주장했던 “바우하우스”는 그의 내면에 있는 열등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며, 그 열등감에 대한 해결책인 것이다.


“All art aspires to music."

감독에게 “아다지오”로 연기할 것이라는 잭. “아다지오”는 음악에서의 빠르기(느리고 침착하게)를 나타낸다.

극 중에서 잭 콘래드의 바우하우스와 음악에 관련된 발언들을 통하여 그의 계급적 열등감을 엿볼 수 있다. 월락의 파티가 끝난 후 잭의 저택에서 매니에게 본인이 오페라를 했으면 처가에서는 좋아했을 것이라는 이야기, 매니에게 영화 산업의 대한 변화를 연설하며 유럽에서는 바우하우스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결말씬 촬영 전 감독에게 “아다지오”로 연기할거라고 말하는 모습, 촬영 대기 중 자막 기사에게 “Fu**ing Bauhaus, You know?”라고 말하는 모습(자막 기사는 촬영 장면과 바우하우스가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한다.), 모든 예술은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이야기와 그의 부인들이 음악과 연극배우 등 고급 연극 예술 종사자라는 점 등. 이렇게 여러 개의 장면을 통해 잭 콘래드가 그의 밑바닥 출신과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생긴 계급적 열등감이 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영화 “레미제라블”과 “캣츠” (Feat.불쾌한 계곡이 떠오르는 캣츠)

즉, 잭은 미국의 “할리우드”에서 유럽의 “바우하우스”를 외침으로서 연극 예술에서의 장르 간 계급화 철폐와 통합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럼 현재 연극 예술계는 잭의 바람대로 장르 간의 신분 차별이 없어졌을까? 내 답은 “어느 정도는”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레미제라블이나 캣츠(영화는 쫄딱 망하긴 했지만)처럼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오기도 하며, 영화 배우들이 뮤지컬 연기를 하는 등 잭이 살던 시대보다는 그 경계들이 희미해진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장르 간의 계급적 격차가 없다고 단언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음악과 관련된 연극 예술은 소위 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고급 취미 생활이고, 영화나 연극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이라는 인식은 아직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당장 나조차도 무의식 중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예술 간의 계급적 격차 뿐만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의 신분 차이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It means something.”

언젠가, 장르 간의 서로 다른 특성을 인정하며 모든 것에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유토피아적인 세상, 잭이 더 이상 “바우하우스”를 외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올까? 잭이 그의 부인 에스텔에게 영화의 의미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장면을 회상하며 그가 바라는 세상을 다시금 꿈꿔볼 뿐이다.


“What I do means something to millions of people. My folks didn’t have the money or the education to go to the theater, so they went to the vaudeville houses, and then the nickelodeons. And you know what? There’s beauty there. What happens up on that screen means something. Maybe not to you in your ivory tower. But for real people on the ground, it means something.”

"내가 하는 일에는 수 만명의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어. 내 가족들은 극장에 갈 만큼 돈도 없고 교육도 받지 않아서, 싸구려 버라이어티 연극을 보고, 단편 영화 극장을 갔어. 근데 있잖아? 거기에는 아름다움이 있어. 그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것들에는 의미가 있다고. 아마 당신네들의 상아탑에서는 아닐지는 몰라도, 밑의 현실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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